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애니메이션의 이미지는 무엇일까. 아마도 어린이를 위한 콘텐츠이거나, 혹은 소위 ‘오타쿠 문화’와 관련된 장르라는 인식이 강할 것이다. 하지만 그 두 가지 이미지로만 설명할 수 없는 다른 영역이 존재한다. 바로 독립 애니메이션이다.
올해 22회를 맞은 서울인디애니페스트는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과 함께 국내에서 손꼽히는 애니메이션 영화제고, 특히 독립 애니메이션을 적극 지원한다. 다른 독립영화제에서도 애니메이션을 하나의 섹션으로 소개하는 경우는 많지만, 애니메이션만을 선보이는 영화제라는 점이 특별하다.
영화제는 연남 지역을 중심으로 진행되며, 영화 상영뿐만 아니라 스탬프투어, ‘인디애니의 밤’ 등등 다양한 부대행사도 마련되어 있었다. 특히 영화를 관람한 뒤 관객들이 작품에 대한 감상을 그림으로 표현해 상영관 옆쪽에 걸어 놓을 수 있도록 한 구역도 기억에 남는다.
서울인디애니페스트만의 성격이 영화제 구석구석에서 잘 드러나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이번에 관람한 작품은 <새벽비행2>로, 단편 애니메이션 8편 모음이었다. <베지터블>, <핑거뱅>, <실로>, <닭 잡는 날>, <솜니움>과 같은 작품들에서는 섬뜩하고 공포스러운 분위기가 돋보였다.
우선 <베지터블>은 피가 낭자한 주방을 훑는 장면에 이어 돼지의 모습을 한 인물을 비추는 오프닝이 강렬했다. 차분하지만 어딘가 불안하고 기괴한 작품 전체적인 톤이 인상적이었다. 또, <핑거뱅>은 움직이는 손가락 하나라는 기묘하고 독특한 소재가 눈에 띄었다. 손가락에 점점 빠져드는 여자의 감정을 같이 따라가며 휘말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실로>와 <솜니움>에서는 호러의 분위기가 가장 잘 살아있었으며, 이야기뿐 아니라 표현 기법을 보는 재미도 있었다. 두 작품은 일반적인 2D 컴퓨터 애니메이션 외에 드로잉, 3D 컴퓨터 등 다른 방식을 활용했다는 차별점이 있었다. 실사영화와 달리 애니메이션은 같은 장르 안에서도 이렇게 다양한 시각적 표현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새삼 실감했다.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진진하게 본 작품은 <닭 잡는 날>이었다. 무당인 어머니를 둔 여학생의 하루를 그린 작품인데, 평범한 일상에 서서히 무서운 분위기가 스며들다 폭발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림만으로도 훌륭한 공포 연출이 가능하다는 것이 놀라웠다.
이와 더불어 <코뿔소 이슈>, <그래서 나는 언제 연애해?>, <눈이 내리는 소리>에서는 앞선 작품들과 달리 보다 아기자기하고 일상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코뿔소 이슈>는 한 소년의 일상에 코뿔소가 등장하기 시작한다는 독특한 설정과 상상력이 돋보였다. 감각적인 작화 역시 보기 즐거웠고, 이번 영화제에서 국내 경쟁 대상인 ‘인디의 별’을 수상하게 된 작품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언제 연애해?>는 남녀의 술자리 대화를 풋풋한 감성으로 담아낸 작품이다. 소박하고 사실적인 고민이 보는 이에게도 자연스럽게 와닿았다. 끝으로 <눈이 내리는 소리>는 두 여학생의 우정과 관계의 틀어짐을 잔잔하게 다룬 작품이다. 눈 내리는 날을 배경으로 미묘한 감정들이 오가는 모습에서 많은 여운이 남았다.
지난해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흥행이 있기도 했고, 최근에는 가수들의 뮤직비디오나 드라마 오프닝 등에서도 애니메이션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더 나아가 우리나라에서도 좋은 장편 애니메이션이 많이 제작될 수 있기를 바란다. 국내외 젊은 창작자들의 단편 애니메이션을 발굴해 소개하는 서울인디애니페스트의 역할도 그런 흐름 속에서 더욱 유의미하다고 생각한다.
매년 9월 연남을 찾아, 독립 애니메이션의 매력을 느껴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