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Opinion] 예술의 경계에서, AI를 마주하다 [미술/전시]

세 아티스트의 시선으로 바라본 창작의 변화와 공존의 가능성

by 최온유 에디터
2026.10.15 14:35
이 브라우저에서 최근 읽은 글입니다.
      이전에 읽던 글입니다.

      변화의 기로에 선 디자인·예술 산업



      몇 줄의 문장만으로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시대다. 과거에는 전문적인 소프트웨어와 제작 기술이 필요했던 작업도 이제는 생성형 인공지능(AI)을 통해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구현할 수 있다. 이러한 변화는 개인의 창작 방식에 머무르지 않고 디자인과 예술 산업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최근 이미지 산업과 디자인 소프트웨어 업계에서도 변화의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세계적인 이미지 기업 게티이미지는 지난 10월 12일 미국 연방파산법 챕터11에 따른 사전합의형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했다. 회사는 향후 수주 내 일부 미국 법인을 대상으로 관련 절차를 신청할 예정이며, 구조조정을 통해 부채 부담을 줄이고 비상장 기업으로 전환할 계획이다. 게티이미지는 올해 셔터스톡과의 합병이 무산되고 부채 부담도 컸던 상황이었다. 이번 결정을 생성형 AI의 영향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이미지 제작과 유통 환경이 빠르게 달라지는 시점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디자인 소프트웨어 기업 어도비 역시 변화의 시기를 맞고 있다. 지난 9월 어도비는 오랜 기간 회사를 이끌어 온 샨타누 나라옌의 뒤를 이어 아닐 차크라바르티가 오는 12월 1일 최고경영자(CEO)에 취임한다고 발표했다. 나라옌은 이사회 의장으로 자리를 옮긴다. 포토샵과 일러스트레이터 등 전통적인 창작 도구를 제공해 온 어도비는 생성형 AI를 소프트웨어에 결합하며 변화하는 제작 환경에 대응하고 있다.


      이미지를 만드는 기술과 유통하는 방식이 달라지는 지금, 예술가의 역할은 무엇일까. 이러한 질문 앞에서 주목할 만한 세 명의 아티스트가 있다. 레픽 아나돌, 최세훈, 소피아 크레스포다. 이들은 각자의 경험과 관심사를 바탕으로 새로운 기술을 자신만의 예술적 언어로 발전시켜 왔다.

       

       

       

      데이터에 감각을 부여하다 — 레픽 아나돌


       

      1 레픽!.jpg

       

       

      튀르키예 출신의 미디어 아티스트 레픽 아나돌(Refik Anadol)은 데이터와 건축, 디지털 기술을 결합한 작업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이스탄불 빌기대학교에서 사진·영상 분야의 학사학위와 시각커뮤니케이션디자인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로스앤젤레스캠퍼스(UCLA)에서 디자인 미디어아트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아나돌은 2025년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TIME)>이 선정한 '인공지능 분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TIME100 AI)'에 이름을 올렸다. 같은 해 'TIME100 AI 임팩트 어워드'를 수상했으며, 해당 특별호의 표지 제작에도 참여했다.

       

      이러한 성과의 바탕에는 오랫동안 이어 온 미디어아트 작업이 있다. 아나돌은 생성형 AI가 대중화되기 이전부터 영상과 건축을 결합한 작품을 제작하며, 건축물의 외벽을 거대한 화면으로 활용하는 프로젝션 매핑과 몰입형 설치 작업을 선보였다. 이를 통해 물리적 공간과 디지털 이미지의 관계를 탐구했으며, 이후 머신러닝과 데이터 처리 기술을 적극적으로 도입해 표현의 범위를 넓혀 왔다.


      그의 작업에서 데이터는 단순한 숫자나 정보에 머무르지 않는다. 자연과 도시, 인간의 기억 등 다양한 자료는 유동적인 색채와 추상적인 형상으로 재구성된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이미지가 거대한 화면과 공간을 채우면서 관객은 작품을 바라보는 것을 넘어 그 안에 들어선 듯한 경험을 하게 된다. 다만 대규모 데이터에 기대는 AI 작업은 학습 데이터의 출처와 환경 부담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다. 아나돌은 자연 데이터를 직접 수집하고 협력 기관의 허가를 받아 자체 모델 '라지 네이처 모델(Large Nature Model)'을 구축하는 방식으로 이에 대응해 왔다.

       

       

      2 레픽!.jpg

      ▲ Refik Anadol, 《Artificial Realities: Coral》, 2023. © Refik Anadol Studios.

       

       

      아나돌의 작업은 기술과 예술이 만나는 지점을 보여준다. 특히 데이터라는 비물질적 대상을 감각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환경으로 전환한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오랫동안 축적해 온 미디어아트의 경험이 AI와 만나 새로운 표현 방식으로 확장된 셈이다.

       

       

       

      건축을 넘어 상상의 공간으로 — 최세훈


       

      3 세훈!.jpg

       

       

      한국 출신의 AI 아티스트 최세훈(Sehun Choi)은 건축 분야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독특한 시각적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그는 캐나다 조지브라운칼리지에서 건축기술을 공부하고, 현지 건축사무소에서 건축기술자로 근무했다. 이후 AI를 활용한 예술 작업으로 활동 영역을 넓혔다.


      최세훈은 2026년 '포브스코리아 30 Under 30'에 선정되며 젊은 창작자로서 주목받았다. 2025년에는 오픈AI 크리에이티브 랩(OpenAI Creative Lab)에 레지던트 아티스트로 참여했으며, 서울라이트 DDP를 비롯한 국내외 미디어아트 프로젝트에서도 작품을 선보였다. 그의 활동은 건축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 AI 아트가 전시와 공공 미디어아트 등 다양한 영역으로 확장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건축은 구조와 기능, 재료, 물리적 환경을 고려해야 하는 분야다. 그러나 최세훈의 작업에서는 현실의 제약이 새로운 상상력의 출발점으로 전환된다. 익숙한 건축 양식이 비현실적인 규모로 확장되거나, 고전적인 기둥과 아치가 환상적인 자연 풍경과 결합하는 식이다.


      그의 이미지에는 건축적 질서와 초현실적인 분위기가 공존한다. 정교한 공간 구성과 대칭적인 구조는 실제 건축물을 떠올리게 하지만, 그 안에 펼쳐지는 장면은 현실에서 쉽게 마주할 수 없는 풍경이다. 이러한 대비는 익숙한 건축물을 낯선 시각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4 세훈 !.jpg

      ▲ 최세훈(Sehun Choi), 《ART for YOU: Art Forest》 전시 전경, 2026. © 최온유.

       

       

      최세훈의 작업은 AI가 기존의 전문성을 대체하기보다 그 전문성을 새로운 방향으로 확장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실제 건축에 대한 이해가 가상의 공간을 구성하는 토대가 되는 것이다. 그의 작업에서 건축은 반드시 지어져야 하는 대상만은 아니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더라도 상상하고 감상할 수 있는 하나의 예술적 풍경이 된다.

       

       

       

      자연과 인공의 경계를 탐구하다 — 소피아 크레스포


       

      5 크레스포!.jpg

       

       

      아르헨티나 출신의 아티스트 소피아 크레스포(Sofia Crespo)는 자연과 생명, 인공지능의 관계를 탐구한다. 포르투갈 리스본을 기반으로 활동하며, 아티스트 듀오 'Entangled Others'의 일원으로도 작업하고 있다.


      크레스포는 국제적인 미술 현장에서 자연과 기술의 관계를 탐구하는 작업을 선보여 왔다. 특히 2024년에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카사 바트요 외벽을 활용한 대형 프로젝션 매핑 작품 'Structures of Being'을 발표했다. 안토니 가우디의 건축과 자연에서 영감을 받은 이 작품은 바르셀로나 슈퍼컴퓨팅 센터와의 협업을 통해 해류 데이터를 활용했으며, 이틀간 진행된 상영에 9만 5천 명 이상의 관객이 모였다.


      크레스포의 작품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생물학적 형태에 대한 관심이다. 인공신경망을 활용해 식물과 동물, 미생물을 연상시키는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데, 그 결과물은 현실의 생명체와 닮아 있으면서도 어딘가 낯설다. 익숙한 생물의 특징이 서로 뒤섞이며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유기적 형태가 나타난다.


      2018년부터 전개한 'Neural Zoo' 역시 이러한 관심을 보여준다. 그녀는 인공지능을 활용해 자연의 형태를 재구성하면서, 인간이 생명체를 분류하고 인식하는 방식에 질문을 던져 왔다. AI를 미래적인 기계의 이미지를 만드는 도구가 아니라 자연을 새롭게 바라보는 매체로 활용한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6 크레스포!.jpg

      ▲ Sofia Crespo, 《Structures of Being》, 2024. © Casa Batlló Contemporary.

       

       

      크레스포는 기술과 자연을 서로 대립하는 개념으로만 바라보지 않는다. 오히려 인공적인 시스템을 통해 자연의 복잡성과 생명의 가능성을 탐구한다. 아나돌이 데이터를 감각적인 공간으로 전환하고 최세훈이 건축적 상상력을 확장한다면, 크레스포는 AI를 통해 자연과 생명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흔든다.


      세 작가는 모두 인공지능을 활용하지만 그들이 만들어 내는 세계는 서로 다르다. 이러한 차이는 단순히 사용하는 AI 모델이나 기술의 성능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미디어아트에 대한 경험, 건축적 사고, 자연과 생명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이 각자의 작업을 구별하는 바탕이 된다.


      생성형 AI는 이미지 제작의 기술적 장벽을 낮추고 있다. 그러나 이미지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사실과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구축한다는 것은 같은 의미가 아니다. 어떤 주제를 선택하고, 무엇을 표현하며, 수많은 결과 가운데 어떤 이미지를 남길 것인지 판단하는 과정에는 여전히 창작자의 관점이 개입한다.


      기술이 보편화될수록 오히려 중요한 것은 창작자가 축적해 온 경험과 문제의식일 수 있다. 세 아티스트의 작업은 AI의 가능성뿐 아니라 그 기술을 사용하는 예술가의 개성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생각하게 한다.

       

       

       

      창작의 가능성 뒤에 남겨진 질문



      생성형 AI의 발전이 모든 예술가에게 새로운 기회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니다. 기술이 창작의 문턱을 낮추는 동안, 오랜 시간 자신만의 기법과 표현 방식을 발전시켜 온 작가들은 또 다른 고민에 직면하고 있다.


      필자는 과거 여러 미술 작가들을 인터뷰하면서 생성형 AI에 대한 우려를 들은 적이 있다. 일부 작가들은 오랜 시간 축적해 온 기법과 예술적 가치가 생성형 AI의 확산으로 평가절하될 수 있다는 점을 걱정했다. 특히 자신의 작품이 AI 학습에 활용되고, 이를 기반으로 한 서비스가 수익을 창출하는 동안 정작 원작자는 적절한 보상을 받지 못할 수 있다는 상황에 모순을 느낀다고 했다.


      이러한 우려는 단순히 새로운 기술에 대한 거부감으로 치부하기 어렵다. 작품 한 점에는 작가가 오랜 시간 쌓아 온 경험과 기술, 시행착오가 담겨 있다. 그 결과물이 또 다른 이미지의 생산에 활용된다면 원작자의 노력과 권리는 어떻게 인정받아야 할까.

       

      실제로 게티이미지와 생성형 AI 기업 스태빌리티 AI(Stability AI) 사이의 분쟁은 이러한 문제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게티이미지는 자사의 이미지가 허락 없이 AI 모델 학습에 활용됐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학습이 영국에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어려워 관련 저작권 침해 주장을 재판 도중 철회했다. 이후 2025년 11월 영국 고등법원은 게티이미지의 2차 저작권 침해 주장을 기각하고, 초기 버전에 한해 일부 상표권 침해만 인정했다. 게티이미지는 이후 항소 허가를 받았으며, 법적 다툼은 계속되고 있다. 다만 이번 판결이 AI 학습 자체의 적법성을 판단한 것은 아니다.

       

      여기에는 서로 구분해야 할 두 가지 문제가 있다. 하나는 기존 저작물을 AI 학습에 사용하는 것이 어떤 조건에서 허용되는가 하는 문제다. 다른 하나는 AI를 활용해 만들어 낸 결과물에 어느 범위까지 저작권을 인정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다.


      AI가 새로운 표현의 가능성을 제공한다는 사실과 기존 창작자의 권리가 보호되어야 한다는 원칙은 양립할 수 있다. 학습 데이터의 출처와 이용 허락, 정당한 보상, 창작 과정에서 인간이 기여한 부분을 보다 명확하게 다루는 기준이 필요한 이유다.

       

       

       

      기존 순수미술과 AI 아트는 어떻게 공존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기존 순수미술과 AI 아트는 서로 공존해야만 하는 관계일까. 두 영역은 창작에 사용하는 도구와 제작 과정에서 차이를 보이지만, 예술가의 경험과 사유를 바탕으로 새로운 표현을 시도한다는 점에서는 맞닿아 있다. AI가 이미지를 빠르게 생성할 수 있다고 해서 오랜 시간 축적된 회화적 기법이나 작가의 예술적 가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기술의 발전이 기존 창작자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으면서 새로운 표현의 가능성을 넓히는 방향으로 이루어지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AI 학습에 활용되는 저작물의 출처와 이용 조건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필요한 경우 원작자의 동의와 정당한 보상이 이루어질 수 있는 체계가 마련되어야 한다.


      예술 현장에서도 AI를 전통적인 제작 방식을 대체하는 수단으로만 바라볼 필요는 없다. 회화와 조각, 공예 등 기존 예술의 고유한 제작 과정과 물질적 특성을 존중하면서, AI를 구상과 실험, 새로운 매체와의 협업에 활용하는 방식도 가능하다. 다만 이러한 선택은 기술의 유행이 아니라 각 예술가의 필요와 판단에 따라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결국 공존은 모든 예술가가 AI를 사용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AI를 활용하는 창작과 활용하지 않는 창작이 모두 존중받고, 서로 다른 방식의 예술적 가치가 인정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서 출발할 것이다.


      인공지능은 창작의 방식을 변화시키고 있지만, 새로운 기술의 등장이 기존 예술의 가치를 반드시 대체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서로 다른 매체와 표현 방식이 공존할 때 예술의 영역은 더욱 확장될 수 있다.


      오늘 소개한 세 아티스트의 작업 역시 처음부터 오늘날과 같은 생성형 AI 이미지 제작에서 출발한 것은 아니다. 각자의 경험과 관심을 바탕으로 인공지능이라는 새로운 매체를 받아들이고, 이를 자신만의 예술적 언어로 발전시켜 왔다.


      결국 예술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은 기술의 발전만이 아닐 것이다. 그 기술을 통해 무엇을 표현할 것인지, 그리고 서로 다른 방식으로 창작하는 예술가들의 가치와 권리를 어떻게 존중할 것인지에 대한 우리의 태도 역시 중요하다.

       

       

       

      아트인사이트 명함.jpg

       

       

      이 이야기는 어떠셨나요?

      최온유 에디터의 인기글

      많이 읽힌 글 3편
      1. 01 [Project 당신] 장밋빛 세상에서 벗어나 [자기소개]
      2. 02 [Opinion] 왜 이 작품은 높은 평가를 받았을까 [만화]
      3. 03 [Opinion] 일상 속 감정을 깨우다 [미술/전시]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