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응원하는 마음은 거침이 없다 [문화 전반]

희망해본 경험을 손에 쥐고 나온 이들
글 입력 2024.12.18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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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국회 앞에 약 200만 명의 시민이 모인 가운데, 대통령 탄핵 소추안이 가결됐다. 세대를 통합 시키고 민주주의를 수호한 이번 시위의 상징은 단연 ‘응원봉’이다. 집회의 참가자 중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한 2030 여성들은 손에 응원봉을 들고 나왔다.

 

여의도를 가득 채운 젊은 여성들은 왜 응원봉을 들고 있었나. 혹자는 가장 소중한 빛을 가지고 온 것이라고, 혹자는 꺼지지 않는 불빛을 가지고 나온 것이라 말한다. 이번 시위에 응원봉을 들고 나섰던 2030 세대이자 여성, K-팝 팬 당사자인 나는 그 원인을 하나로 규정짓는 것이 되레 조심스럽다. 고백하건대 내겐 응원봉이 가장 소중한 빛은 아니다. 함께 참석한 친구는 ‘다들 들고 나가니까’라는 간단한 답을 줬다. 응원봉의 색상만큼이나 이유나 계기, 마음가짐은 전부 달랐을 것이다.

 

다만 응원봉을 들고나온 이들에겐 부정할 수 없는 공통점이 있다. 누군가를 진정으로 응원해 본 경험이 있다는 것. 그리고 광장으로 나왔다는 것.

 

응원하는 마음은 거침이 없다. 누군가의 무대를, 인생을 응원해 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온 마음을 다한 응원은 행동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기꺼이 스트리밍과 투표를 하고, 기꺼이 밤을 새워 사전녹화를 가며, 콘서트장에 가기 위해 새벽 기차를 탄다. 필요할 때는 기꺼이 싸운다. 왜? 응원하니까. 좋아해서 거침없었던 이 행동들을 두고 사회는 ‘유난이다’, ‘네 인생을 살아라’, ‘그렇게 해봤자 걔네는 널 모른다’ 등의 말들로 멸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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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응원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안다. 응원은 희생이 아닌 희망이다. 누군가 잘되길 바라는 마음은 필연적으로 희망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덕질은 너의 행복이 곧 나의 행복이 되는 일. 그리하여 나의 행복을 위해 너의 행복을 희망하는 일. 응원해 본 경험은 곧 희망해본 경험이다.

 

경험은 언제나 삶의 선택지를 늘린다. 희망해본 경험이 있는 삶에는 희망이라는 선택지가 생긴다. 하룻밤 사이 무너진 민주주의를 목도하며, 일상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몸소 느낀 이들이 택한 것은 도망도 절망도 아닌 희망이다. 자유를 되찾겠다는 희망, 일상과 소중한 이들을 지키겠다는 희망으로 거침없이 국회로 향했다.

 

절망의 순간에 희망은 대체 어떤 힘이 있을까. 12.3 내란 사태 직후인 지난 6일,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는 스웨덴 현지 기자회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요즘 이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게, 많은 질문을 하게 되는 그런 시기라고 생각됩니다. 때로는 ‘희망이 있나?’ 이런 생각을 할 때도 있어요. 근데 요즘은, 얼마 전부터, 한 몇 달 전부터, 아니면 그전부터일지도 모르겠는데, 희망이 있을 거라고 희망하는 것도 희망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나. 이런 생각을 합니다.
 

 

빛 한 줄기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빛이 있을 것이라고 믿는 마음 그 자체가 빛이다. 말장난 같지만 이것은 지난 2주간 모든 국민이 함께 목격한 진실이다. 희망은 희망을 낳는 힘이 있다. 거침없이 응원봉을 들고 나선 시민. 그 응원봉 물결을 보고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다음 집회에 참석한 시민. 자비로 버스를 빌려 영유아와 보호자 쉼터를 만든 시민. 그 소식을 듣고 기저귀와 간식을 후원한 또 다른 시민들. (후원금이 모여 키즈버스는 두 대가 됐다.) 끊이지 않는 선결제 행진. 0원이 된 주차 요금. 앞서서 쓰레기를 치우던 시민들. 그리고 마침내 가결. 그 순간 모두가 뜨거운 마음으로 불렀던 노래의 가사는 “수많은 알 수 없는 길속에 희미한 빛을 난 쫓아가”였다.

 

이것이 한강 작가가 소설 <소년이 온다>에서 ‘빛이 비치는 쪽으로, 꽃 핀 쪽으로 나아가’자고 했던 이유이리라. 희미하더라도 빛이 비치는 쪽으로 향하는 걸음 자체가 빛이므로. 희망을 희망하는 것이 곧 희망이므로.

 

경험은 언제나 선택지를 늘린다. 우리는 지난 보름의 시간 동안 함께 희망을 겪었다. 온 국민의 삶에 같은 모양의 선택지가 생기는 순간이었다. 희망해본 경험을 손에 쥔 우리가 무얼 또 거침없이 바꿀 수 있을지 생각해 볼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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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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