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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아무것도 되지 않아도 되는 시간 - 예술은 이미 당신의 마음속에 있다 [미술/전시]

주름, 얼룩, 수증기, 온기, 그리고 흔들리는 경계로 바라본 우순옥의 예술

by 김한비 에디터
2026.10.09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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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학자 한병철은 『피로사회』에서 오늘날의 사회가 더 이상 ‘~해야 한다’거나 ‘~하지 않아야 한다’는 부정성의 명령으로만 작동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규율사회에서 개인을 움직이게 했던 것이 금지와 규칙이었다면, 성과사회에서 개인을 움직이는 것은 ‘~할 수 있다’는 긍정성이다.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은 자유처럼 보이지만, 역설적으로 주체가 스스로를 끊임없이 몰아붙이게 만든다. 더 할 수 있기 때문에 더 해야 하고, 더 나아질 수 있기 때문에 현재의 자신을 끊임없이 극복해야 한다. 타인이 나를 착취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 자신을 착취하는 것이다. 한병철이 말하는 '강제하는 자유', '자유로운 강제'는 바로 이러한 역설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이러한 사회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한병철은 멈춤과 관조, 사유에서 대안을 찾는다. 계속해서 무엇인가를 생산하고 성취해야 하는 시간에서 벗어나 잠시 멈추고, 바라보고, 생각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생산성과 목적을 향해 직선적으로 흘러가는 시간과 다른 시간을 경험하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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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순옥, <아주 작은 집>, 2006, 오브제 108개, LED 108개, 면사 ,조광기, 전선

       

       

      지난 10월 3일 성곡미술관에서 우순옥의 회고전이 종료되었다. 우순옥은 한국 현대미술의 작가로 물질과 비물질, 일상과 예술, 기억을 탐구했다.

       

      그녀는 일상의 사물과 예술작품 사이의 경계를 허무는 작업을 했다. 예를 들어 <아주 작은 집>에는 빗, 전구, 전등갓, 셔틀콕 등 일상적인 사물 108개가 사각의 그리드 안에 배치되어 있다. 이곳에서 예술은 더 이상 특정한 재료나 형식에 갇히지 않는다. 일상의 사물도 작품이 될 수 있고, 사물에 대한 개념과 관계 역시 예술의 일부가 될 수 있다.

       

      이러한 개념미술의 확장성은 한병철이 말하는 긍정성의 과잉과 일정한 접점을 갖는다. 예술이 무엇이든 될 수 있다면 예술의 가능성에는 사실상 한계가 없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자유로운 가능성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또 다른 혼란을 만들 수도 있다. 모든 것의 긍정은 곧 모든 것의 부정과도 같다. 명확한 답을 기대하는 우리는 무한히 열린 가능성 앞에서 무엇을 보아야 하고,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머뭇거리게 된다.

       

      그러나 우순옥의 작업은 예술의 범위를 확장하면서도 그 확장을 생산성의 증대로 연결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녀의 작품에서는 성과사회가 끊임없이 요구하는 생산과 성취의 시간이 중지된다. 그녀는 완성되지 않은 것, 낡은 것, 마모된 것, 사라지는 것, 우연히 생겨난 흔적을 제거하거나 극복하지 않고 작품 안으로 받아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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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순옥, <시간의 그림>, 1983/2016, 캔버스 위에 유화, 실, 주름진 시간의 흔적

       

       

      <시간의 그림>이 이를 잘 보여준다. 이 작품은 작가가 1983년 대학원 시절 제작한 <침묵의 바다>를 말아서 오랫동안 보관했다가 20년이 지난 뒤 다시 펼친 작업이다. 작품에는 오랜 시간 동안 말려 있었기 때문에 생긴 주름과 자국이 남아 있다. 작가는 그것을 다시 팽팽하게 펴거나 복원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흔적을 그대로 작품의 일부로 받아들였다. 작품의 캡션 역시 ‘주름진 시간의 흔적’을 재료로 포함한다.

       

      여기서 시간은 무언가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 아니다. 시간이 흘렀다고 해서 작품이 더 완전해진 것도 아니고, 작가가 새로운 결과물을 만들어내기 위해 과거의 작품을 수정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시간이 작품에 흔적을 남겼고, 작가는 그 흔적을 지우지 않았다. 성과사회의 관점에서 보면 이 시간은 생산되지 않은 시간일 것이다. 그러나 우순옥은 바로 그 비생산적인 시간을 작품의 재료로 전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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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순옥, <무제 드로잉>, 2016, 시간의 흔적과 얼룩, 천에 금실

       

       

      <무제드로잉 1, 2>에서도 비슷한 태도를 발견할 수 있다. 작품을 포장했던 흰 천에 생긴 얼룩을 지우거나 버리는 대신 작가는 그 흔적을 따라 금실로 수를 놓았다. ‘시간의 흔적과 얼룩, 천에 금실’이라는 캡션은 작품이 새롭게 만들어진 어떤 형식보다 이미 존재하던 흔적을 중요한 재료로 삼고 있음을 보여준다. 얼룩은 결함이 아니라 작품이 된다. 마모는 극복되어야 할 상태가 아니라 받아들여져야 할 시간의 흔적이 된다.

       

      이 점에서 우순옥의 작업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긍정성의 논리와 다른 방향으로 예술을 확장한다. 그것은 더 많은 것을 생산하는 확장이 아니라, 지금까지 생산성의 기준에서 중요하지 않다고 여겨졌던 것들을 받아들이는 확장이다. 낡은 것, 얼룩진 것, 우연한 것, 사라지는 것, 일상적인 것이 작품의 자리를 얻는다. 예술의 범위가 넓어지는 것이지만, 그 넓어짐은 더 많은 것을 만들어내라는 요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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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 우순옥, <연기드로잉>, 2000, 방, 내화강, 300cc 투명 오브제, 물, 열판, 빛

      (우) 우순옥, <따뜻한 벽>, 1996/2003 (2026 재제작), 나무, 합판, 전기 패드, 알루미늄, 라이팅 페이퍼, 페인트, 빛

       

       

      <연기드로잉>에서는 이러한 특징이 더욱 분명해진다. 물이 뜨거운 철판 위에 떨어지면서 수증기가 만들어지고, 잠시 형태를 이루었다가 사라진다. 관객에게 남는 것은 물이 철판에 닿을 때 발생하는 소리와 순간적으로 나타났다 사라지는 수증기의 형태, 그리고 철판에 남은 녹의 흔적이다. 이 과정은 반복되지만 어떤 완성된 결과를 향해 나아가지 않는다.

       

      수증기는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물은 다시 떨어진다. 작품은 무엇인가를 축적하지 않는다. 반복하지만 발전하지 않고, 움직이지만 목적지에 도달하지 않는다. 성과사회의 시간은 현재의 행위를 미래의 결과로 연결하지만, <연기드로잉>의 시간은 그 연결을 끊어버린다. 그저 나타나고 사라지는 과정 자체가 작품이 된다. 여기에는 생산성이라는 관점으로 환원하기 어려운 시간이 존재한다.

       

      한편, 우순옥의 작업에서 중요한 것은 단지 ‘보는 것’만도 아니다. 그녀의 작품은 시각을 넘어 관객의 몸 전체를 작품의 경험 안으로 끌어들인다. <따뜻한 벽>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일반적으로 벽은 차갑고 단단하며 우리와 거리를 두는 대상으로 경험된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는 벽에 발열 장치가 설치되어 있어 관객이 손을 대면 온기를 느낄 수 있다. 눈으로 보았을 때는 하나의 벽이지만 손으로 만지는 순간 그것은 전혀 다른 존재가 된다.

       

      그 온기는 단순한 물리적 온도 이상의 감각을 불러일으킨다. 차갑고 무생물적인 벽이 따뜻한 대상으로 변화하면서 관객은 마치 살아 있는 존재와 접촉하는 듯한 감각을 경험한다. 여기에서 작품은 관객과 분리된 채 바라보는 대상이 아니라 관객의 몸에 직접 닿는 것이 된다. 보는 것에서 만지는 것으로, 대상에서 관계로 감각의 방식이 이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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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순옥, <방 - 존케이지를 생각하며>, 1988/1993, 면천 12장

       

       

      <방 - 존케이지를 생각하며> 역시 이러한 경험을 확장한다. 검은 천 사이를 걸어가면 관객의 움직임에 따라 주변의 천이 바람에 흔들린다. 처음에는 직사각형의 통로처럼 구획되어 있던 공간이 관객의 움직임에 따라 계속해서 형태를 바꾼다. 고정되어 있던 경계가 흔들리고, 나와 공간을 구분하던 선도 불분명해진다. 그 안을 걷는 경험은 일상의 공간과는 다른 비현실적인 감각을 만들어낸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관객이 작품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 안에서 자신의 몸을 경험한다는 사실이다. 공간은 더 이상 가만히 바라보는 배경이 아니다. 나의 움직임에 반응하고, 나의 감각에 따라 달라지는 환경이 된다. 작품과 관객 사이의 경계가 느슨해지는 것이다.

       

      우순옥의 작품에서 예술의 확장은 생산해야 할 것이 늘어나는 방향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생산되지 않은 것들을 바라볼 수 있는 가능성이 늘어난다. 오래되어 생긴 주름, 지워지지 않은 얼룩, 일상의 사물, 잠시 나타났다 사라지는 수증기, 손끝에 전달되는 온기, 움직임에 따라 흔들리는 천. 성과의 기준에서는 특별한 결과가 아닐 수 있는 것들이 작품 안에서는 오래 머물러 바라보아야 할 대상이 된다.

       

      그렇기에 우순옥의 작업은 성과사회의 대안인 ‘사색적 삶’과 만난다. 사색적 삶은 "모든 일을 그저 긍정하는 수동적인 자기 개방"이 아닌 "마구 밀고 들어오는 자극에 대한 저항을 수행하며, 시선을 외부의 자극에 내맡기기보다 주체적으로 조종"하는 것이다. 서둘러 판단하지 않는 것, 이미 존재하는 것을 억지로 다른 것으로 만들지 않는 것, 그리고 잠시 아무것도 되지 않는 것. 그것은 자신의 시간과 시선을 되찾게 만든다.

       

      전시명인 《예술은 이미 당신의 마음속에 있다》는 어쩌면 이렇게 들린다. 더 나은 무엇이 되어야만 가치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세계를 느끼고 바라보고 있는 당신으로 이미 충분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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