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아름다움의 창조다. 아름다움이 높은 경지에 이르도록 재주와 기술을 갈고닦는 행위가 예술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재주와 기술은 어떻게 갈고닦아야 할까. 혼자서도 노력은 할 수 있겠지만, ‘높은 경지’에 오르려면 여러 조건이 필요하다.
우선 타인의 객관적인 시선 안에서 확실한 재능이 발견돼야 한다. 재주를 훈련하기 위한 충분한 시간과 돈, 주변인들의 정서적 지원 또한 필수다. 진흙 속 진주를 운 좋게 찾아내도 꺼내지 못하면 소용없다. 흙 안에 깊숙이 파묻힌 진주는 보석이 아닌 흙덩어리일 뿐이다.
1984년 영국 북부 탄광촌. 국무총리 마가렛 대처의 석탄 산업 민영화 정책에 반발해 광부들은 파업에 돌입했다. 광부 아버지와 형을 둔 소년 빌리는, 아버지의 강요로 복싱을 배우러 간 체육관에서 발레 레슨에 휘말린다. 그런 건 기집애들이나 하는 거라며 툴툴대면서도 빌리는 발레 교실을 떠나지 못한다. 복싱 수업에선 주먹조차 휘두르지 못했던 빌리는, 발레 레슨 땐 배운 적도 없는 턴을 하며 자신이 흙 속의 진주라는 걸 깨닫는다.
거부할 수 없는 재능에 이끌려 발레의 세계에 진입한 빌리. 궁정 연회에서 탄생한 고급 예술이자 귀족·부자·지식인들이 누려온 발레에 천재적 재능을 타고났지만, 빌리는 노동자 계급인 광부의 아들이다. 형 또한 격렬하게 시위하는 광부이며, 젊은 시절 무용을 사랑했던 할머니는 치매 증상을 보인다. 돌아가신 어머니의 편지를 달달 외우며 그리움을 달래는 여린 마음을 간직한 빌리는 한편으론 들끓는 분노를 억누르지 못하고 욕설을 내뱉기도 한다. 가족에게 발레에 대한 열망, 섬세한 감수성을 물려받았지만 가난, 계급, 고독, 열등감까지도 상속받았다. 아직 어린 소년인 빌리는 재능 하나만을 믿고 빛을 향해 날아오를 수 있을까.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 네 번째 시즌이 2026년 4월 12일 서울 블루스퀘어 우리은행홀에서 개막했다. 7월 26일에 막을 내리는 작품은 동명 영화를 원작으로 했으며, 5년 만에 다시 무대에 올랐다. 2024년 9월부터 시작된 혹독한 오디션과 트레이닝을 이겨내고 탄생한 네 명의 빌리 엘리어트 배우들(김승주·박지후·김우진·조윤우)과 성인·어린이 배우들의 열정이 모인 작품은 완벽한 앙상블을 이루며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 모으고 있다.
스티븐 달드리 연출은 ‘오늘날 탄광 산업은 사라졌고, 많은 노동자가 AI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럼에도 결코 AI가 대체할 수 없는 것이 라이브 공연의 경험’이라며 생명력과 현장성이 본질인 공연의 가치를 강조한 바 있다. 그의 말처럼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는 라이브 공연만이 갖는 매력, 2026년에도 여전히 통하는 동시대성을 품은 명작이다.
<빌리 엘리어트>는 ‘지금, 여기’의 가치가 여타 공연들보다 더 중요한 작품이다. 빌리로 살아가기 위해선 춤과 연기 재능을 갖춰야 하는 건 물론이고, 엄격한 나이(만 8세에서 12세)·키(150cm 이하)·목소리(변성기가 오지 않을 것) 제한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빌리 스쿨’에서 60주간의 트레이닝을 성실히 수행하며 성장해야 한다. 2시간 40분가량의 공연을 주인공으로서 끌고 갈 수 있는 체력과 정신력, 끈기 또한 필수다. 80페이지의 방대한 대본을 온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하며, 16곡의 넘버에 모두 등장하여 무대를 압도해야 한다.
성인 배우도 감당하기 힘든 압박감을 견디며 빌리 엘리어트가 된 배우들의 공연은 ‘지금, 여기’ 아니면 볼 수 없다. 시간은 흐르고, 아이들은 성장해 어른이 되기 때문이다.
2010~2011년 초연 당시 빌리를 연기했던 임선우가 성인 빌리 역으로 캐스팅돼 화제다. 빌리와 함께 드림 발레를 선보이는 성인 빌리는 빌리의 미래이자 꿈이다. 유니버설발레단 솔리스트로 활약하며 한국발레협회상 시상식에서 ‘당쇠르 노브르상’을 수상한 임선우는 ‘발레리노가 된다면 성인 빌리로 무대에 돌아오고 싶었는데, 꿈을 이뤘다’며 ‘이번 시즌 어린 빌리들을 보고 있으면 초연 때 불렀던 노래와 움직임들이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고 밝힌 바 있다. 빌리의 미래와 꿈이 돼 무대로 돌아온 그 또한 과거를 꿈꾸는 것이다.
이처럼 빌리로서 무대에 올랐었거나, 지금 서고 있는 배우들이 ‘지금, 여기’의 가치를 누구보다 생생히 실감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생에 단 한 번만 빌리 엘리어트가 될 수 있기에 이들에겐 자신들의 첫 시즌이 마지막 시즌이기도 하다.
또한 배우들은 긴 트레이닝과 공연 기간을 거치며, 빌리처럼 몸도 마음도 매일 성장한다. 스티븐 달드리 연출은 ‘빌리는 마라톤을 뛰며 햄릿을 연기하는 것과 같다’고 말한 바 있다. 즉 주인공 빌리 배우의 역량으로 작품의 완성도가 결정되는 것이다.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는 정반대로 대비되거나, 어울리지 않는 요소들이 아이러니한 앙상블을 이루며 카타르시스와 감동을 만든다. 복싱을 배우던 소년이 발레를 만난 것, 소년이 여자 옷을 입는 것, 경찰·시위대·발레하는 어린이들이 어우러지는 경이로운 12분간의 논스톱 시퀀스 ‘Solidarity’,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을 폭발적인 에너지와 예술로 승화시키는 ‘Angry Dance’, 재능은 타고났지만 엘리트 예술인들과 섞이긴 힘들 빌리의 상처투성이 내면, 무대의 빛과 탄광의 어둠, 상류층으로 비상하는 빌리와 파업 실패 후 지하로 다시 하강하는 광부들, 엔딩 때 무대에 남은 마이클과 객석으로 퇴장하며 다른 세계로 향하는 빌리까지.
작품은 흙더미에 파묻힌 진주, 천재적 재능을 타고난 소년이 성장통을 겪으며 발견되는 과정과 함께 투쟁과 연대 또한 다뤘다. 스티븐 달드리 연출은 ‘빌리라는 인물만큼이나 사회와 가족에 관해서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광부들은 파업하며 정부에 투쟁하고, 빌리와 마이클은 젠더 고정관념에 맞서 여자 옷을 입고 탭 댄스를 춘다(‘Expressing Yourself’). 빌리는 꿈에 반대하는 아버지와 형에게 맞섰고, 자신과 아버지를 신기한 동물 보듯 바라보는 상류층들을 한 방 먹이기도 했다(‘Electricity’). 마을 사람들은 빌리를 위해 돈을 모금했으며, 아버지와 형은 결국 빌리의 꿈과 연대했다.
파업 중인 탄광촌을 밝히는 빛 빌리, 무겁고 어두운 현실과 판타지적이지만 있을 법한 기적이 어우러질 때 감동은 더욱 진해진다. 누구나 자신의 삶에서 빌리처럼 불꽃 튀듯이, 전기가 오르듯이 열망하는 무언가를 발견하길 바라기 때문이다.
입학시험을 보기 위해 런던 왕립 발레학교에 찾아간 빌리와 아버지는 현실을 생생하게 체감한다. 다른 어머니들은 알아듣지 못할 말을 하며 빌리 아버지를 구경했고, 담당자는 아버지의 직업을 듣고 ‘그럼 정말 지하로 내려가는 거냐’고 물었다. 빌리는 자신에게 말을 거는 학생을 큰 이유도 없이 때렸다. 그 아이는 빌리와는 다른 기질의 얌전한 모범생이며, 학교 교복을 단정하게 차려입고 있었다.
빌리의 분노는 어디에서 온 걸까. 나는 이곳의 아이들과 다르다는 직감에서였을 것이다. 아직 어린 빌리는 그 이유를 뚜렷하게 말로 표현할 수 없겠지만, 점점 실감할 것이다. 자신은 결코 다른 아이들과 완벽히 섞일 수 없단 걸, 발레는 잔인할 정도로 상류층에게만 허용된 고급 예술이란 것을.
빌리의 미래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재능만으로 지하 탄광촌에서 상류층으로 날아오르는 데 성공할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갈지 모른다. 또다시 누군가를 때리고 싶어질 수도 있다. 돈 걱정 없이 곱게 자란 다른 아이들을, 자신의 계급을 실감 나게 하는 고향 사람들과 가족을, 현실적으로 감당하기엔 지나치게 무거운 꿈을 품은 자신을, 그러면서도 발레를 놓지 못하는 가슴속 불꽃까지도. 그럼에도 빌리는 춤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재능을 버리곤 도저히 살아갈 수 없는 존재가 천재이며, 그러한 천재는 빌리 엘리어트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