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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완성된 드레스, 남겨진 눈물 -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국립극장 '라크리마'

오트쿠튀르의 화려함 뒤에 가려진 노동을 마주하다, <라크리마>

by 최온유 에디터
2026.10.07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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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 2일은 나의 생일이었다. 평소처럼 주변 사람들의 축하를 받으며 하루를 보내고, 저녁에는 연극을 보기 위해 공연장을 찾았다. 학창 시절부터 패션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하이패션 브랜드의 '오트쿠튀르(Haute Couture)' 컬렉션을 즐겨 보곤 했다. 특히 오트쿠튀르 특유의 정교한 제작 방식과 미학에 매력을 느꼈고, 이러한 의상들이 발레나 연극 등 다양한 무대예술과 만나는 모습에도 자연스럽게 관심을 가져왔다. 그렇기에 오트쿠튀르의 화려함 뒤에 숨겨진 이야기를 다룬 연극 <라크리마>는 더욱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공연장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스크린의 3분할 화면과 실제 무대가 눈에 들어왔다. 무대는 의상을 제작하는 오트쿠튀르 아틀리에로 꾸며져 있었다. 이전에 샤넬 런웨이 비하인드 영상에서 보았던 작업실을 떠올리게 할 만큼 실제 아틀리에의 모습을 무대 위에 옮겨놓은 듯했다. 실제 오트쿠튀르 아틀리에와 극 중 무대를 보고 있으면 어딘가 반듯하게 정돈되어 있으면서도 서늘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공연을 모두 보고 난 지금 돌이켜보면, 이러한 공간 연출 역시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의 분위기를 함축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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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늘한 무대와 달리 그 안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드레스의 실루엣은 무척 아름다웠다. 웨딩드레스를 제작하기 위해 펼쳐 보이는 여러 종류의 천과 섬세한 장식 역시 화려했고, 자연스럽게 시선을 빼앗았다. 하지만 약 세 시간 동안 그 드레스가 완성되는 과정을 지켜본 뒤 마침내 완성된 모습을 마주했을 때는 처음과 같은 감정으로 바라볼 수 없었다. 더 이상 마냥 ‘아름답다’고만 생각하기 어려워졌다.


      '한 벌의 아름다운 옷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과연 어떠한 희생이 필요한가.'


      <라크리마>는 공연이 끝난 뒤 이러한 질문을 남긴다.

       

       

       

      완벽한 드레스 뒤에 남겨진 사람들



      <라크리마>는 영국 공주의 웨딩드레스 제작이라는 가상의 사건에서 출발한다. 한 벌의 드레스를 완성하기 위해 파리의 오트쿠튀르 하우스와 프랑스 알랑송의 레이스 공방, 인도 뭄바이의 자수 공방이 연결되고, 8개월 동안 총 9,057시간의 노동이 투입된다.


      제목인 'Lacrima'는 라틴어로 ‘눈물’을 뜻한다. 작품은 서로 다른 지역에서 한 벌의 드레스를 만드는 노동자들의 삶을 따라가며, 화려한 결과물 뒤에 가려진 이들의 노동과 고통을 비춘다.


      서로 다른 지역의 이야기를 다루는 만큼 무대 위에서는 프랑스어와 영어, 타밀어 등 여러 언어가 공존한다. 흥미로운 점은 세 지역이 하나의 드레스를 완성하기 위해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그 안에서 각자가 놓인 위치와 권력의 차이가 조금씩 드러난다는 것이다. 촉박한 마감과 장시간 노동, 철저한 비밀유지 계약, 브랜드와 외주 제작소 사이의 불균형한 관계는 노동자들을 끊임없이 압박한다.


      그중 파리 오트쿠튀르 하우스 '메종 벨리아나'의 수석 책임자 마리옹은 처음에는 왕실의 웨딩드레스를 제작한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낀다. 그러나 프로젝트가 진행될수록 촉박한 일정과 장시간 노동에서 오는 압박은 점차 그의 일상을 잠식한다. 여기에 가정의 문제까지 겹치면서 마리옹은 서서히 무너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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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의 마리옹은 자신의 일을 완벽하게 해내려는 책임감 강한 인물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 책임감은 어느 순간 자신의 삶이 무너지고 있음에도 일을 놓지 못하게 만드는 집착에 가까워진다. 특히 마지막에 마리옹이 상담사와 통화하는 장면은 공연이 끝난 뒤에도 좀처럼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보는 동안에는 불쾌하고 허망한 감정이 먼저 들었지만, 동시에 그동안 마리옹이 억눌러왔던 업무의 압박과 가정의 문제, 그리고 모든 것을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이 한순간에 터져 나오는 듯했다. 긴 시간 이어져 온 극도의 긴장감 역시 그 순간 함께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한 벌의 드레스를 완성하기 위해 희생되는 사람은 마리옹뿐만이 아니다. <라크리마>는 시선을 파리에서 알랑송으로 옮기며, 아름다움을 만들기 위해 감내해야 했던 희생이 오늘날에만 존재하는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오랫동안 알랑송 레이스 장인으로 살아온 테레즈의 공방에서는 섬세한 레이스를 만들기 위해 고도의 집중력과 정적이 요구된다. 극 중 라디오 방송을 통해 전해지는 레이스 장인들의 과거는 충격적이었다. 전쟁이 이어지던 시기에는 청각장애인이 폭격 소리를 듣지 못한다는 이유로 이들을 레이스 장인으로 양성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어린 나이부터 레이스 제작 기술을 익혔지만, 오랜 시간 눈을 혹사하는 정교한 작업을 반복한 탓에 30~35세라는 이른 나이에 시력을 잃기도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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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행히 테레즈와 현재의 장인들이 처한 노동환경은 이전 세대보다 나아졌다. 한 달에 한 번 정기적으로 시력 검진을 받고 있으며 노동시간 역시 개선되면서, 과거처럼 작업으로 인해 시력을 잃는 일은 줄어들었다. 하지만 노동환경이 개선되었다고 해서 과거의 흔적까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테레즈가 마주해야 할 문제는 자신의 노동이 아닌 가족 안에서 예상치 못한 형태로 나타난다.


      테레즈의 손녀가 이상한 소리를 듣고 정신적 이상 증세를 보이는 희귀질환을 앓게 되면서 가족의 병력을 확인하기 시작하고, 그 과정에서 테레즈는 그동안 숨겨져 있던 자신의 언니와 관련된 과거와 마주한다. 레이스 기술이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전승되듯, 미처 말하지 못한 가족의 기억과 상처 역시 세대를 넘어 이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테레즈는 과거의 진실을 마주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자신이 이어온 레이스 제작 기술을 다음 세대에 온전히 전하고자 한다.


      테레즈의 이야기를 통해 <라크리마>가 보여주는 노동의 시간은 현재에서 과거로 확장된다. 우리가 오늘날 '전통'과 '장인정신'이라는 이름으로 아름답게 바라보는 기술 뒤에는 그것을 이어오기 위해 자신의 몸과 시간을 내어준 수많은 이름 없는 사람들이 있었다. 특히 과거의 레이스 장인들이 정교한 작업을 반복하다 젊은 나이에 시력을 잃었다는 이야기는 작품 속 또 다른 공간과 묘하게 겹쳐진다.


      알랑송에서는 과거의 일이 되어가고 있는 장인의 시력 상실이, 뭄바이의 '메종 샤이나'에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메종 샤이나에서 자수 장인으로 일하는 압둘 역시 점차 시력을 잃어간다. 눈에 이상이 생겼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는 일을 쉽게 놓지 못한다. 왕실의 웨딩드레스를 만드는 일이 자신에게 주어진 명예로운 기회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자수를 완성해갈수록, 정작 그것을 만드는 압둘은 그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시력을 잃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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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실의 웨딩드레스를 제작한다는 일은 이들에게 더없이 명예로운 기회처럼 주어진다. 그러나 문득 그 명예는 결국 누구에게 남는지 의문이 들었다. 공주의 결혼은 역사에 기록되고, 드레스를 제작한 패션 하우스의 이름 역시 남을 것이다. 하지만 수천 시간을 들여 레이스를 짜고 자수를 놓으며 실제로 그 옷을 완성한 사람들의 이름까지 기억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그런 의미에서 <라크리마>는 화려한 드레스 뒤에 가려져 좀처럼 이름을 남기지 못했던 사람들을 무대 위로 불러낸다. 캐롤린 기엘라 응우옌이 그동안 실제 경험과 허구를 결합하고, 다양한 배경을 지닌 사람들의 삶을 무대 위에 담아왔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 작품 역시 '이름 없는 사람들'을 향한 또 하나의 헌사처럼 느껴졌다.


      결국 완성된 드레스는 누군가의 가장 빛나는 순간을 위해 존재하지만, 그 아름다움을 가능하게 한 사람들에게 남는 것은 반드시 영광만은 아니다.

       

       

       

      같은 드레스, 그러나 같지 않은 노동



      연극을 보는 동안 은연중에 드러나는 몇몇 장면들은 소름이 돋을 만큼 불편했다. 모두가 같은 드레스를 만들고 있음에도, 그들이 놓인 작업환경과 받는 대우는 결코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벌의 웨딩드레스는 파리와 알랑송, 뭄바이라는 서로 다른 세 지역의 노동을 거쳐 완성된다. 파리와 알랑송 역시 왕실과의 협약으로 인해 철저한 비밀유지와 감시 속에서 작업하지만, 그 안에서도 노동자들의 의견은 어느 정도 존중받는 것처럼 보인다. 특히 마리옹이 자신의 아픈 모습을 감추려 할 때, 이를 억지로 추궁하기보다 그의 의사를 존중하면서 도움을 주려는 모습이 등장한다.


      그러나 뭄바이의 자수 공방 '메종 샤이나'에서 펼쳐지는 상황은 사뭇 다르게 느껴졌다. 협약 조건으로 인해 자수 작업은 압둘이 홀로 맡아야 하고, 비자 문제로 압둘은 프랑스를 오갈 수도 없다. 반면 공방의 디렉터 마노즈는 프랑스를 오가며 파리와 직접 소통한다. 여기에 자수 공방의 전문적인 관점에서 의견을 제시하더라도 그것이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모습까지 더해지면서, 세 지역 사이에 존재하는 권력의 차이가 더욱 선명하게 다가왔다.


      건강 문제를 다루는 태도에서도 이러한 차이는 드러난다. 마리옹이 검사를 원하지 않았을 때는 그의 의사를 존중하면서 다른 방식으로 도움을 주려 했던 것과 달리, 압둘이 검사를 거부했을 때는 검사를 강행하려는 태도를 보인다. 결국 압둘의 시력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곧바로 전화가 걸려오고, 그는 일자리마저 잃게 된다. 물론 시력을 잃어가는 압둘의 상태는 즉각적인 조치가 필요한 문제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앞서 마리옹을 대하던 태도와 나란히 놓고 보니, 압둘에게 주어진 선택권은 훨씬 적고 그를 대하는 방식 역시 더욱 단호하게 느껴졌다.


      이러한 장면들을 지켜보며 한 가지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같은 드레스를 만드는 손인데, 왜 그 손의 가치는 다르게 취급되는 것일까.'


      세 지역의 노동자들은 하나의 드레스를 완성한다는 동일한 목표를 향해 움직이지만, 그들이 가진 발언권과 선택권, 이동의 자유는 동일하지 않다. 작품이 파리와 알랑송, 뭄바이를 하나의 무대 위에 나란히 배치했기에 이러한 차이는 더욱 적나라하게 보였다. 화려한 오트쿠튀르 산업이 여러 국가의 노동을 통해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그 연결망 안에서도 누군가는 중심에 있고 누군가는 주변부에 놓인다는 사실까지 드러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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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캐롤린 기엘라 응우옌은 오랜 조사 과정을 거쳐 실제 경험과 허구를 결합하는 방식으로 작품을 만들어왔다. 그렇기에 무대 위에서 드러나는 이러한 불균형은 더욱 씁쓸하게 다가왔다. 아름다운 한 벌의 옷을 완성하기 위해 세계 곳곳의 노동이 촘촘하게 연결되는 시대임에도, 그 안에서 모든 노동의 가치와 인간의 존엄까지 동등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이러한 차이를 더욱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던 데에는 <라크리마>만의 독특한 연출 방식도 한몫했다. 파리와 알랑송, 뭄바이라는 멀리 떨어진 세 공간은 무대 위에서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3분할된 스크린과 실제 무대가 동시에 펼쳐지며 세 지역의 노동을 하나의 시야 안에 겹쳐놓는다.


      개인적으로 이 연출은 작품을 이해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스크린과 실제 무대를 동시에 바라보면서 이야기를 따라가니 각 지역에서 벌어지는 상황과 인물들의 관계를 훨씬 빠르게 이해할 수 있었다. 특히 스크린 옆에서 실제 무대의 연기가 동시에 펼쳐질 때는 단순히 영상을 바라보는 것을 넘어, 마치 내가 그 공간 안으로 직접 들어간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흥미로운 것은 영상이 실제 무대를 보조하는 장치에 머물지 않았다는 점이다. 오히려 스크린과 무대가 서로의 빈틈을 채우면서 하나의 장면을 완성했다. 어느 한쪽만 바라볼 때보다 두 공간을 동시에 바라볼 때 집중력이 높아졌고, 연극을 보고 있으면서도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몰입감을 느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이 연출은 작품의 주제와도 맞닿아 있었다. 파리와 알랑송, 뭄바이는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지만 한 벌의 드레스를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연결되어 있다. 무대 위의 3분할 화면 역시 서로 다른 세 지역을 하나의 프레임 안에 놓음으로써, 우리가 완성된 드레스만 바라볼 때는 보지 못했던 각각의 노동을 동시에 보여준다. 하나의 아름다운 결과물 뒤에 얼마나 많은 공간과 사람, 그리고 서로 다른 노동환경이 얽혀 있는지를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셈이다.

       

       

       

      드레스는 완성되었다. 그렇다면 사람은?



      아름다운 드레스는 결국 완성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마리옹은 가정과 정신이 무너지고, 테레즈는 자신의 가족에게까지 이어진 과거의 상처와 마주하며, 압둘은 시력을 잃는다.


      심지어 프로젝트를 총괄하던 마리옹조차 끝까지 드레스를 완성하지 못한다. 결국 수석 자리는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고, 새롭게 작업을 맡은 이는 제작 과정에서 계속 문제가 되었던 진주를 드레스 전체가 아닌 중앙에 집중적으로 배치하는 방식으로 디자인을 수정해 드레스를 완성한다.


      돌이켜보면 마리옹은 처음부터 실현하기 어려운 공주의 요구를 어떻게든 완벽하게 구현하려 했다. 그것은 자신의 일에 대한 책임감이자 완벽주의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업무의 압박과 가정의 문제가 겹치면서, 지금까지 억눌러왔던 감정은 결국 한꺼번에 터져 나온다. 그렇게 마리옹이 그토록 완벽하게 만들고자 했던 드레스는 역설적으로 그녀가 떠난 뒤에야 완성된다.


      완성된 드레스를 마주한 순간, 나는 처음 드레스의 실루엣과 천, 장식을 보았을 때와 같은 감정을 느낄 수 없었다. 처음에는 그 하나하나가 아름답게만 보였다. 하지만 이제는 그 위에 수많은 사람의 시간과 노동,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입은 상처가 겹쳐 보였다.


      결국 완성된 것은 드레스뿐이었다.


      숨 가쁘게 이어지던 약 세 시간의 공연에 비해 결말은 오히려 허무할 정도로 힘이 빠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바로 그 허무함이 이 작품이 남긴 감정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자신의 시간과 몸, 삶의 일부까지 내어주었지만, 결국 모든 과정은 한 벌의 완성된 드레스로 수렴한다.

       

      <라크리마>는 아름다움을 부정하는 작품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작품 속 드레스의 실루엣과 천, 장식에 매료되었다. 다만 작품을 보기 전과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이제는 그 아름다움만을 바라볼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아름다운 결과물 뒤에는 그것을 가능하게 만든 사람의 손과 시간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함께 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공연이 끝난 뒤에도 하나의 질문이 남았다.


      '무엇이 우선일까. 아름다움인가, 명예인가, 전통인가, 아니면 사람인가'


      어쩌면 <라크리마>는 그 질문에 명확한 답을 내려주지 않는다. 대신 화려한 드레스 뒤에 가려져 있던 사람들을 무대 앞으로 불러내고, 그동안 우리가 결과물의 아름다움에 가려 미처 보지 못했던 것들을 바라보게 한다.


      공연을 보고 나니 이전에 보았던 샤넬의 패션쇼 준비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가 떠올랐다. 패션쇼를 일주일 앞둔 공방에서 한 제작자가 "시간이 없다"며 예민하게 반응하고 화를 내는 장면이 있었다. 당시에는 그 모습을 보면서 '왜 저렇게까지 화가 났을까' 쉽게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라크리마>를 보고 난 뒤 그 장면이 다시 떠올랐다. 화려한 런웨이 위에서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 촉박한 시간과 압박, 또 그 안에서 옷을 완성해야 하는 사람들의 노동을 이제는 조금이나마 생각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앞으로도 오트쿠튀르의 아름다움을 좋아할 것이다. 새로운 컬렉션이 공개되면 여전히 관심을 가지고 바라볼 것이다. 다만 이전과 완전히 같은 시선으로 바라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공연의 시작에서 나는 아름다운 천과 장식에 매혹되었다. 그러나 약 세 시간 뒤, 마침내 완성된 웨딩드레스가 모습을 드러냈을 때는 더 이상 그것을 마냥 아름답게 바라볼 수 없었다. 드레스 위로 그것을 완성하기 위해 흘린 사람들의 시간과 노동, 그리고 눈물이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아마 앞으로 오트쿠튀르를 볼 때마다, 나는 종종 <라크리마>를 떠올리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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