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내가 좋아하는 영화들 중 유독 시를 다룬 영화가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인생 영화'의 정의는 나의 취향과 지향점을 고스란히 담은 영화, 정말 나라는 사람, 내 인생을 닮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시를 좋아한다는 것은 삶을 대하는 태도와 유독 밀접한 연관이 있어 그런 공통점이 나타난 듯하다.
짐 자무쉬 <패터슨>
미국 소도시 패터슨에 사는 버스 운전사 '패터슨'의 일주일을 담은 작품이다. 도쿄 화장실 청소부의 일상을 담은 영화 <퍼펙트 데이즈>와도 비슷한 분위기다.
패터슨은 지극히 평범한 직업과 평범한 일상의 소유자다. 하지만 보는 이의 고개 각도에 따라 그것은 사정없이 반짝거리기도 한다. 활짝 웃는다거나 직접 행복하다는 말을 하는 장면이 없는데도, 영화를 보는 내내 그가 무척 충만해 보인다. 열심히 버스를 모는 것. 비밀 수첩에 조금씩 시를 쓰는 것. 아내와 평화로운 하루하루를 보내고, 밤이면 개와 산책을 하고, 단골 바에 가서 술을 한 잔 마시는 모든 것이 말이다.
영화 초반부 그의 아내가 진지하게 할 말이 있다고 했을 때, 우리나라 정서로는 이제 혼자 시 쓰는 일 따위는 그만하라는 식의 대사가 무의식적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그녀가 꺼낸 말은, 시를 수첩에만 쓰지 말고 복사를 해두라는 것이었다. 당신의 시가 너무 좋다고. 돌이켜보면 그 순간 이 영화에 반한 듯하다. 시작부터 끝까지, 패터슨과 그의 시를 대하는 영화의 태도가 인상적이다. 그의 꿈이 휴지 조각이 되어버릴지라도 계속 시를 쓰며 살기를 응원하게 된다.
또, 은은한 웃음거리들과 함께 담백하게 흘러가는 이 영화를 다 보고 나면, 나의 담백한 일상과 행동 하나하나가 역으로 영화 같다고 느껴진다. "이 한 편의 영화로 당신의 하루가 아름다워질 거예요"라는 포스터의 태그라인이 그보다 더 정확할 수 없다. 일상의 감각을 일깨워준다는 점에서 시적이며, 말로 못다 하게 아끼는 영화다.
피터 위어 <죽은 시인의 사회>
보수적인 명문고등학교에 부임한 영어 교사 '존 키팅'과 학생들의 새로운 배움과 성장을 담은 작품이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마땅히 선택할 동아리가 없어 들어간 영화감상반에서 예상치 못하게 영화라는 것과 사랑에 빠졌다. 유명한 옛날 영화들을 많이 봤고, 이 작품도 그중 하나였다. 완전히 매료되어 모든 장면과 대사가 외워질 만큼 수십 번을 돌려보았던 기억이 난다.
입시와 경쟁은 더 과열되고 인문학은 죽어가는 세상에서 "의학, 법률, 경제, 기술 따위는 삶을 유지하는 데 필요해. 하지만 시와 미, 사랑, 낭만은 삶의 목적인 거야."라는 키팅의 명대사는 여전히 유효하다. 학생들이 밤마다 몰래 모여 시를 낭송하는 모습, 닐이 월계관을 쓰는 순간의 눈빛 같은 것도 여전히 내게 깊숙이 남아있다.
당장의 성공과 출세를 위한 노력에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인간과 삶에 대한 이해라고 믿는다. 그러한 이해가 부재한 사회에서는 분명 곳곳에서 문제가 터져 나올 것이다. 무엇을 하며 살지보다도 무엇을 위해 살 것인지를 먼저 알아야 한다. 이 영화는 나온 지 35년이 지나서도, 우리가 왜 시를 읽어야 하는지를 명료하게 보여준다.
이창동 <시>
'미자'가 어느 날 난생처음 시를 배우고, 또 손자의 범죄와 마주하게 되며 삶을 돌아보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대학에서 시 창작 수업을 들으며 미자와 비슷한 경험을 했었다. 시를 써야 한다는 생각을 갖는 순간, 나도 모르게 세상 구석구석을 더 들여다보게 된다. 익숙한 줄 알았지만 실은 단 하나도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미자도 그러다 느끼게 된다. 세상이 아름답다는 걸. 그리고 동시에 아름답지 않은 세상도 있다는 걸. 그 세상은 차마 터질 수조차 없게 잔인하다. 자꾸만 시를 쓰고 싶다는 미자의 말이, 왜인지 잘 살고 싶다는 말처럼 들린다. (보통 사람들은 시를 쓰고 싶다는 생각부터가 들기 어렵다) 그리고 그녀는 결국 시를 완성한다. 첫 장면에서 물이 흐르고, 영화 내내 미자의 미소가 흐르더니, 그 끝에 맺어진 미자의 시 <아녜스의 노래>는 관객을 압도한다.
이 영화는 정적이지만 그 이면의 힘이 깊고 강해, 이 자체로 한 편의 시를 닮았다. <시>라는 짧은 제목도 납득이 간다. 완성 직전 OST를 모두 빼서 배경음악이 하나도 없는 것으로도 유명한데, 그만큼 사운드와 화면 하나하나가 굉장히 섬세하고 아리다. 한국 영화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출간된 각본집을 통해서는 소설가 출신인 이창동 감독의 표현력을 더 잘 느껴볼 수 있기에 역시 추천한다.
이준익 <변산>
국문과를 나와 무명 래퍼가 된 '학수'가 고향 변산에서 옛 친구들을 만나게 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이준익 감독의 작품 중 시와 관련된 것이라면 윤동주 시인의 삶을 다룬 <동주>가 더 대표적일 수도 있겠으나, 개인적으로 <변산>을 소개하고 싶었다. 사실 이 영화는 혹평이 상당히 많고 그에 대부분 공감하지만, '선미'의 독백 장면만큼은 양보할 수 없이 좋아한다.
나한테 노을을 발견시켜준 사람이 바로 너여.
이 동네서 태어나 살면서 수도 없이 봐온 노을인디 난 노을이 그런 건지는 그때 처음 알았어.
장엄하면서도 이쁘고, 이쁘면서도 슬프고.
슬픈 것이 저리 고울 수만 있담 더이상 슬픔이 아니겄다 생각하면서 넋을 잃고 보는디, 문득 그런 생각도 들더라고.
자는 언제부터 저 무덤에 앉아 혼자 노을을 보아왔을까?
- 야, 김학수! 넌 개새끼여, 씨벌놈아!
- 누구여!
근디 난 니가 좋다.
그날부터 나도 노을을 사랑허기 시작혔고, 작가가 되겠다고 맘먹은 것도 그때부터여.
선미는 정말로 작가가 되었고, <노을 마니아>라는 소설로 상까지 받았다. 어머니 무덤에 앉아 노을을 보면서 시를 떠올리는 소년. 그리고 저 멀리서 그런 소년과 노을을 번갈아 보는 소녀의 얼굴 같은 것을 사랑하지 않을 도리가 내겐 없었다.
이 세상의 아름다움을 처음 발견하게 해준 사람. 꿈이 생기게 해준 무언가. 그런 '최초의 순간'으로서 시가 갖는 특별함이 잘 표현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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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시를 다룬 영화들은 대체로 잔잔하면서도, 삶을 바라보는 특별한 시선과 태도를 전한다. 나에게 '인생 영화'는 결국 그런 영화들인 것 같다. 가만한 순간에 깃든 의미를 발견하고, 인간답게 살아가고자 애쓰는 마음을 잊지 않게 해주는 영화들. 그런 영화를 만난다면 아마 나는 또 귀신같이 사랑에 빠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