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포스트 휴먼의 시대이다.
터미네이터 T-800처럼 인간의 신체를 완벽하게 복제한 로봇이 아직 등장하진 않았지만, 이미 인공지능 기술은 우리의 삶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딥러닝의 개발자이자 24년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제프리 힌턴 명예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인간의 주요 한계였던 '체력'을 없앤 것이 '산업 혁명'이었던 것처럼, 인간의 주요 한계가 된 '지적 능력'을 'AI'가 깰 것이라고.
인공지능(AI)이란 사람의 지능을 흉내 내는 소프트웨어, 프로그램, 인공적인 장치를 통틀어서 명칭 하는 단어다. 이러한 인공지능의 기술에는 크게 '딥러닝'과 '머신 러닝'이 있다.
딥러닝은 수많은 뉴런을 통해 정보를 주고받는 뇌의 학습 과정을 본뜬 인공 신경망으로, 여러 가지의 정보를 반복 학습하여 정보를 구별해내는 기술이다. 머신러닝은 수많은 데이터를 직접 분석하여 규칙을 스스로 찾아낼 수 있도록 하는 능동적 학습 기술을 뜻한다. 이러한 기술은 수많은 데이터의 집합인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한다.
이런 인공지능이 예상치 못한 예술 분야로 영역을 확장하며 창작자와 소비자 사이의 잡음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 3월 29일, 테슬라의 최고 경영자인 일론 머스크는 지난 22년 매각한 SNS 'X'(구 트위터)를 자신의 인공지능 기업인 'xAI'에 깜짝 매각했다고 밝혔다. 24년 10월, 'X에 올라오는 그림, 사진 등을 AI에 학습시키겠다'는 약관 수정에 이어 사용자의 사소한 게시물까지 딥러닝에 사용하겠단 포부가 보이는 결정이었다. 이에 X를 주요 매체로 이용하는 수많은 창작자는 '무단으로 자신의 작품을 사용하는 X를 떠나 다른 곳으로 정착하겠다'는 의견을 밝혔다.
그뿐만 아니라 모 업체가 AI 동화에 대해 홍보하며 '(아이디어 구상부터 일러스트 디자인까지)합법적인 새치기가 가능하다'란 문구를 적어 논란이 되기도 하였다. 작가의 깊이 있는 사유와 세계관을 통해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 그리고 교훈을 전달하는 '동화'란 장르의 가치를 훼손하는 광고란 것이다.
예술이란 장르 속에 인공지능이 깊게 스며든 포스트 휴먼의 시대 속에서, 나름 창작자로서의 고민이 많다. 인간의 여러 감정과 기술을 딥러닝 하여 재탄생하는 예술의 가치를 인정해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기피해야 하는 것인가.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만큼의 발전도 없으니 표리부동한 태도로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것인가.
무엇보다 우려스러운 것은 이러한 인공지능이 예술을 넘어, 예술인이 설 자리까지 침범하는 것이다.
이러한 인공지능이 지금만큼의 파급력을 갖기 전, AI와 자신의 조각 작품을 접목해 영리하게 창작의 범위를 넓힌 이가 있다. 바로 작가 노진아다.
작가 노진아는
노진아 작가는 조각 작품과 뉴미디어를 접목한 인공지능 대화형 로보틱스 조각 작품과 실시간 인터렉티브 영상을 제작해 오고 있다. 또한 인간과 비인간의 관계에 관심을 두며 이러한 관계들의 의미를 전시장에서 풀어내는 방식으로 기계와 생명의 정의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백남준아트센터, 광주미디어아트플랫폼 등에 그녀의 작품이 소장되어 있으며 서울 시립 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등의 기획 전시에서 작품을 선보였다. 현재 노진아 작가는 경희대학교 미술 대학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진화하는 신, 가이아'
작가의 작품 중 하나인 '진화하는 신, 가이아'는 백남준아트센터에서 소장 중인 작품이다.
<진화하는 신, 가이아>는 관객이 인간이 되길 원하는 기계 '가이아'에게 질문하면 센서를 통해 그 질문의 의도를 받아들인 뒤 답변을 내놓는 뉴미디어 조각 작품이다. 가이아는 인간이 던지는 질문에 프로그래밍 된 대답을 하며 스스로 학습 후 성장한다. 즉, 많은 질문을 받으면 받을수록 인간과 비슷한 사고 체계를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가슴을 내놓은 채 붉은 뿌리가 달린 듯한 거대한 형체의 가이아에 관객들은 긴장하지만, 그와 대화를 진행하면 진행할수록 기계가 아닌 하나의 인격체로 인식하는 기이한 경험을 하게 된다.
작가는 빅데이터와 딥러닝의 발전을 통해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인공 지능을 바라보며 '생명체를 거의 완벽히 모방한 인공물이 있다면 그것을 생명체라고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통해 해당 작품을 창작했다고 밝혔다.
'진화적 키메라 - 가이아'
작가의 이전 작인 '진화하는 신, 가이아'의 연장선인 작품이다.
해당 작품에서 가이아는 대지의 어머니이자, 스스로를 조절하며 상호작용을 하는 유기체로서의 지구를 칭하는 '가이아'로서 등장한다.
가이아는 얼굴 뒤에 달린 것은 죽거나 멸종한 생명체(공룡 등), 현재 살아있는 생명체들을 매달고 있다. 그는 이러한 생명체들이 기계와 별반 다를 것 없다고 주장한다. 또한 인간처럼 언제 감정을 배우고 언제 인간이 될 수 있는지 궁금하다고 말한다.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리라.
로봇의 머리가 흙에 파묻혀 있는 듯한 형식의 작품이다.
해당 작품을 향해 관객이 다가가면 로봇은 '나는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가겠다'고 입을 벌려 말한다.
작가는 해당 작품을 통해 '왜 로봇은 인간이 되고 싶어 하고 인간의 형상을 닮았을 뿐 아니라 탄생과 소멸까지 닮고 싶어 할까. 로봇들이 원하는 것일까, 우리가 원하는 것일까. 왜 우리는 우리와 닮은 존재를 만들고 싶어 하는 것일까. 그들이 우리와 너무나 같아지면 우리는 로봇들과 어떤 세상을 공유하게 될까'라고 밝혔다.
이처럼 노진아 작가는 인간과 기계, 그리고 인간과 인공지능의 경계에 대한 끊임없는 고뇌를 통해 다양하고 독특한 창작품을 만들어왔다. 인간같은 인공지능 기술을 향해 발돋움하는 시대에서, 예술이란 장르의 가치는 앞으로 어떻게 변주하게 될 것인가. 또한 노진아 작가의 질문처럼 인공지능이, 그리고 기계가 인간을 닮고 싶어 하는 것일까, 그저 우리의 욕심인 것인가.
해당 글에 사용한 모든 사진은 노진아 작가의 공식 유튜브 캡처 화면이다. 노진아 작가의 또 다른 작품이 궁금하다면 작가의 유튜브 채널 방문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