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일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의 유명한 철학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너무나 유명한 책이지만 특별한 결심 없이는 이 책을 완독하기는 참 어렵다. 철학 교양 강의 추천 도서였으나 몇 장 읽다가 이내 덮어버린 기억이 난다. 삶의 깊은 철학을 받아들이기에는 거리가 멀었던 20대를 지나, 이제는 차라투스트라의 말을 조금 더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여 다시금 꺼내들었다.
책은 총 4부작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차라투스트라가 자신의 깨달음을 설파하고자 10년간 머무르던 동굴에서 나오는 것으로 시작된다. 신은 죽었다는 깨달음과 함께. 이 깨달음은 인간이 살아가면서 기본적으로 전제하고 있던 것, 믿어오고 있었던 것을 완전하게 부순다. “모든 신은 죽었다. 이제 우리는 초인간이 살기를 원한다”
내 자아는 나에게 새로운 긍지를 가르쳐주었다. 나는 그 자부심을 이제 사람들에게 가르치려 한다. 사람들에게 이제 더는 천국의 일에 처박혀 현실을 외면하지 말고, 그 대신 머리를, 이 땅에 의미를 창조하는 땅의 머리를 자유롭게 들고 다니라고 말이다. p.57
네가 가진 덕 하나하나가 얼마나 최고선을 갈망하는지를. 너의 그 덕들 하나하나는 너의 온 정신으로 그 덕의 전령이 되기를 원하며, 분노나 증오나 사랑에 있어서도 온전한 힘을 원한다. 각각의 덕은 또 다른 덕을 질투한다. 질투란 끔찍한 것이다. 모든 덕은 질투로 인해 파멸할 수 있다. p.66
이전엔 “신은 죽었다”가 단순 종교에 대한 비판적인 선언으로 느껴졌다면, 이번엔 달랐다. 당연하다고 믿어왔던 가치관과 개념을 다시 돌아보게 했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 믿어왔던 것, 진리라고 여겼던 것을 곱씹어 보게 했다. 절대적 가치라는 것이 존재하는가? 각자의 덕과 욕망을 온전히 살아내는 것이 진정한 진리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정해놓은 가치와 기준을 한번쯤 의심해 본다. 나는 그동안 남들이 정해놓은 기준을 따라가기 급급하지 않았을까. 그 범주에 들지 못하면 조바심이 나고, 비정상적인 것 같은 기분에 휩싸여 왔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나의 삶의 기준에 대해 고민했다. 니체가 말하는 초인은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영속하는 선과 악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자기 자신에 의해 끊임없이 극복되어야 한다. p.218
나는 자부심 있는 자들보다는 허영심 있는 자들을 더 소중히 여긴다. 상처 입은 허영심은 모든 비극의 어머니가 아닌가? 그러나 자부심이 상처를 입은 곳에서는 자부심보다 더 나은 무엇이 생기게 될 것이다. p.274
차라투스트라는 가치의 끊임없는 전복과 극복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 나름의 기준을 세우고 그것이 진실이라고 믿고 살아가는 우리에게, 유동성과 유연함을 부여한다. 어쩌면 성장한다는 것은 새로운 답을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한때 나에게 답이었던 것을 넘어서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의 분별력에 대해 말할 때 자부심있는 자보다 허영심 있는 자들을 더 소중히 여긴다고 했다. 여기서 자부심은 자신의 내부에서 나온 가치에 대한 확신이고, 허영심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그런 확신이 유발되어 그처럼 되고 싶은 희망을 말한다. 흔히 허영심이라고 하면 부정적인 감정부터 떠올리지만, 오히려 그 욕망 속에서 변화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것 같다. 또 한 번 고정적인 관념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너희 우월한 사람들아, 너희가 경멸했다는 것이 내게 희망이 있게 한다. 왜냐하면, 큰 경멸자가 큰 숭배자이기 때문이다. 너희가 절망했다는 것, 거기에 존경할 만한 것이 많이 깃들어 있다. 너희는 복종하는 것도 배우지 못했고, 작은 지혜도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p.532
굳어진 관념을 깨는 차라투스트라의 말. 누군가를 돕고, 사랑하지 말고, 배우지 말라는 그의 말. 단편적으로는 냉정하고 극단적이나, 스스로 선택하고 믿어왔던 것들을 의심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지 않을까 추측해본다. 그래서 차라투스트라의 말은 친절하게 정답을 알려주는 가르침이라기보다, 내가 답을 찾고 당연했던 것을 부수어보는, 나를 끊임없이 흔드는 질문에 답을 찾아보는 가르침인 것 같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조금은 편안하고도 자유로운 기분이 들었다. 정답이라고 믿어왔던 것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나를 편안하게 만들었다. 수많은 기준에서 한 발짝 물러나 그것들을 의심해보는 순간,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생각해보게 하는 여지와 여유가 생겼다.
초인간은 내 가슴속에 있다. 초인간은 나의 첫 번째이자 유일한 관심사이다. 그는 인간이 아니다. 이웃도, 가난한자도, 고통받는자도, 선한자도 아니다. p.532
‘초인간’이 되라는 차라투스트라의 말, 초인간은 어떤 특정된 인간과 가치관이 아니라, 그저 내 마음 속에 있는 것이다. 니체가 내게 남긴 가장 큰 질문은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가 아니라, “나는 지금의 나를 넘어설 수 있는가”였다. 답을 찾는 책이 아닌, 질문을 품고 살아가게 만드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