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읽겠다고 사둔 벽돌책 리스트가 있다. 몇 년이 지났는지도 가물가물해 이제는 책이라기보다 인테리어에 가까워진 책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도 그중 하나다.
시작은 가벼웠다. 우연히 니체의 철학을 포괄적으로 다룬 책을 읽었고,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 등장하는 '영원회귀' 개념이 니체에게서 온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의 사상을 이해하면 다른 문학 작품도 깊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얼마나 성급했는지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지만.
니체를 잘 모르는 사람도 한 번쯤 들어봤을 유명한 이 책은 철학적 개념을 논리적으로 풀어낸 학술서 느낌은 아니다.
'차라투스트라'라는 방랑 시인이 깨달음을 얻고 산에서 내려와 삶의 한복판으로 걸어가는 이야기다. 철학의 탈을 쓴 소설인가 싶지만, 흥미진진한 서사나 개연성을 찾긴 어렵다. 니체의 분신과도 같은 차라투스트라가 은유와 상징으로 가득한 말을 폭포처럼 쏟아내서 흐름을 따라 읽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그 과정에서 차라투스트라가 끊임없이 외치는 핵심 개념과 마주했다. 초인, 영원회귀, 그리고 낙타, 사자, 아이. 사실 이 난해한 개념들은 생각보다 우리 일상에 가까이 닿아 있다. 작년 지드래곤이 발표한 앨범명 '위버맨쉬(Übermensch)'는 니체가 말한 '초인'의 독일어다.
초인은 인간과 세계를 진정으로 긍정하며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는 존재다. 차라투스트라는 "인간은 짐승과 초인간 사이를 잇는 하나의 밧줄"이라 말한다. 이는 프로이트가 말한 본능(원초아)과 도덕적 이상(초자아) 사이에서 매일 흔들리는 이성(자아)의 불안한 본질과 비슷했다.
영원회귀는 삶과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고 영원히 반복된다는 뜻으로, 주어진 운명을 온전히 받아들이라는 김연자의 곡 '아모르파티(Amor Fati)'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결국 니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라 생각했다.
우리는 삶이라는 굴레 속에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해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에 자신을 가두며 살아간다. 세상이 정해놓은 트랙 밖으로 벗어나면 불안해하고, 그 불안이 만든 환영에 스스로 잡아먹힌다.
니체는 그 색안경을 벗어던지고 가장 순수하고 용감했던 아이의 마음으로 돌아가 운명을 온전히 긍정하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사막을 건너며 의무와 짐을 짊어진 낙타가, 사자가 되어 억압에 저항하고, 마침내 아이로 변화하는 것처럼.
그리고 삶이 내게 직접 이 비밀을 말했다. 삶이 말하기를, 보라, 나는 끊임없이 스스로 자기를 극복해야 하는 존재다. (p. 217)
나름의 답을 내려보았지만, 완벽하다고 전혀 말할 수 없다. 인생은 누군가의 정답을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차라투스트라가 걸었던 사막을 나만의 줏대로 걸어가는 것일 테니까.
오아시스를 발견하듯, 사막 한가운데에서 말라죽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