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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어느 날부터 엄마는 달리기 시작했다. 비가 오면 비를 맞으며, 야근을 한 날엔 밤늦게라도 뛰러 나갔다. 불과 300m도 달리지 못했던 엄마는 이제 20km를 거뜬히 달린다. 무엇이 환갑을 앞둔 엄마를 이토록 달리게 할까. 한 번도 진지하게 묻지 않았던 질문을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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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엄마 인생에서 달리기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아. 언제부터 달리기 시작했어?

 

달리기를 처음 맛본 순간은 6년 전이야. 그때 유방암 판정을 받고 ‘살기 위해’ 평생 안 하던 운동을 시작했거든. 처음부터 달린 건 아니고, 매일 집 앞 천변을 걸었는데 어느 날 문득 뛰어 보고 싶은 거야. 그래서 한 300m 정도 되는 거리를 뛰었는데 심장이 막 터질 것 같더라고.

 

지금은 완치됐지만, 그때는 죽음이 정말 코앞에 있는 것처럼 느껴져 많이 우울하던 시기였어. 근데 그날 뛰고 나서 ‘헤엑헤엑’ 거리면서 숨을 몰아쉬는데 묘한 희열이 들더라고. 심장이 막 튀어나올 듯이 팔딱팔딱 뛰는데 살아 있다는 느낌이 너무 생생했어. 내가 살아있네. 그 뒤로 늘 마음속에 달리기를 품고 살다가, 제대로 뛰기 시작한 지는 2년 쯤 됐어.

 

 

첫 만남이 강렬했는데 뛰기 시작한 건 그로부터 한참 뒤구나.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뛰면 안 되는 줄 알았어. 이 나이에 달리면 관절 다 나가는 줄 알았거든. 그래서 한 4년 동안은 스스로 ‘걷는 걸로도 충분해, 욕심 부리지 말자’고 다독이면서 하루에 만 보 이상 걷기만 했어. 그러다 유방암 약 부작용으로 골다공증이 생긴 거야. 그때 의사 선생님께 걷는 건 운동이 아니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어. 그래서 바로 웨이트와 달리기를 시작했어. 그 뒤로 지금까지 뛰고 있어.

 

 

지금은 얼마나 달려?

 

매일 뛰던 때도 있었는데, 지금은 일 때문에 매일은 어렵고 일주일에 3~4번은 달려. 한번 뛸 때는 8~12km 정도 달리고. 요즘은 대회 준비 중이라 20km까지도 달려봤어.

 

 

몇 번을 들어도 놀랍네. 내 또래도 그렇게 많이씩은 안 달리는 거 알지?

 

처음에는 300m도 힘들었어(웃음) 천에 놓인 다리 하나, 다리 두 개 이런 식으로 조금씩 늘려갔고, 시작한 지 세 계절이 지나서야 5km를 달릴 수 있더라. 처음 한 1년은 뛰는 것 자체가 정말 고통이었어. 뛰는 방법도 몰랐거든. 밤에 다리가 너무 아파서 ‘내 몸으로 이렇게 뛰어도 되나’ 불안하기도 했던 것 같아. 너도 무리하지 말라고 막 말렸잖아. 그런데도 멈출 수 없던 건… 살아 있다는 느낌 때문이었지.

 

 

보통 동기부여를 위해 크루에 가입해서 같이 뛰기도 하는데 엄만 혼자 뛰잖아. 원동력이 어디서 나오는 거야?

 

글쎄. 난 혼자가 좋아. 다른 사람이랑 같이 달리면 그들을 신경 쓰게 되고, 규칙도 따라야 하잖아. 난 오롯이 나에게 집중하는 게 좋은 것 같아. 달리면서 일어나는 변화를 확인하고 내 상태를 체크하는 게 재밌거든.

 

 

스스로 어떤 부분이 달라졌다고 느껴?  

 

내 삶에 막연히 존재하던 두려움이 사라졌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거리를 실제로 뛰고 그걸 점점 늘려가면서 자존감이 많이 높아졌거든. 내가 안 하는 거지 못 하는 게 아니라는 자기 확신이 생겼어.

 

젊었을 때는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건지 그 답을 모르겠는 거야. 누가 옆에서 “은아야, 괜찮아. 이렇게 하면 돼”라고 말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정말 많이 했는데, 엄마 주위에는 그런 어른이 없었어. 근데 달리기를 하면서 내 몸과 마음의 변화를 직접 겪다 보니 스스로 깨닫는 게 많아졌어. 사실 엄마는 달리면서 인생에 어려웠던 답을 많이 찾았어.


 

다른 사람에게서 찾던 답을 스스로 찾게 된 거구나.

 

맞아. 그래서 요즘은 사람에게 의지를 잘 안 해. 전에는 무슨 문제가 생기면 꼭 누군가에게 위로를 받고 싶어 했는데, 직접 몸으로 부딪히고 깨달으면서 이제는 스스로를 잘 지키는 사람이 된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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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면서 깨달은 진리 중 하나를 꼽는다면?

 

아픔은 지나간다는 것. 사실 나는 허리 디스크도 있고, 일을 하다 보니 무릎 관절도 다친 상태였어. 오랫동안 달리기를 주저한 이유도 그거 때문이었고. 처음 본격적으로 달릴 때는 큰일 날까 봐 너무 무서운 거야. 그래서 허리 복대에 무릎, 발목 보호대까지 다 차고 뛰었어. 유튜브에서 알려준 자세만 그대로 따라 하고. 그랬는데도 매일 밤 끙끙 앓았거든. 그런데 어느 날 보니까 보호대도 하나도 안 하고 뛰고 있더라고. 이젠 뛰는 게 하나도 안 힘들어.



아픈 데도 계속 뛴 게 대단해. 사실 아픈 그 순간에는 지나갈 거라고 믿기 어렵잖아.

 

나도 그랬지만, 다들 통증을 너무 두려워하거든. 사람들은 조금만 아파도 내 몸에 큰일 나는 건 줄 알고 안 해. 특히 나이 먹은 사람은 달리기하다가 무릎에 통증이 오면 무서워서 달리기를 바로 중단해. 병원 가보면 관절은 튼튼하다는 소리 듣는 데도 아프다고 안 하는 거야. 근데 내가 직접 뛰어보니 그 아픈 걸 지나면 괜찮아지더라고. 그래서 엄마는 달리기를 하면서 통증을 두려워하지 않아졌어.


 

통증하니까 떠오른 건데 엄마 얼마 전에 족저근막염도 앓았었지.

 

아. 그때 정말 힘들었어. 발을 땅에 딛만 해도 칼로 째는 듯이 아프고 치료를 해도 안 낫더라고. 내가 이렇게 좋아하는 달리기를 못 하는 건가 싶어서 많이 좌절했어. 근데도 뛰고자 하는 마음이 도대체가 가시질 않는 거야. 여기저기 찾아보면서 깔창도 깔아보고 발바닥으로 골프공을 굴려보고 별의별 방법을 다 써봤지. 그중에서는 발바닥 테이핑이 제일 도움이 됐고. 솔직히 그냥 무식하게 계속 달리니까 지나가더라고. 아픔은 잠시뿐이라는 확신이 있으니까 아파도 계속하게 되는 거야.


 

그래서 아무리 아파도 나가서 뛰는 거야? 얼마 전에 감기에 심하게 걸렸는데도 나가서 8km 뛰고 왔잖아.

 

그날 뛰고 더 병나서 결국 3일 쉬었잖아.(웃음) 사실 그건 좀 무리였어.


 

이 추운 날에도 밖에서 뛰는 이유가 뭐야? 러닝머신이라는 선택지도 있는데 꼭 야외에서 뛰더라고.

 

러닝머신은 재미없어. 밖에서 뛰면 세상을 다 볼 수 있잖아. 전에는 차 타고 다녔던 거리를 직접 뛰면서 보는 게 참 좋은 것 같아. 거리 감각도 생기고. 그래서 여행 가면 꼭 그 동네를 뛰는 습관이 생겼어. 작년에 강릉으로 부부 동반 여행을 갔는데 동틀 때 혼자서 5-10km를 뛰었어. 해가 떠오르는 걸 보면서 ‘야, 내가 이런 것도 해내는구나’ 싶더라고. 얼마 전엔 일본 여행 가서 아침 공원을 뛰었는데, 평소라면 휙휙 지나갈 법한 풍경이나 사람들을 하나하나 눈에 담게 되는 게 좋았어.


 

달리면서 눈에 담은 세상 중 유독 기억에 남은 순간이 있어?

 

작년 4월 처음으로 10km 마라톤 뛰었을 때. 늘 차로만 다니던 광화문과 종로, 동대문 일대를 뛰었는데 평소에는 사람이 갈 수 없는 차도를 달리니까 정말 행복하더라. 혼자 뛰면서 느끼던 성취감도 좋았지만 공식 대회에서 ‘인정받았다’는 기분도 정말 짜릿했어. 무엇보다 네가 같이 달려줘서 너무너무 행복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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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그때 정말 행복해 보였어. 달리다가 심장 부여잡고 “너~무 좋아”를 외쳤잖아.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 속 애순이의 마음이 딱 공감되더라(웃음). 예전엔 선수들이나 나가는 거라고 생각했던 마라톤을 직접 뛰었다는 게, 내 인생이 정말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는 기분이었어.


 

다음 스테이지는 어디야?

 

3월 6일 사이판 마라톤! 작년에 10km 뛰고 나서 막연히 꿈꿨던 대회인데 정말 가게 됐어. 이번에는 하프(21km)에 도전해. 과연 3시간을 쉬지 않고 뛸 수 있을까 걱정도 됐는데, 어느 날 갑자기 혼자 뛰어봤는데 되더라고?(웃음) 그래서 할 수 있겠다 싶었지.


 

사이판에서 달성하고 싶은 기록이 있어?

 

목표는 완주야. 나는 속도 욕심은 안 내. 지금도 8분대 페이스로 천천히 뛰어. 처음에는 기록에 욕심을 냈었는데 그러면 중간에 지쳐서 결국 완주를 못하더라고.


 

인생에도 적용할 수 있는 말 같아.

 

맞아. 나는 인생이 정말 달리기랑 똑같다고 생각해.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을 가는 게 중요하지, 빨리 가느냐 늦게 가느냐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더라고. 그래서 나는 늘 꿈꿔. 속도와 상관없이 이루고 싶은 것들을 꿈꿔.


 

달리기를 하면서 얻은 크고 작은 성취의 경험이 엄마를 계속 꿈꾸게 하는구나.

 

정확해.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사실 엄마 나이쯤 되면 더 이상 꿈을 꾸지 않게 되거든. 그런데 달리기를 하면서 통증과 고통을 이겨내고 완주해 내는 경험이 쌓이다보니 또 다른 꿈을 꾸게 되더라고. 지금도 당장 뭔가 준비돼 있는 건 아니지만, 그냥 막연히 많은 것들을 꿈꿔. 그게 나를 정말 살아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것 같아.


 

살아있는 김은아는 지금 무슨 꿈을 꿔?

 

풀코스 마라톤. 완주 했을 때 내가 가장 사랑하는 두 딸과 친구들에게 축하받는 순간을 꿈꿔. 그리고 무엇보다 죽는 순간까지 건강하고 싶어. 생명이 허락되는 한, 죽을 때까지 달릴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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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Jeong
아름다운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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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11 16:09:38 0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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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20 18:08:34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