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세대부터 MZ세대까지, 왜 모두가 다시 에픽하이에 빠졌을까
대한민국 힙합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에픽하이를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
2000년대 초반, 한국 대중음악 시장에서 힙합은 지금처럼 거대한 주류 문화가 아니었다. 당시 힙합은 여전히 낯설고, 때로는 거칠고 위험한 장르처럼 소비되곤 했다. 그러나 에픽하이는 그 안에서 아주 독특한 길을 걸었다. 단순히 ‘센 음악’을 하는 팀이 아니라, 상처와 청춘, 불안과 위로를 시처럼 써내려가는 팀이었다. 타블로의 날카로운 가사와 문학적인 표현, 미쓰라의 묵직한 랩, 그리고 DJ 투컷의 자유로운 에너지는 단순한 음악 그룹 이상의 서사를 만들었다.
특히 《Fly》, 《Fan》, 《Love Love Love》, 《우산》 같은 곡들은 한국 힙합이 감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품을 수 있다는 걸 증명했다. 그들은 힙합을 통해 다양한 메시지를 남겼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그 시절의 힙합 레전드가 이제 유튜브 업계까지 점령했다. 최근 에픽하이는 약 170만 명 이상의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브 채널 에피카세를 통해 다양한 콘텐츠를 선보이며 팬들과 활발하게 소통하고 있다. 처음에는 멤버들끼리 편하게 떠들고 장난치는 소소한 콘텐츠들로 시작했지만, 입소문을 타며 채널은 점점 더 큰 사랑을 받기 시작했다. 그렇게 차근차근 구독자가 늘어나더니, 최근에는 빅뱅의 태양과, BTS 멤버들까지 출연하며 다시 한 번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사실 에픽하이 콘텐츠의 진짜 매력은 유명 게스트가 나오는 영상보다, 멤버 세 명이서만 편하게 떠드는 순간들에서 더 잘 드러난다. 실제로 팬들 사이에서도 별다른 게스트 없이 셋이 모여 수다 떠는 영상들의 반응이 굉장히 좋은 편이다. 특별한 주제 없이 티격태격 장난치고, 서로를 놀리고, 쓸데없는 이야기로 한참 웃고 떠드는 모습인데도 묘한 힐링감과 큰 재미를 준다.
나 역시 오랫동안 에픽하이를 좋아해온 팬으로서, 에피카세 콘텐츠들 중 특히 인상 깊었던 영상 세 편을 이야기해보려 한다.
1. 허세로 시작해 눈물로 끝난 전생 체험 편
첫 번째는 멤버들이 전생 체험 최면을 받는 에피소드다. 사실 시작부터 분위기가 웃겼다. “우리는 멘털이 강해서 최면 같은 거 안 걸린다”며 허세를 부리던 멤버들이 막상 시작하자 누구보다 진지하게 몰입해버리는 모습 자체가 에픽하이식 예능이었다. 특히 DJ 투컷은 조선시대 ‘하얀 가루 사업가’라는 황당한 전생이 나오며 멤버들을 빵 터지게 만들었고, 미쓰라는 대나무 숲 이야기를 했다가 “전생에 판다였냐”는 놀림까지 받았다.
그런데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역시 타블로였다. 프랑스의 작은 마을에서 마녀사냥을 당해 화형당하는 전생 이야기가 나오자, 웃음으로 가득하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장난처럼 시작한 콘텐츠였지만, 이상하게도 타블로라는 사람이 지나온 상처와 감정이 겹쳐 보였다. 유쾌함 속에서도 묘하게 씁쓸하고, 또 사람 냄새가 났다. 웃기면서도 마음 한편이 묵직해지는, 에픽하이 특유의 감성이 가장 잘 드러난 영상이었다.
2. 관악산 정기 받으러 간 힙합 레전드들
두 번째는 관악산 등산 영상이다. 사실 내용만 보면 정말 별거 없다. 중년 남자 셋이 산 올라가면서 투덜거리고, 간식 먹고, 농담하고, 힘들어하는 게 전부다. 이 영상이 더 웃긴 건, 애초에 “관악산 정기를 받아야 한다”는 소장님의 말을 듣고 셋 다 꾸역꾸역 모여 나왔다는 사실 자체다. 평소 등산을 그렇게 싫어한다면서도 결국 다 나온 것도 웃긴데, 또 핑크랑 빨강 계열 옷까지 은근히 맞춰 입고 온 게 너무 귀엽다. 정말 친한 아저씨들 소풍을 따라가는 느낌이다.
“세상에 할 게 이렇게 많은데 왜 하필 우리가 제일 싫어하는 등산을 하냐”는 투정부터, 산을 오르다가 갑자기 밸런스 게임을 하고, 오징어게임을 따라 하는 모습까지 정말 오래된 친구들끼리 노는 느낌 그대로였다. 특히 중간중간 서로 체력 놀리고 징징대는 장면들이 너무 현실 친구 같아서 더 웃긴다. 그런데 그렇게 정신없이 떠들고 내려오던 와중, 결국 타블로가 휴대폰까지 잃어버리며 영상이 완벽하게 에픽하이답게 마무리된다. 그것도 작업 중인 가사와 메모가 들어있던 폰이었다는 점이 타블로답다.
뭔가 거창한 사건은 없는데 끝까지 소소하게 웃기고, 또 묘하게 따뜻한 분위기가 남는 영상이었다.
3. 에픽하이, 스탠퍼드 대학교를 가다
마지막은 개인적으로 가장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은 영상이다. 에픽하이 완전체가 스탠퍼드 대학교를 다시 찾아간 영상이었다. 과거 타블로의 학력 논란 당시, 그는 스탠퍼드 캠퍼스 안에서 직접 인터뷰를 하며 자신의 학력을 증명해야 했다. 그때의 타블로는 정말 처절할 만큼 힘들어 보였다. 세상 전체가 한 사람에게 의심과 증오를 퍼붓는 듯한 시간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른 뒤 다시 찾은 그 장소에서, 그는 이번에는 웃고 있었다. 과거 울면서 인터뷰했던 바로 그 나무 앞에서 장난스럽게 멤버들과 인증 사진을 남기는 모습은 단순한 추억 회상이 아니었다. 한때 자신을 무너뜨릴 만큼 아팠던 기억을 이제는 웃으며 마주할 수 있게 된 사람의 얼굴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 장면은, 왜 지금의 에픽하이가 단순한 ‘레전드 힙합 그룹’이 아니라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사랑과 응원을 받는 팀인지 가장 잘 보여주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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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나는 이 아저씨들이 너무 좋고, 진심으로 오래 응원하고 싶다. 에픽하이는 서로를 증오하는 것처럼 보일 만큼 짜증 섞인 말들을 아무렇지 않게 퍼붓고, 끝없이 놀리고 투닥거리지만, 가만히 오래 들여다보면 그 날카로운 말들은 결국 오랜 시간을 함께 버텨온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는 방식의 애정처럼 느껴진다. 겉으로만 보면 날카롭고 무심해 보이는데, 조금만 오래 보다 보면 그 말들이 결국 사랑에서 나온 것이라는 걸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가끔 툭 던져주는 현실적인 조언들, 마냥 웃고 넘길 수만은 없는 나이와 삶에 대한 이야기들 속에는 팬들을 향한 진심 어린 마음도 자연스럽게 배어 있다. 억지로 감동을 만들거나 위로를 강요하지 않는데도, 그들이 지나온 시간과 지금의 태도를 보고 있으면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해진다. 어쩌면 사람들은 완벽한 사람에게 위로받기보다, 상처와 피로를 안고도 계속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더 깊이 공감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밥을 먹을 때면 자연스럽게 이들의 영상을 틀어놓고 웃는다.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다 잠깐 숨 돌리는 시간처럼, 오래된 친구들 사이에 괜히 끼어 앉아 함께 웃고 있는 기분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