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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생과 사, 삶과 죽음은 오랜 시간 인간을 지배해온 주제다.

 

대중매체에서 죽음은 보통 서사 속 사건으로 다루어지곤 한다. 특히 최근 액션, 범죄 수사 장르의 드라마가 증가하며 더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다. OTT에서는 청소년 관람 불가 수위로도 방송을 할 수 있어, 죽음을 점점 더 자극적이고 흥미 위주로만 다루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하지만 단순히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죽음 그 자체를 서사로 다루는, 죽음의 무게를 곱씹게 만드는 작품들도 필요해 보인다. 특히 죽음은 현실에서 가볍게 꺼내기 어려운 소재다. 되도록 빠르게 극복해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는, 모두가 겪지만 모두에게 불편한 부분이기도 하다. 그런 누군가가 언제든 꺼내보며 위로받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드라마의 역할 중 하나일 것이다. 또, 그에 대해 아직 생각해 본 경험이 없는 이들에게는 여러 형태의 죽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며, 세상과 인간에 대한 이해를 돕고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이때 '판타지'를 가미하면 대중적 접근이 보다 쉬워진다는 장점이 있다. 삶과 죽음은 무겁고 어려운 내용이지만, 판타지가 들어가면 흥미, 재미, 가벼움도 함께 갖추게 되기 때문이다. 대중매체, 특히 드라마에서 이는 중요한 요소들이다. 삶과 죽음을 다루는 국내 판타지 드라마 중 주목할 만한 몇몇 작품을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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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ING 욘더(2022)


 

<욘더>는 근미래를 배경으로 한 SF 드라마다. 병으로 안락사를 택해 사망한 이후(한지민)가, 그녀의 생전 기억으로 설계된 가상 세계 '욘더'에 남편 재현(신하균)을 초대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욘더 속 이후는 가짜인가, 진짜인가. 이후는 계속 존재한다고 할 수 있는가. 시청자는 재현과 함께 이러한 고민 속에 빠진다.

 

6부작이라 깊이는 얕은 편이지만, 재현이 이후의 상실을 견디기 위해 애쓰는 과정이 잘 담겼다. 적어도 비슷한 소재의 영화 <원더랜드>(2024)보다는 유의미한 이야기를 보여주었다. <욘더>는 가상 세계라는 소재를 통해, 죽음의 극복은 부재를 인정하는 것부터가 시작임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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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ING 내가 죽기 일주일 전(2025)


 

지난 4월 공개되어 호평을 받은 드라마다. 4년 전 모종의 사고로 죽은 첫사랑 람우(공명)가 저승사자가 되어 돌아와, 희완(김민하)을 다시 한번 살게 하는 이야기다.

 

저승사자들이 자살 예정자를 구하러 다니는 드라마인 MBC <내일>(2022)이 연상되기도 하지만, 그와는 작품의 결이 완전히 다르다. <내일>의 경우 따지자면 죽음 자체보다는 여러 사회적 이슈에 따른 피해를 조명하는 느낌이 더 강하다. 극적인 구조와 가해자 처벌 장면을 통해, 저승사자는 일종의 영웅 서사 인물처럼 활용되었다. 자살 기도 상황을 다소 자극적으로만 다룬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반면 <내가 죽기 일주일 전>은 갑작스럽고 우연한 상실에 초점을 맞추었다. 사적인 맥락에서의 상실을 다루며, 특히 희완의 내면을 심도 있고 섬세하게 그려냈다는 장점이 두드러진다. 람우를 잃은 뒤 4년, 그리고 거짓말처럼 찾아온 일주일 동안 희완의 변화는 많은 시청자들의 마음에 와닿았다.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판타지로 구현된 이 물음은 현실에서는 표현하기 어려웠을 감정과 상황을 문학적으로 전달한다. 비극에 함께 매몰되는 것이 아닌, 남은 이가 제대로 잘 사는 것이 떠난 이의 생명을 의미 있게 만드는 일임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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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천국보다 아름다운(2025)


 

80세 노인의 모습으로 천국에 간 해숙(김혜자)이 30대로 돌아간 남편 낙준(손석구)과 재회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판타지 드라마가 가장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작품이라 생각된다.

 

우선 천국이라는 독특한 설정에 대한 기대를 충족하지 못한다. 초반부에는 참신한 부분도 있었으나, 천국에서의 생활과 전개가 지상과 거의 똑같아 회차가 지날수록 이 드라마만의 특징이 느껴지지 않는다.

 

또, 앞서 본 작품들의 2배인 12부작임을 감안해도 중심 서사가 지나치게 약하고, 깊이 있는 통찰이나 감동을 제공하지 못한다. 해숙과 낙준의 관계성 자체는 나름 매력적이지만 겉핥기식 주고받기와 갈등만 계속되고, 다른 주변 인물들의 서사도 힘없이 반복되며 처진다. 외부 에피소드도 매번 중심 서사와 동떨어져 튀어나오는데, 연출마저 세련되지 못하고 노골적이다. 이는 신파라 불리며 일부 시청자에겐 거부감을 일으키고, 오히려 죽음을 가볍게 소비되게 하는 결과를 낳는다.

 

아직 종영까지 일주일을 남겨두기는 했으나, 삶과 죽음, 판타지라는 재료는 제대로 활용해야 함을 알려주는 작품임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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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도깨비(2016)


 

죽은 뒤 불사의 존재가 된 김신(공유)이 인간 소녀 지은탁(김고은)과 사랑에 빠지고 여러 인연이 얽히는 내용의 드라마다. 생과 사, 판타지를 기반으로 하면서도 중심 서사로 로맨스를 택해 극대화했으며, tvN <호텔 델루나>(2019) 역시 비슷한 경우에 해당한다.

 

하지만 중심 서사 주변으로 삶과 죽음에 관한 여러 에피소드를 함께 보여준다는 점이 특징이다. 은탁을 따라다니는 귀신들, 김신이 샌드위치를 건네며 돕는 삶의 벼랑에 몰린 사람들, 저승사자(이동욱)의 찻집에 오는 망자들의 사연이 대표적이다. <천국보다 아름다운>처럼 일회성 외부 에피소드들이지만, 더 다양하고 진중하게 그림으로써 <도깨비>의 해당 장면들은 신파가 아닌 명장면으로 불리게 되었다.

 

드라마는 너무 무거워서도 안 되지만, 지나치게 가벼움에 빠져서도 안 된다. <도깨비>는 적당한 무게감과 대중적 흥미를 모두 잡은 좋은 사례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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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사람의 죽음이 아니라도 큰 의미에서의 상실은 누구나 살면서 겪게 되는 것으로, 상실과 그 이후를 건강하게 겪어내는 일은 중요하다. 잃은 자리는 비워둔 채 다른 무언가를 다시 얻고 채우는 일 말이다.

 

특히 판타지 장르의 드라마는 상상력을 보는 즐거움, 깊고 느린 사유, 시청자도 저마다의 삶을 돌아보게 만드는 몰입감 등 많은 장점과 가능성이 있다. 이를 잘 살리는 좋은 드라마를 더 많이 만날 수 있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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