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차라투스트라가 어떤 인물인지 모르더라도 그의 이름을 알고 있고 니체나 철학에 관심 없더라도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라는 제목을 알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은 유명세와 판매 부수와 별개로 어렵기로 유명하다. 관심이 없는 사람은 지나쳐가서 이 책이 얼마나 어려운지 모르고, 관심이 있는 사람만이 읽었을 뿐 이해했다고 할 수 없다고 혀를 내두르는 다수의 후기를 접했을 것이다. 내가 낡고 지친 사회인이 아니었더라도 이 책을 단기간에 완독하리라는 허황된 꿈을 꾸지 않았을 것이다. 패기 넘치게 철학 강의를 들었던 20대 초반에도 그런 착각에 빠지지 않았다. 이번에 이 책을 읽기 시작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이제는 그럴 때가 된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제목에서부터 등장하는 차라투스트라부터 설명하자면, 조로아스터교의 창시자이며 도덕이란 개념을 세운 인물이다. 이 책은 차라투스트라가 10년간 산속 동굴에서 고독하게 수련을 하고 세상에 내려와 하는 이야기를 모아두었다. 요약하자면 신은 죽었으며 우리는 초인이 되어야 한다.
이렇게 단순히 이야기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이 책은 기독교의 패러디, 차용, 은유가 많아서 배경지식을 필요로 한다. 시적이라 그 뜻을 알지 못하면 이해하기 힘들다. 때문인지 어떤 이야기에서는 니체의 글보다 역자의 주석에 더 많은 공간을 할애하고 있다.
불완전한 우리는 절대적인 신과 종교의 언어를 빌려 선과 악, 도덕적 기준을 정립했다. 그런데 신은 죽었다니 어떻게 사고하며 살아야 하는가. 여기서 우리가 아는 니힐리즘이 등장한다. 그러나 우리가 가야 하는 방향은 올바름으로 향하는 길이다. 재단된 삶이 아닌 개척하는 삶. 목적과 결과가 아니라 꾸준하게 무엇을 극복해가면서 가치를 찾아 확립해야 한다. 그걸 초인이라고 한다.
"진실로, 나는 결코 덕이 자기 임금이라 가르치지도 않으니."
"어머니가 아이를 사랑한 대가로 보상받기를 원했다는 말을 지금껏 들어본 적이 있는가?"
- 176쪽
이 말은 기독교에서는 현세에서 선한 일을 하면 내세에서 보상을 받는다는 개념에 대한 비판이다. 한국에서는 조금 다른 의미로 '덕을 쌓는다'라는 개념이 있다. 공동체 사회에서의 상부상조이기도 하며, 좋은 일을 하면 다른 좋은 일로 돌아온다는 의미에서 이 말을 사용한다. 한국에서의 덕은 현세를 향하고 기독교 사회에서는 내세를 향한다는 큰 차이가 존재한다.
불완전한 현세와 이데아의 내세. 이러한 개념은 현실의 삶을 내세를 위한 도구로 만들게 되었다. 원죄를 가지고 있는 인간이 사는 불완전한 곳에서 덕을 쌓으면 완벽한 내세에서 보상을 받는다는 개념을 타파한 것이다. 그렇다면 니체에게 이 세상은 완벽해질 수 있거나 개인이 초인이 된다면 완전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가 자기 극복이란 개념을 익히면서 '완벽과 불완전'이라는 이분법적 구조에 갇혀있다는 걸 깨달았다. 불완전한 현세라도 해도 상관없는 것이다. 부정할 것도 고쳐나가야 하는 잘못된 무언가가 아니며, 개인은 이런 세상에서 자기극복을 통해 초인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삶이 내게 직접 이 비밀을 말했다. "삶이 말하기를, 보라, 나는 끊임없이 스스로 자기를 극복해야 하는 존재다."
- 217쪽
그렇다면 초인은 무엇이고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이건 1부의 시작인 '세 변화에 대해'에서 일찌감치 언급했다. 짐을 지고 험한 길을 가는 낙타에서 학습 없이 본능적으로 사냥하는 포식동물인 사자,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이. 사회적 규범에 길들여지지 않은 아이는 끊임없이 본인만의 가치를 만들어 그 순간에 대응한다. 자유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너머의 것. 그래서 마지막은 순진무구한 아이가 되는 것이다.
이번 독서에서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개념은 여기까지였다.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읽어보기도 했고 일단은 한 번 읽고 그다음에 해설과 다름없는 주석을 읽어가며 보완했지만 읽는다고 다 이해할 수 있지 않았기 때문에 이번 도전에서는 한계를 경험하는 데 의의를 두게 되었다. 단순히 시간이 흐른다고 이해하게 될 사상이 아니기 때문에 독서와 공부를 통해 노력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걸 체감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머리에 쥐가 날 것 같아서 한동안은 니체 근처를 맴돌지도 못할 것 같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