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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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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리뷰는

영화 <올 그린스>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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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라는 단어는 우리에게 무한한 가능성을 안겨 줄 것 같지만, 막상 당도한 미래는 늘 삶의 따가움으로 우리를 밀쳐낸다. 청춘 역시 그렇다. 모두가 그토록 예찬하는 푸릇하고 톡톡 튀는, 빛나는 시기. 그러나 막상 그 소용돌이 속에 있는 이들은 이딴 게 청춘이냐며, 그 내실 없는 말에 조소한다.


극중 가장 청춘다운 청춘을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였던 야구치 밀크는 말한다. 영화에서, 만화에서, 보여주는 반짝거리는 청춘은 모두 가짜라고.


<올 그린스>에서 보여주는 청춘은 기존의 청춘영화처럼 막연히 아름답거나 청량하지 않다.

 

이들의 삶은 차라리 '야생'에 가깝다. 외딴 시골 마을, 노동의 위험이 상존하는 공업 고등학교, 성범죄의 위협, 가정폭력과 정서적 학대까지. 2025년 현대 일본에서의 사회 문제들이 너무 무겁지 않은 블랙 유머로 무장한 채 영화 전면에 흐른다. 시작부터 이들의 삶은 이미 충분히 불온하다.


그렇기에 이들을 한 데 묶게 만드는 매개가 다름 아닌 '대마'라는 것은, 역설적인 설득력을 선사한다.


재일교포 3세, 미묘한 인종차별과 가정폭력을 랩으로 버텨내는 소녀 보쿠 히데미, 반에서 가장 화려해보이지만, 가정 불임에 오랜 기간 정서적 학대를 당해온 야구치 미루쿠, 강압적이고 가부장적 사상의 집안에서 자라면서도 만화가의 길을 꿈꿔온 이와쿠마 마코.


쏟아지는 세상의 폭력과 부당함 속에서, 금기시된 길을 택한 이 소녀들을 마냥 비난하긴 어렵다. 훈계하는 손가락질 너머로 비딱하게, "제 청춘에 보태주셨어요?" 되묻는 소녀들의 얼굴이 절로 떠오르기 때문이다.

 

서로의 통점을 '공범'이라는 이름 아래 함께 안으며, 눈부신 청춘을 버려 오히려 가장 싱그러운 그들의 이야기. <올 그린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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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중 배경 2025년. 08년생의 어린 소녀들은 스포티파이로 음악을 듣고, 인스타그램으로 프로듀서를 컨택한다. 그러나 이들을 엄습해오는 세상의 폭력과 부당함은 지독하리만치 구시대적이다.


미루쿠는 학교의 실습 노동 중 새끼손가락을 잃는 사고를 겪고, 히데미는 가정폭력에 시달리고. 이와쿠마는 가부장적인 집을 벗어나기 위해 시골 볼링장에서 짠 시급을 받으며 알바를 한다.


동급생이지만 접점 하나 없던 이 세 소녀를 묶은 것은 어느 밤 사거리에서의 사고이다. 아이를 안고 뛰쳐나와 차에 치인 여자. 피를 뚝뚝 흘리며 그녀는 아이를 안은 채 어디론가 사라지고, 밤거리에는 이 세 소녀만 남아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적막해진다.


소녀들 역시 그 길로 집에 향하고, 아무 일 없던 것처럼 등교한다. 사고 후 친구도 함께 잃은 미루쿠는 신발을 갈아신는 히데미에게 조용히 전한다. 가정폭력 끝에 도망쳐 차에 치이고, 셋의 목격 후 그대로 아이와 함께 강가에서 발견되었다는 여자의 결말을. 미루쿠의 나직한 목소리는 지긋지긋함을 담고 있다. 이들에게 그것은 자신들의 미래를 예고하는 것처럼 보인다.

 

어느 날 보쿠 히데미는 작업을 위해 트랙 메이커를 만나러 갔다가, 강간의 위협에서 겨우 벗어난 후 대마 씨앗을 훔쳐 달아난다. 이때 히데미는, 이 씨앗이 무엇을 싹 틔우게 될지는 차마 알지 못했다.


화려하고 완전한 미래일 것 같은 2025년에도 비극은 빈번하며, 세상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올 그린스>는 그런 세상의 고질적인 잔인함을 첨예한 Z세대의 감각으로 묶는다.

 

체념과 조소로 일관하는 시크한 소녀들이지만, 이들에게도 각자 남몰래 아껴온 낙원이 있다.

 

2020년대는 그야말로 취향의 화수분이라 볼 수 있다. '힙스터', '감도', '취향', '큐레이션'. 다양한 경로로 쉽게 다채로운 매체와 감각을 맛볼 수 있다. 학교에서는 조용하고 무심하게, 진로 희망에 아무것도 써넣지 않는 아이들이지만 저마다의 방식과 낙원으로 도피한다.

 

보쿠 히데미는 역 근처 소규모 사이퍼 크루에서 활동한다. 프리스타일 랩으로 억눌린 감정을 해소하는 그녀에게, 랩은 유일하게 숨 쉴 수 있는 것, 유일하게 사랑할 수 있는 것이다. '노는 아이'처럼 보이는 야구치 미루쿠는 온갖 주요한 영화감독과 영화를 꿰뚫고 인용하는 시네필이다. 사귀기 싫은 사람으로 "영화 끝나고 너무 길다고 불평하는 사람"을 꼽으며 깜깜히 영화 화면이 꺼지는 장면에서, 관객들은 웃음을 참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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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가를 꿈꿔온 이와쿠마는, 후배와 함께 코믹 페스티벌을 즐기러 도쿄에 다녀온 적도 있고, 점프에 원고를 투고해오고 있었다. 번외로 이와쿠마의 배우인 요시다 미츠키가 애니메이션 <룩백>에서, 히키코모리 출신 만화가 쿄모토의 성우를 맡았다는 사실 역시 재밌는 부분이다.

 

우연히 히데미는 미루쿠에게 역 앞 크루에서 활동하는 모습을 들키고 만다. 정말 청춘 같다며 멋있다고 랩을 해달라는 미루쿠에게, 청춘다운 청춘을 보내는 너 같은 아이는 모를 거라는 랩으로 그녀를 힐난한다.

 

그러나 미루쿠는 오히려 히데미를 껴안고 그런 청춘은 다 가짜라며, 웃음 속에 감춰온 자신의 결핍을 털어놓는다. 한껏 가까워진 이들은 볼링장에서 수다를 떨다가, 알바 중이던 이와쿠마를 만나게 된다. 학급에선 채 알지 못한 서로의 어두운 면면을 알게 된 이 셋은 서로에게 깊은 동질감을 느끼게 되는데, 이 지긋지긋한 시골 마을을 떠나고 싶다는 소망으로 공모하게 된다.


청춘을 저버리고 불온함을 선택하며, 친구가 아닌 동업자라는 이름으로 서로를 묶지만, 오히려 그 아래에서 생경한 이들의 청춘 크라임 뮤비는 되살아난다. 조금씩 자신의 세계를 열어 보이다가, 궁극에는 서로를 안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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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1999년생의 작가 나미키 도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Z세대 작가의 작품을 실사화한 것답게, 기존의 문법과는 불화하는 톡톡 튀는 어긋남과 연출, 찰나의 빛나는 포착들은 이 영화에 신선함과 키치함을 더한다. 일본에서 가장 주목받는 세 라이징 스타를 주역으로 내세운 것 역시 이러한 작품의 결에 힘을 보탠다.


흔히 Z세대는 하고 싶은 것은 다 하고, 하기 싫은 일은 철저히 거부하며, 할 말은 꼭 해버리고 마는 당돌하고도 개인주의적인 세대로 오인되곤 한다. 영화 속 세 소녀도 겉보기엔 꼭 그렇다.


추적 불가한 어플을 가장해 판매 경로를 확보하는 철저함, 과학실 비품을 훔쳐 더 고순도의 마약을 만들어내는 대담함, 그리고 발칙한 아이디어와 프로페셔널함으로 무장한 채 그들은 '친구'가 아닌 '동업자'로서 일확천금을 벌어들인다. 비싼 헤드폰을 사고, 종이 대신 아이패드로 만화를 그리고, 캠코더를 산다. 마치 YOLO 족처럼. 그러나 이들의 일탈은 사실 굉장히 소박하다. 배달 음식을 시켜 파티를 벌이고는, 캠코더로 이를 촬영하며 제 꿈과 소망을 담아내는데, 사실 그들의 바람은 소박하다 못해 비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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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쿠 히데미는 상경해 랩을 하는 얘기를 하지만 결국 결혼으로 사라지는 미래를 말한다. 야구치 미루쿠는 촬영장에서 알바를 하며 영화를 찍을 것이라 얘기하지만, 성공한 감독이 아닌 그저 영화를 찍는 것을 꿈꾼다. 이와쿠마는 그림을 너무 못 그려서 만화가 같은 꿈은 접었다며 쓸쓸히 조소한다.


커다란 꿈과 자신감으로 부풀어 개성을 표출할 것 같지만, 실상 이들이 스스로를 바라보는 시선은 차갑기 그지없다. 수많은 매체를 통해 타인의 성공과 실패를 너무 일찍 목격해버린 Z세대에게, 미래는 가능성의 장이 아니라 이미 체념한 결말에 가깝다.


화려해보이는 소비도, 당장을 즐기는 YOLO도 어쩌면 그런 체념에 대항한 도피책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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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영화는 이 체념의 끝에서 오히려 반전을 행한다. 보쿠 히데미가 프로듀서의 협박으로 위기에 처하자, 미루쿠와 마코는 단박에 동료를 버리는 대신 상경의 꿈을 포기하고 함께 껴안기를 택한다. 미루쿠와 마코의 희생에, 히데미는 보답하고자 크나큰 결단을 내리게 된다.


마지막 결말에서 대마로 웃음꽃이 피는 체육관에서, 이와쿠마는 활짝 웃는 얼굴로 후배에게 다시 만화를 그리자며 외치고, 미루쿠는 추적을 피해 달려나가는 히데미를 있는 힘을 다해 응원한다.


이후 점멸된 화면에서 이 세 소녀의 결말을 보여준다. 꿈은 반쯤은 이루어진 형태로, 그러나ᅠ실망스럽기 짝이 없는 채로 마무리된다. 세 소녀가 부디 행복하기를 바라며 함께 달려온 관객들이 실망했을 무렵,


그렇게 되겠냐, 바-보-!

 

별안간 나타나 외치며 비웃는 미루쿠의 얼굴은, 산뜻하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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