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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안중근이 되기 전, 안응칠을 만나는 시간 - 자객열전Ⅱ, 안응칠 워크숍 [공연]

두렵지 않아서 죽음을 선택한 것도 아니고, 사랑하는 사람이 없어서 자신의 삶을 내놓을 수 있었던 게 아니었다

by 정서영 에디터
2026.08.11 14:03

<자객열전Ⅱ-안응칠 워크숍>은 안중근이라는 인물을 무대로 가져오는 부담을 관객들에게 숨기지 않는 방식으로 공연을 시작한다. 관객들이 거의 들어왔을 무렵부터, 무대 위에는 연출과 조연출, 무대감독이 있고 안중근을 연기하는 배우와 두 인물을 오가는 배우가 있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부터 이들은 이미 무대 위를 유유히 돌아다니고 누군가와 통화하며 공연을 준비한다.


처음 음향 장비를 확인하고 소리를 체크하는 조연출을 보면서 그가 정말 공연 스태프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공연 시작 시각이 가까워질수록 이들의 행동은 어느 순간 연극 무대 안으로 스며든다.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이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인지, 이미 시작된 공연인지 현실과 허구의 경계가 흐려진다.


사실 이건 이번 연극을 관통하고 있는 상황적 설정이다. ‘워크숍’이라는 제목처럼 연극을 만드는 연극의 형태를 띠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이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안중근'을 곧바로 재현하지 않는다. 관객들이 인물들과 함께 공연을 만드는 상황을 체험하게 한다. 장면을 진행하다가 멈춰서 묻고 다시 시험해보고 연기하며 한 사람의 이야기를 만들어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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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하나 더 신경 써야 하는 지점은 공연의 제목이 <안중근 워크숍>이 아니라 <안응칠 워크숍>이라는 점이다. 낯선 연극 제목을 보고 검색해보니, 안응칠은 안중근의 아명이다. 제목에 그의 아명을 썼다는 것부터 우리가 익히 들어 아는 하얼빈의 영웅으로 기억되는 안중근의 모습만을 이야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짐작을 할 수 있다.


어릴 때 쓰던 이름을 왜 연극의 제목으로 썼을지 싶었는데, 이 이름은 안중근이 뤼순 감옥에서 자신의 삶을 기록하며 붙인 자서전의 제목 <안응칠 역사>에 쓰기도 했다. 그가 감옥에서 쓴 자서전은 연극의 많은 부분에 등장하는 중요한 참고 자료로 쓰였다.


연극이 준비되는 장면들의 시간대는 감옥에 들어온 이후 안중근 전담 교도관으로 있었던 치바와 시간을 함께 보내며 많은 대화를 나누고 친밀해지는 순행적 구성이 기본으로, 가끔 연극 속 인물이 궁금증을 던지며 다른 시간대로 뛰어넘을 때가 있다.


극이 중심적으로 다루는 건 이토 히로부미 저격 이후 감옥에서의 시간이지만, 과거 시절을 보여주는 장면들을 통해 그의 인생에 큰 영향을 준 중요한 사건들을 확인할 수 있다. 극 중반에 안중근 역할을 맡은 배우가 대사 없이 마임만으로 그의 인생을 주마등처럼 표현한 장면이 있다. 어린 시절의 안응칠부터 그가 어떤 사건과 실패를 겪으며 하얼빈까지 오게 되었는지를 보여준다.


안응칠이 안중근이 되게 한 과정 가운데 초반 사건은 열여섯 살의 안응칠이 아버지가 조직한 의려에 참여해 동학군과 싸운 것이다. 그는 이후 대한의군의 참모중장이 되어 전의를 북돋우며 일본군과 전투를 벌이고, 승리한 전투에서 붙잡은 일본군 포로들과 대화하며 세상을 보는 눈이 넓어진다. 이 장면이 내가 알고 있던 안중근의 이미지와 달라서 놀랐다.


안중근은 일본이라는 나라와 일본인 자체를 증오했던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포로들을 죽이라는 동료들의 주장에 반대하고 그들을 살려서 풀어주는 위험할지도 모르는 선택을 한다. 사로잡은 적병을 죽이는 법이 없다는 만국공법을 따른 것이다. 결국 그가 풀어준 일본군 포로들로 인해 의병의 위치가 노출되었고, 일본군의 반격으로 의병부대는 큰 피해를 보고 흩어진다. 스스로 옳다고 믿었던 선택 때문에 자신의 사람들이 희생된다.


이런 실패를 겪고도 안중근은 한국과 일본, 중국이 함께 살아갈 동양의 평화를 생각했다. 그에게 이토 히로부미는 단순히 한국의 독립을 훼손한 일본 정치인이 아닌 개인의 행동으로 동양 평화를 깨뜨린 책임자였다. 훗날 재판에서도 이토에게 총을 겨눈 이유로 그가 일본 천황의 뜻마저 속이고 한국을 침략했다고 주장한 것도 일관적이다.


처음 총을 들었던 어린 안응칠이, 전쟁에 참여하여 승리와 패배를 경험하고, 일본군 포로와 대화하고, 살려 보내고, 동료들과 손가락을 자르며 조국을 위해 일하겠다는 맹세하기까지의 시간이 쌓여 우리가 아는 하얼빈의 독립운동가 안중근 의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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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과정을 따라가다 보니 위인전에서 보던 '안중근'이라는 이름 뒤에 가려져 있던 '안응칠'이라는 사람이 보이기 시작했다. 공연을 보고 난 뒤 오래 마음에 남은 것은 그가 감옥에서 마지막으로 작성한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였다.


우리가 너무 익숙하게 아는 독립운동가에게도 가족이 있고, 조국만큼 소중한 것들이 있다. 그런 사람이 자신의 목숨을 바쳐 조국을 위해 일한다는 것은 혼자만의 죽음이 아닌 누군가의 남편, 아버지, 아들의 죽음이다. 안중근의 어머니께서 그의 첫 재판에서 받은 사형 선고에 항소하지 말라고 보낸 편지가 읽히는 장면은 처음 알게 된 내용이 아니었음에도 옳은 일을 한 사람이 감당해야 하는 단단한 슬픔에 마음이 먹먹해지는 장면이었다.


죽음을 앞둔 남편의 편지는 어떠했을지 들어보면 그 또한 슬픔의 감정이 배제되어 담담히 아내와 아이들의 미래를 응원하는 것뿐이다. 그래서 마음이 편하지 못했다. 이 간결한 문장들을 써내려가면서 그는 얼마나 많은 울음을 참았을지, 그럼에도 자신이 슬픔과 아쉬움을 남기지 않으며 가족들이 덜 슬퍼하길 바라는 그 마음이 담겨있는 듯했다. 편지를 받아 보는 아내의 관점에서 남편이 이해가 되면서도 울분이 터질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사랑한다는 말이라도, 돌아가지 못해 미안하다고, 보고 싶다는 말이라도 남기면 어땠을까. 공연의 작가도 같은 마음이었던 것 같다. 워크숍에서만큼은 그 편지에 살을 붙여 다시 작성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안중근을 연기하는 배우는 아내에게 사랑한다고 고백하며 가족을 두고 먼저 떠나보내는 남편, 아버지의 마음을 담았지만 마지막 문장으로 여전히 안중근이기에 할 수밖에 없는 말을 남겼다. “내가 열 번 태어나면 한 번은 당신을 위해 죽고, 남은 아홉 번은 조국을 위해 죽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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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은 자신이 살아 있는 동안 누릴 수 있는 행복보다 자신이 죽은 뒤 다른 사람들이 살아갈 세상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한 사람의 행복보다 동포를 생각하고, 한 민족의 독립을 넘어 동양 전체의 평화를 생각할 만큼 그의 시야는 넓었다. 그의 시선이 먼 곳까지 향해 있어서 가장 가까이에 있던 사람들에게는 충분히 머물 수 없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이 공연이 위인의 신화적 모습을 걷어내고 평범한 인간을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그로 인해 그가 한 업적이 더 드러나 보인다. 목숨을 내놓고 전한 그의 한국 독립과 동양 평화에 대한 그의 신념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인간 안응칠에 대해 알고 나니 그에게만 특별히 더 다정했던 것도 아닌 조국을 위해 그렇게 행동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더 대단하게 느껴졌다.


두렵지 않아서 죽음을 선택한 것이 아니고, 사랑하는 사람이 없어서 자신의 삶을 내놓을 수 있었던 게 아니었다. 돌아가고 싶은 곳과 함께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는 평범한 한 사람이었지만 자신의 삶보다 더 넓은 민족, 세상을 바라보고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어쩌면 <안응칠 워크숍>이 공연을 통해 관객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건 이런 후손의 시선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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