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2월 퇴사 후 3개월의 취업 준비 기간을 지나, 올해 4월 마침내 이직에 성공했다. 그것도 첫 정규직이었다. 그동안의 작은 걸음들이 모여 만들어낸 결과였다. 채용 공고를 살피던 중, 한 기관의 이름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늘 직무나 회사의 방향, 연봉을 기준으로 선택해왔던 나에게, 이름에 이끌려 지원하게 된 것은 처음이었다. 내 마음을 끌어당긴 곳은 ‘민주화운동센터’였다.
지역의 민주화운동과 그 과정에서 희생된 이들을 기억하고, 유가족을 지원하는 이곳에서 나는 홍보팀으로 일하게 되었다. 4월 1일 첫 출근 이후 맡게 된 첫 업무는 4월 3일, 제주 4·3 사건을 추모하는 게시물을 제작하는 일이었다. 평소 역사에 관심이 많고 공부하는 것을 좋아했던 나에게 4·3은 익숙한 사건이었다. 제주를 상징하는 동백꽃과 돌담, 바다, 그리고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여성의 뒷모습을 한 장의 이미지에 담았다. 그리고 문구를 이렇게 적었다.
‘제주의 깊은 상처 위에도
다시 동백꽃이 피어나기를 간절히 바라며,
무고하게 희생되신 분들과 유가족의 아픔을 오래도록 기억하겠습니다.’
그렇게 첫 게시물을 올린 나는 만족스러운 마음으로 퇴근했다. 그리고 곧장 연극 「돔박아시 고이래」를 보기 위해 대학로로 향했다.
돔박아시, 고이래

연극 「돔박아시 고이래」는 2003년의 현재와 1948년 제주 4·3 사건 당시를 교차시키며, 개인의 기억과 역사적 진실이 어떻게 충돌하고 이어지는지를 그려낸다. 이야기는 호국영웅으로 기려지던 ‘채진석’의 동상을 쓰러뜨린 인물, 고이래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그녀를 취조하는 형사 강선웅과 사건의 배경에 대해 끝내 입을 열지 않는 마을 사람들의 침묵 속에서, 서사는 점차 과거로 확장된다.
고이래의 침묵은 단순한 저항이 아니라 지워진 역사에 대한 응답이다. 그녀는 조사 과정 내내 변명하거나 해명하지 않은 채 ‘동백아가씨’라는 노래만을 반복해 부르며, 말로 설명되지 않는 슬픔과 기억을 드러낸다. 점차 밝혀지는 사실은 그녀의 가족사가 제주 4·3 사건과 깊이 얽혀 있음을 보여준다. 어머니는 당시 희생된 민간인이었고, 아버지는 군인이었지만 무고한 도민을 학살하라는 명령을 거부한 끝에 상관을 암살한 혐의로 사형당한 인물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고이래가 쓰러뜨린 채진석은 바로 그 아버지가 제거한 인물로, 실제로는 제주도민 학살에 가담했던 군인이었다.
한편, 형사 강선웅 역시 제주 4·3의 또 다른 후손이다. 그의 아버지는 당시 군인으로서 도민 학살에 가담했으며, 강선웅은 그 사실을 알고 난 뒤 죄책감과 혼란 속에서 살아간다. 이처럼 가해자와 피해자의 기억이 현재의 인물들에게 이어지며, 작품은 단순한 과거 회상이 아닌 현재진행형의 역사로서 4·3을 다룬다.
재판에 서게 된 고이래는 마침내 침묵을 깨고 제주 4·3의 진실과, 그로 인해 자신과 도민들이 겪어야 했던 고통을 당당히 증언한다. 그러나 사회는 여전히 그 목소리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녀는 결국 유죄 판결을 받아 징역형을 선고받는다. 진실을 말했음에도 패배하는 결말은, 여전히 완전히 밝혀지지 못한 역사와 그에 대한 사회의 외면을 상징한다.
연극의 마지막에서 강선웅은 자신의 아버지가 가담했던 폭력의 역사와 마주하며, 다시 세워진 채진석의 동상에 죽창을 꽂는다. 이 행위는 단순한 파괴가 아니라, 왜곡된 기억과 침묵으로 유지되어 온 역사에 대한 뒤늦은 저항이자 참회의 몸짓으로 읽힌다. 「돔박아시 고이래」는 이렇게 개인의 서사를 통해 집단의 기억을 환기시키며, 우리가 어떤 역사를 기억하고 또 어떻게 직면해야 하는지를 묻는다.
동백꽃, 그 아름다움 뒤에 가려진 아픔

나는 제주 4·3 사건의 상징이 동백꽃이라고 알고 있었기에 추모 게시물에 ‘제주의 깊은 상처 위에도 다시 동백꽃이 피어나기를 간절히 바라며…’라는 문구를 적었다.
하지만 연극에서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동백의 붉은색은 희생된 제주도민들이 흘린 피와 같다고…”
이 대사를 듣는 순간, 내가 어쩌면 실수를 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단지 동백꽃이 아름답다는 이유로, 그들의 상처가 동백꽃처럼 아름답게 아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문장을 적었지만, 누군가에게는 그 꽃이 결코 아름답게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겉으로는 아름답지만, 그것을 보는 순간 ‘고통’이 떠오른다면 과연 그것을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을까.
제주 4·3에 대해 어릴 때부터 배워왔지만, 그 의미를 제대로 실감한 것은 고등학교 시절 제주도 수학여행 때였다. 첫날에는 푸른 바다와 아름다운 주상절리를 보며 감탄했고, 둘째 날에는 제주 4·3 평화기념관을 찾았다. 그곳에서 내가 바라보았던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억울하게 희생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 순간 이전의 기억들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동시에 어지러움을 느꼈고, 아무 생각 없이 사진을 찍고 감탄하던 내 모습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그 이후로 제주를 찾을 때면, 자연을 온전히 편안한 마음으로 바라보기가 쉽지 않았다.
우리는 앞으로 제주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필자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각자의 마음속에 ‘부채 의식’을 품고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 1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이 문장이 지금의 현실로 존재하기까지 수많은 이들의 희생이 있었다. ‘자유’는 결코 당연하게 주어진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 희생을 잊지 않고, 기억하며 살아가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