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명절을 맞아 본가에 들렀다. 밤이 깊어갈 무렵, 아버지와 함께 드라이브를 나섰다. 평소 즐겨 듣는 KBS Classic FM의 <세상의 모든 음악>을 틀어놓고, 익숙한 목소리와 음악 사이로 조용히 도로를 달렸다.
이날은 추석 특집 방송으로 배우 박지환이 게스트로 출연하는 날이었다. 박지환이 고른 플레이리스트가 한 곡씩 흘러나왔다. 그중 Glen Weston이 부른 'What Is a Youth' (From Romeo & Juliet)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들은 이맘때 어떤 노래를 들을까. 그리고 우리가 어떤 노래를 두고 ‘가을에 어울린다’고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 쓸쓸한 멜로디 때문일까, 가사 때문일까.
나 자신을 비롯해 주변의 몇몇 사람들에게 물어보았다. 가을이 오면 찾아 듣는 노래는 무엇인지. 그리고 왜 하필 그 노래를 다른 계절이 아닌 가을에 듣게 되는지.
각자가 고른 노래를 따라가다 보면, 어쩌면 우리가 계절을 감각하는 방식과 저마다의 기억까지 함께 들여다볼 수 있지 않을까. 이번 글에서는 그렇게 모인 몇 곡의 노래를 소개해보려 한다. 가을이라는 계절을 닮은 노래들, 그리고 각자의 가을에만 유난히 잘 어울리는 노래들.
Carla Bruni - Little French Song
"여름이 지나고 맞는 가을의 선선한 바람은 어떠한 기대감을 갖게 한다. 그러나 동시에 푸른 잎의 색이 바래고 낙엽이 떨어지는 모습은 쓸쓸한 마음을 갖게도 한다. 가을은 쌉싸름하고 달콤한 다크 초콜릿 같다. 허스키하면서도 부드러운 카를라 브루니의 목소리, 시크하면서도 둥근 프랑스어의 발음은 이런 가을과 잘 어우러진다."
French songs will take you to Paris, to Pigalle ou L'Île Saint-Louis
(프랑스 노래는 당신은 파리로 데려가요 피갈로에서 생루이 섬까지)
French songs are dancing sous la pluie, de Bastille aux Tuileries
(프랑스 노래는 빗속에서 춤을 춰요 바스티유에서 튈르리 정원에서까지)
Joji – Hotel California
"조지의 노래 중 'Slow Dancing In The Dark'
She said, “Nice to meet ya, nice to know ya”
(그녀는 “만나서 반가웠고, 널 알게 돼서 좋았어”라고 말했고)
And left me at the Hotel California
(나를 호텔 캘리포니아에 남겨두고 떠났어)
Don’t know what it means, guess I’m a goner
(무슨 뜻인진 잘 모르겠지만, 난 이미 끝났나봐)
Lost you in the waves, I’m underwater
(파도 속에서 널 잃었고, 난 수면 아래 잠겼어)
BIBI – 책방오빠 문학소녀 (Scott and Zelda)
"책이라는 소재는 독서의 계절인 가을을 떠오르게 만든다."
난 네 종이, 넌 내 연필
나를 한번 펼쳐봐 줄래?
날 넘겨줄래, 읽어봐 줄래, 갈피를 꽂아줄래?
반납했다 영영 놓치지 말고, 날 데려가 줄래?
김광석 –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곡명 자체가 강한 계절감을 드러낸다. 또한 가을은 내게 어디로 떠나가고 싶게끔 하는데 이 노래의 가사도 그러하다."
난 책을 접어 놓으며 창문을 열어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잊혀져간 꿈들을 다시 만나고파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Shigeru Umebayashi - Yumeji’s theme (From 화양연화, In the Mood for Love)
"피부를 감싸던 무더운 기운이 걷혔다. 새벽에 한기를 느껴 일어날 때 가을 공기에서 묘한 긴장감을 느끼기도 한다. 마치 이 노래가 주는 불안정한 느낌과 같다."
Kelly Clarkson – Wrapped in Red
"나는 지금부터 크리스마스를 준비하는 중이다. Kelly Clarkson의 'Wrapped in Red'
But this Christmas I’m gonna risk it all
(하지만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모든 걸 걸어볼 거야)
This Christmas I’m not afraid to fall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넘어지는 것도 두렵지 않아)
So magical and nothing more than words I never said
(너무나 마법 같아, 그리고 내가 끝내 하지 못했던 말들보다 더 많은 것)
You know it’s love
(넌 이게 사랑이라는 걸 알잖아)
막상 사람들에게 가을에 듣는 노래를 물어보니,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다양한 노래들이 돌아왔다. 누군가는 샹송을, 누군가는 영화의 삽입곡을, 또 누군가는 크리스마스 캐럴을 가을의 음악으로 꼽았다. 같은 계절을 지나고 있음에도 각자가 듣고 있는 노래는 전혀 달랐다.
가을을 바라보는 방식도 마찬가지였다. 가을은 낙엽을 떠올리는 계절인 동시에 책을 읽는 계절이기도 했고, 질서가 뒤바뀌는 묘한 긴장감을 느끼는 계절이기도 했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하고, 아직 오지 않은 겨울을 기다리는 시간이 되기도 했다.
우리가 가을에 듣는 노래는 단순히 가을의 계절감을 담고 있기보다, 각자가 가을을 바라보고 느끼는 방식이 담기는 것이다.
같은 가을 아래에서 우리는 이렇게나 서로 다른 노래를 듣고 있고, 서로 다른 감정과 기억을 품고 있다. 그렇다면 이번 가을, 당신의 마음에 머물고 있는 노래는 무엇인가? 당신은 그 노래를 통해 어떤 가을의 모습을 보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