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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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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리뷰는 연극 '아트'의

스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나는 '내 친구'를 안다. 그것도 너무 잘.


 

가만히 눈을 감고 친구들의 얼굴을 하나씩 떠올려 본다. 생각만 해도 웃음이 나는 친구들, 오랫동안 만나지 못해 그리운 얼굴들도 머릿속에 둥실둥실 떠다니기 시작한다. 오만한 생각이지만, 사실 난 내 친구들이 영원할 거라고 믿었다. 우린 언제나 이렇게 서슴없이 만나 별거 아닌 이야기를 나누고, 실없는 일에도 와하하 웃음 지을 거라고.

 

하지만 이젠 슬슬 인정할 때가 된 것 같다. 영원한 건 절대 없다는 누군가의 노래처럼, 불과 한 달 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완전히 동일한 사람이라고는 말 못 하는 것처럼. 그러니까 내가 변하는 만큼 내 친구의 시간도 함께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나의 '시선'을 통해 바라보는 친구의 이미지가 사실 허상에 가까울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왜냐하면 너와 나는 어쩔 수 없는 타인이니까. 내가 너를 완벽히 이해한다고 말하는 것은 기만에 가까운 일이다. 돌이켜보면, 나는 항상 내가 원하는 시선에 기대어 너를 바라보고 있었던 건 아닐까. 늘 그 자리에 있을 거라고 기대했으니까. 그렇다면 나는 언제쯤 너를 투명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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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더블케이엔터테인먼트

 

 

여기, 같은 고민을 안은 세 인물이 있다. 마크와 세르주, 그리고 이반. 수십 년간 절친한 관계를 이어온 셋은 이 무대 위에서 서슴없이 상대방을 헐뜯고, 비난하고, 면박을 주지만 그럼에도 서로를 잃고 싶지는 않은 복잡한 감정을 품고 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의 발단은,

 

 

"제 친구 세르주가 그림 하나를 샀습니다."

 

 

작품의 포문을 여는 마크의 대사 속 그림 하나. 그게 모든 일의 씨앗이다.

 

 


흰색 판때기야. 판때기 아니야, 사과해! 아냐 저건 판때기야. 아니라니까!


 

막이 오르면, 가로 150 세로 120의 그림 하나를 나란히 쳐다보고 있는 마크와 세르주의 뒷모습이 보인다. 그 흰색 캔버스에는 흰색 바탕에 흰색 줄무늬가 쳐져 있다고는 하는데... 그림을 요리조리 살펴보던 마크는 결국 참지 못하고 관객에게 말을 건다. '내 친구' 세르주가 그림 하나를 샀다고.

 

연극 <아트>의 인물은 수시로 제4의 벽을 깨부수며 관객에게 말을 건다. 그러니 정작 친구들에게는 그 속마음이 들리지 않게 되는 것이다. 한 인물의 내밀한 감정에 대한 정보는 오직 관객들에게만 열려 있으며, 작품 속 친구들은 그걸 모른다. 그렇게 '관객은 알지만' '당사자는 모르는' 정보의 불균형을 통해서 관객은 이해하기 어려운 인물들의 태도를 점차 가늠하게 된다. 결국 이 셋은 예전부터 이어져온 서로 간의 공통점을 잃어버렸다는 사실까지 함께.

 

마크는 세르주를 마구 삿대질하며 정보를 전달한다. 그는 피부과 의사로, 부족함 없이 살고는 있지만 저런 작품 하나에 5억을 태울 만큼 부유한 건 아니라고! 마크는 세르주가 저 그림을 샀다는 사실에 몹시 분노한다. 어떻게 아무것도 없는 저 흰색 판때기를 살 수 있지? '내가 아는' 세르주라면 절대 저런 걸 사지 않아.

 

하지만 세르주는 되려 분노한다. 그림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순 있지만, 감히 이 작품을 '판때기'로 폄하하는 걸 용납할 수 없다고. 세르주는 자신의 작품을 인정하지 않고 비난하는 마크에게 선전포고라도 하듯 강력한 한 방을 먹인다.

  

 

"너 유머 감각은 대체 어디다 갖다 팔았냐?"

 

 

이럴 수가. 마크는 엄청난 타격을 입는다. 친구끼리 형성한 유머 코드는 상당히 민감한 부분이니까. 웃음이라는 게 별 거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가 않다. 웃음을 주고받는 행위 자체가 서로 간에 형성한 '공감 지대'를 뜻한다. 너와 내가 재미를 느끼는 부분이 같다는 사실에서 오는 공통점. 그게 친구 사이를 좌우한다고도 볼 수 있고. 하지만 이제 더는 얘가 던지는 '농담'이 유쾌하다고 느껴지지 않을 때. 오히려 불쾌하고 짜증나게만 느껴지는 그 순간, 친구 사이에는 엄청난 위기가 닥친다. 그렇게 마크와 세르주는 서서히 공통점을 잃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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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더블케이엔터테인먼트

 

 

이반은 문구업자로 현재 결혼을 앞두고 있다. 뭐가 좋고 싫은지를 명확하게 표출할 줄 모르고, 우유부단한 태도로 '미꾸라지 같은 놈'이라는 신랄한 평가를 듣기도 하는 인물이다. 마크는 그런 이반에게 세르주가 저지른 짓, 즉 5억짜리 흰색 판때기를 구매한 것도 모자라 저더러 '유머 감각'을 잃었다는 폭언까지 내뱉었다는 사실을 털어놓는다. 그 길로 세르주를 찾아간 이반은 마크가 말한 작품을 두 눈으로 본다. 정말 흰색 캔버스에 불과하다는 사실에 놀라기도 잠시, 이게 5억이라 해도 네가 행복하기만 했으면 됐다는 이반은 세르주와 한참 웃음을 주고받는다.


<아트> 자체가 코미디를 내세우는 극이기도 하지만, 이 작품에서 특히 '웃음'에 집중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이반과 세르주 사이에는 아직 '웃음'이 통하는 공감 지대가 남아 있긴 하지만, 마크와 세르주는 웃음을 잃고 싸우기 바쁘다는 것. 이렇게 공통점이 옅어진 셋은 이제 '균열'을 향해 나아간다.

 

 

 

세네카를 읽으라고 했지, 방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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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더블케이엔터테인먼트

 

 

자신의 막말을 후회한 마크는 최대한 친절한 태도를 보이자 다짐한다. 하지만 세르주가 자꾸 해체주의니 모던함이니 세네카니! 어려운 말을 꺼내자 결국 다시 폭언을 주고받는다. 뒤늦게 약속에 등장한 이반은 미안하다는 말 대신 내가 왜 늦었는지를 주절주절 늘어놓으며 더욱 혼란을 가중시킨다. 이제 이 셋은 그 누구도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다. 그저 자신의 입장만을 고수하며, "네가 이해해 주기를", "내 말이 옳음을 받아들이기를" 바란다.

 

그런 마크가 세르주에게 화를 내는 이유는 명백하다. 고작 흰색 캔버스에 불과한 작품을 5억이나 주고 사서? NO! 원래 같았으면 '내 말을 들었을' 세르주가 이제 자신의 생각대로 움직이려고 했기 때문에. 자기가 아닌 다른 무리와 어울렸기 때문에. 결정적으로는, 저 흰색 판때기가 자신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마크의 아내 이야기까지 꺼내며 비난하는 세르주는 이제 네 일이 되니까 가슴에 막 사무치지 않냐고 외친다. 사과하라며 달려드는 마크, 피해 도망치는 세르주, 그 둘을 말리는 이반. 위태위태하던 무대는 결국 난장판이 된다.

 

 

 

내가 나인 것은 내가 나이기 때문이고, 당신이 당신인 것은 당신이 당신이기 때문에...


 

격렬한 몸싸움 끝, 녹초가 된 마크는 세르주에게 말한다. 저번에 나랑 내 아내 어때 보이냐 물었을 때, 너는 둘이 잘 어울린다고 말했지. 그러니까 오늘 네가 내 아내에게 내린 평가는, 다시 말해 나에 대한 평가는 상당히 모질었다고. 그러자 세르주는 선언한다. 이렇게 우리 우정이 끝나네. 한심하다는 이반은 어쩌다 이렇게 됐냐고 묻는다. 그렇게 셋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그러니까 세르주가 그림 하나를 샀는데...

 

벌떡 일어난 세르주는 자신의 5억짜리 그림을 가져와 둘 앞에 내려놓는다. 그러고는 이반에게서 펜 하나를 빌리더니 마크에게 던지며 말한다. 이 흰색 캔버스에 그림을 그려 보라고.

 

망설이던 마크는 주욱- 선을 긋고, 그 위로 하얀 눈이 펑펑 내리는 스키장에서 스키를 타는 남자 그림을 그린다. 그렇게 셋은 결국 '회복 기간'을 갖기로 한다. 망가진 우정을 회복하겠다는 세 친구의 결심으로 <아트>는 막을 내린다.

 

 

 

나는 '내 친구'를 안다. 어쩌면, 조금?


 

세 인물은 모든 일의 원흉이자 발단인 하얀 캔버스 위로 각자의 그림을 그리는 캐릭터다. 이 흰색 배경 위로는 어떤 색이든 덮어씌울 수 있으니까. 그러니 내가 생각하는 친구의 이미지를 흰색 바탕 위에 제멋대로 그리려는 세 인물은 끊임없이 충돌하지만, 엉망이 된 캔버스를 함께 지우기로 약속하며 친구 관계를 회복하기까지 나아간다. 각자의 다름을 인정하는 것, 내 친구가 더 이상 과거의 그 사람이 아님을 받아들이는 것. 그러다 막 도망갈 것 같을 때는 이렇게 싸움이라도 하면서 되돌리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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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더블케이엔터테인먼트

 

 

대체 친구라는 건 왜 이렇게 어려운 걸까? 둘도 없는 사이처럼 지내다가도 잠시 한눈이라도 팔면 친구는 어느새 저 멀리 달아나 있다. 그럼에도 난 왜 끝끝내 친구 옆에 남으려는 걸까? 우리를 이렇게 만들어주는 것은 무엇일까. 결국 너와 나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연극 <아트>를 한두 번 본 것도 아닌데, 볼 때마다 각자 다른 친구의 얼굴이 떠오른다. 이번 2026년 3월 31일에 개막한 <아트>를 볼 때는 일을 시작하며 바빠진 친구를 떠올렸다. 작년에는 하루에도 몇 번씩 연락을 주고받았는데, 너무 바빠진 일정 탓에 이제는 연락조차 쉽지 않아졌다. 그래서 공연을 보고 나오는 길에 그 친구에게 연락을 하며 이반의 말을 떠올렸다. 내가 나인 것은 내가 나이기 때문이고, 네가 너인 것은 네가 너이기 때문이지만. 내가 이렇게 멀쩡히 살아가는 데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하는 건, 곁을 떠나지 않고 머물러 주는 너희들의 존재 덕분임을 확신한다고. 이렇게 지면을 빌려서라도 고백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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