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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10대 중반을 지나던 무렵 나는 건강이 좋지 않았다. 밥을 잘 못 먹고 잠도 잘 못 자서 168cm에 몸무게가 39kg이었다.


1년 중 가장 버거운 날은 생일이었다. 태어나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 힘든데, 주변에서는 자꾸 그걸 축하한다고 하는 게 그렇게 버거웠다.


그러다 유튜브에서 우연히 MBC 라디오 ‘푸른 밤 종현입니다’의 클립 영상을 보게 되었다. 관심도 없던 한 아이돌 가수가 나긋한 목소리로 자신의 자작곡을 소개했다. 생일이 누구에게나 기쁜 날은 아닐 수 있다고 생각해서, 아주 느리고 슬픈 축하 노래를 만들어보고 싶었다고.

 

 

 

 

그래서인지 그때 그가 건네오는 축하 인사는 조금도 버겁지가 않았다. 거창한 변화는 아니지만, 좋은 것 하나 없던 세상에서 그 노래 하나가 조금 좋아졌다.


그리고 그가 더 좋아진 것은 나처럼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때 내겐 학업과 입시가 견뎌야 할 전부였고, 문학에 대한 애정과 꿈은 남몰래 키우곤 했다. 그런 내 눈에 그 어른은 당연히 큰 사람이었다. 직접 노래를 만들고 노랫말을 쓰고, 책과 영화를 좋아하고, 소설을 내기도 하고 혼자 시도 쓴다는 사람. 시인이 되고 싶다는 사람. 슬픔을 아는 사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부시게 웃는 사람. 나는 문학을 좋아하듯 그와 그의 팀을 남몰래 은은히 좋아하게 되었다. 체중이 10kg 늘어난 것도 그 이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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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현의 솔로 정규 2집 [Poet | Artist]를 처음 들을 용기가 난 것은 2020년이었다. 그 사이 3년이 조금 안 되는 시간은 자세히 기억하고 싶지는 않다. 그는 나를 살게 했는데, 나는 그를 살게 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견딜 수 없어 도망쳤던 것 같다. 가족분들과 멤버들, 많은 팬분들이 종현을, 샤이니를 온 힘을 다해 지켜온 동안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뒤늦게 그 앨범과 샤이니의 6집을 들으며 많은 것을 알았다. 늘 끔찍한 미움과 미안함 사이를 정신없이 넘실거렸는데, 사실 나는 그를 미워하지 않는다. 그럴 수가 없다. 그리고 그 사람도 세상을 미워하지 않았다. 그 모든 것과 별개로 분명 세상 구석구석을 사랑했을 사람이다. 모든 약속은 다 진심이었고, 충분히 행복하기도 했을 것이다.

 

 


 

 

'하루의 끝', '한숨' 같은 노래뿐 아니라, 그가 경쾌하고 사랑스러운 음악도 얼마나 잘 만들고 잘 불렀는지를 많은 이들이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그의 유작이라는 이유로 대중에 슬픈 이미지로만 비추어지지만 사실 이 앨범의 수록곡도 대부분 밝고 리드미컬한 노래들이다.


마지막 트랙인 '우린 봄이 오기 전에'를 들으면서는, 그의 노래들 중 가장 시적이고 문학적인 곡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가을이긴 한가 봐', '따뜻한 겨울'이라는 계절별 노래를 썼었고, 봄에 관한 노래도 쓰고 있다고 했었다. 그걸 한참이 지나서야 들으며 내가 한 생각은 우습게도, 여름에 관한 노래에 대해서였다. 여름을 싫어해서 여름 노래는 안 쓸 거라고 했었는데, 혹시 여름이 좋아지진 않았을지. 언젠가 그런 순간이 오진 않았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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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또 한 번의 여름이 오고 있다. 2025년 5월 25일, 17주년 데뷔일을 맞아 샤이니는 싱글 앨범 [Poet | Artist]를 낸다. 종현이 샤이니를 위해 작업 중이라고 언급했던 제목의 곡이다.


태민의 솔로 앨범 [ACE]에서 여러 요소를 차용해 종현이 [BASE]를 낸 뒤로. 키의 [FACE], 온유의 [VOICE], 민호의 [CHASE]가 이어졌다. 종현의 [Poet | Artist]도 이 규격과 디자인을 따랐다. 샤이니의 [Poet | Artist]도 마찬가지다.


실은 간절히 보고 싶었던 것 같다. 그가 떠나기 하루 전에도 나는 밤도깨비라는 예능 예고편을 보고 일주일을 어떻게 기다리지, 했었는데 이렇게 오래 기다릴 줄은 몰랐다. 그렇게 비공개된 모든 것, 그가 남기고 간 미완성된 모든 것을 보고 듣고 싶었다. 얼마가 걸려도 좋으니 정말 나중이라도 언젠가는 그런 날이 오기를 소망했다.


정말 더 솔직해진다면, 더 많은 것이 보고 싶었다. 약속했던 소품집 3집과 두 번째 소설 같은 것들. 그가 함께하는 샤이니의 6, 7, 8집과 콘서트. 멤버의 고정 예능에 게스트로 출연하는 모습. 버블 같은 새로운 문화는 또 얼마나 재밌어했을지. 당신의 30대는 얼마나 더 아름다웠을지.


하지만 다 내 욕심임을 알고, 결국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우연히 어느 노래 하나를 들었던 처음. 내가 기억해야 할 건 그런 순간들이라고.


나는 여전히 겨울이 힘들고, 눈이 많이 오는 날이면 숨이 잘 안 쉬어지지만, 내가 기억해야 할 건 여름. 눈부신 여름. 그가 좋아했던 모든 것. 거대한 가치들부터, 아주 작은 젤리 하나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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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지금 곁에 있는 사람들. 그들의 모든 결정을 믿고 지지하고 싶다. 설령 그게 완벽하지 않더라도, 때로는 좀 부족한 모습을 보일지라도. 그래도 어떤 세상은 너를 온전히 안아줄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이 마음껏 무너지며 살았으면 좋겠다.


샤이니 말고도 내가 좋아해 온 가수는 많다. 좋아하는 시인도 예술가도 많다. 문학은 취미로만 하겠다던 다짐이 무색하게 국문학과에 진학해서일까. 그래도 내 생애 최고의 시인을 꼽아야 한다면 김종현을 꼽을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모든 것을 최선을 다해 좋아하겠다고 결심한다. 이 순간이 돌아오지 않을 것처럼. 정말로 돌아오지 않을 테니까.


감히 영원을 약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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