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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2020년대 드라마로 보는 회귀의 욕망 [드라마/예능]

자연과 고향으로, 그리고 과거로

by 김한비 에디터
2026.10.16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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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왜 자꾸 돌아가려 하는가: 자연과 고향, 그리고 인생을 다시 시작하려는 욕망



      지친 사람들이 돌아가고 싶은 곳은 어디일까. 어떤 이에게는 도시의 소음에서 벗어난 바닷가나 고향의 골목일 것이고, 어떤 이에게는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일 것이다. 최근의 드라마들은 이러한 욕망을 다양한 방식으로 재현한다.

       

      《웰컴투 삼달리》(2023)의 삼달과 《미지의 서울》(2025)의 미래에게 고향은 지친 삶을 돌아보고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공간으로 등장한다. 《도시남녀의 사랑법》(2020)의 은오와 《갯마을 차차차》(2021)의 혜진, 《나의 해방일지》(2022)의 구씨, 《오늘도 매진했습니다》(2026)의 예진과 같은 도시인에게 낯선 자연은 고통스러운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도피처이기도 하다.

       

      한편 《재벌집 막내아들》(2022)의 현우와 《선재 업고 튀어》(2024)의 솔은 아예 과거로 돌아가 이미 주어진 삶을 다시 선택하려 한다.

       

      이 작품들이 공유하는 것은 단순한 귀향이나 시간 여행의 판타지가 아니다. 현재의 삶에서 충족되지 못한 무언가를 다른 공간이나 시간에서 되찾으려는 욕망이다. 도시에서 얻지 못한 여유와 친밀함은 자연과 고향에 투영되고, 현재의 삶에서 되돌릴 수 없는 실패와 상실은 과거로 돌아가는 상상을 통해 수정 가능한 것으로 바뀐다. 이 서사들은 우리에게 질문한다. 우리는 왜 지금의 삶을 살아가는 대신, 자꾸 다른 곳으로 떠나거나 지나간 시간으로 돌아가려 하는가.

       

       

       

      도시의 피로와 자연과 고향이라는 대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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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촌 드라마는 한동안 침체되는 양상을 보이다가, 2010년대 중반 이후 새로운 방식으로 등장한다.  (…) 농촌 이미지는 일정한 특징을 공유한다. 제철 식재료와 소박한 한 끼, 느린 일의 풍경이 전면에 배치된다. 농촌은 도시의 속도와 경쟁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대안적 공간으로 이미지화된다.

       

      이와 같은 전환은 2010년대 이후 한국 사회를 휩쓴 힐링 담론의 유행과 맞물린다. 이주라에 따르면 힐링 담론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대중들이 느끼는 정신적 피로감으로부터 비롯되는데, 이는 사회 구조적 모순에 대한 비판적 사유를 개인의 정신 치유 문제로 치환하는 ‘치유적 통치 체제’의 산물이다. 이러한 매커니즘 안에서 농촌은 모순의 근원을 제거하는 대신, 주체의 감정 상태를 일시적으로 관리하는 처방의 공간으로 기능하게 된다.

       

      김세연. (2026). 지방소멸 담론과 농촌 서사의 형질 변경 <리틀 포레스트>에서 <미지의 서울>로. 동악어문학. Vol.99. 105쪽.

       

       

      삶 속의 끊임없는 경쟁과 평가에 대한 피로 속에서 자연과 고향은 도시와 대조되는 공간으로 등장한다. 도시가 속도와 경쟁, 익명성과 성취의 공간이라면 자연은 느린 시간과 휴식, 감각의 회복을 가능하게 하는 공간으로 묘사된다. 고향은 오랜 기억과 관계가 축적된 장소이며, 자신을 끊임없이 증명하지 않아도 받아들여질 수 있는 곳으로 그려진다. 도시에서 개인이 자신의 쓸모와 가치를 입증해야 한다면, 고향에서는 그저 오래 알고 지낸 사람이라는 사실만으로도 관계가 시작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웰컴투 삼달리》의 삼달은 도시에서 성공적인 사진작가였으나 어시스턴트 은주의 거짓 폭로로 위기를 겪으며 고향 제주도로 돌아온다. 그곳은 상처를 회복하고 자신을 다시 이해하는 장소가 된다. 고향의 사람들은 주인공이 도시에서 획득한 지위나 성취만으로 그를 판단하지 않는다. 그들은 주인공의 오랜 과거를 알고 있으며, 그가 무엇을 하든지 그를 무조건적으로 믿는다.

       


      경태: 야, 삼달이가 갑질을 해? 지나가는 개가 웃어 너가 걜 알아? 어? (…) 걔가 어떻게 거기까지 올라갔는지, 얼마나 죽을 만큼 노력을 했는지, 걔가 얼마나 대단한 앤지. 야, 네가 아냐고
       

       

      한편 《도시남녀의 사랑법》의 은오는 자신을 둘러싼 현실과 도시의 일상으로부터 도망쳐 강원도 양양에 도착하게 된다. 양양의 끝없이 펼쳐진 바다는 도시의 일상과 대비되는 자연의 공간을 보여준다. 양양은 은오에게 일시적인 도피처가 되고, 그녀는 이곳에서 새로운 이름과 옷차림, 태도를 통해 기존의 자신과는 다른 인물로 살아간다.

       


      빈: 같이 일할 거면 그, 이름은 알아야지. 이름이 뭐야?

      은오: 이름, 꼭 말해야 돼요?

      라라: 안 해도 돼. 근데 우리가 부를 이름은 있어야 할 거 아니야.

      은오: 아...

      빈: 네 마음대로. 네가 불리고 싶은 대로 지어.

      은오: 그럼 전 윤선아로 할게요.
       

       

      이러한 서사에서 자연과 공동체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다. 그것들은 도시에서 충족되지 못한 욕망을 받아들이는 그릇이다. 느린 삶에 대한 욕망, 조건 없이 받아들여지고 싶은 욕망, 자신을 돌보고 싶은 욕망이 자연과 고향에 집중된다.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단지 장소를 바꾸는 일이 아니다. 지금까지 자신을 규정해 온 삶의 기준을 잠시 내려놓고, 다른 방식으로 살아갈 가능성을 탐색하는 일이다.

       

       

       

      이상화된 자연과 공동체의 이면


       

      그러나 자연과 고향이 치유의 공간으로 그려지는 순간, 그곳의 현실은 선택적으로 재현될 수 있다. 자연은 아름다운 풍경과 계절의 변화, 느린 삶의 리듬으로 압축되고, 공동체는 따뜻한 환대와 오래된 유대감으로 요약된다. 도시의 삶이 지닌 복잡성과 모순은 선명하게 드러나는 반면, 자연과 고향의 삶이 지닌 복잡성과 모순은 상대적으로 희미해진다. 자연은 도시의 피로를 씻어주는 풍경이 되고, 공동체는 상처 입은 개인을 감싸주는 울타리가 된다.

       

      하지만 현실의 자연은 언제나 아름답지만은 않다. 자연은 휴식과 감상의 대상인 동시에 인간이 노동하고 생계를 이어가는 구체적인 환경이다. 농촌과 어촌의 삶은 계절과 기후의 변화에 영향을 받으며, 자연을 가까이한다는 것은 때로 자연의 변덕과 위험을 감당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도시를 떠나 자연으로 향하는 일은 낭만적인 선택일 수 있지만, 그곳에서 실제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자연은 생존의 조건이자 노동의 현장이다.

       


      태풍과 폭우는 엄마와 아버지가 가꾼 논과 밭을 순식간에 침식시키기 일쑤였고, 장설은 산의 우람한 나무들을 손쉽게 뚝뚝 분질러놓았다. 순식간에 무기력해지던 인간의 힘. 자연의 의기양양 속에 흐르던 지독한 썩는 냄새. 장엄한 자연풍광 앞에서 완벽히 마음이 자유로워지지 못하고 남게 되는 두려움이 위로만 솟아오르려는 나를 끌어내린다. 자연이 내가 인간임을 일깨운다.

       

      신경숙. (1999). 외딴방. 문학동네. 57쪽.

       

       

      공동체 역시 마찬가지다. 오랜 관계와 친밀함은 개인에게 소속감과 돌봄을 제공하지만, 그 관계가 언제나 따뜻하기만 한 것은 아니며, 모든 공동체가 구성원을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아니다.

       

      오늘날 드라마 속 자연과 고향은 일종의 문화적 상상력이다. 자연과 고향은 도시와의 대비된 공간으로 설계됨으로써 현실의 구체적인 장소라기보다 도시에서 충족되지 못한 욕망이 투영된 공간이 된다. 우리가 그곳에서 발견하는 것은 자연 그 자체라기보다, 도시에서 잃어버렸다고 느끼는 삶의 가능성일 수 있다.

       

       

       

      공간을 떠나는 것에서 시간을 되돌리는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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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과 고향으로의 회귀가 현재의 삶을 다른 공간에서 다시 살아보려는 욕망을 보여준다면, 회귀물은 한 걸음 더 나아간다. 현재의 공간을 떠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듯, 아예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시간 자체를 되돌린다.

       

      웹소설의 한 장르였던 ‘회귀물’이 TV 드라마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최지운(2023)의 연구에 따르면, 회귀물의 성행은 '노력의 가치가 점점 빛을 잃어가며', '인생이 리셋되어야만 이 모든 것을 실현할 수 있다'라는 대중의 인식을 반영한다고 이야기한다.

       


      인생이 리셋되어야만 이 모든 것을 실현할 수 있다는 대중들의 씁쓸한 현실 인식을 대변한다. 회귀물이 웹소설의 주 독자인 MZ세대를 넘어 중장년층이 주 시청자층인 TV 드라마에서도 등장했다는 점은 이러한 인식이 세대를 뛰어넘고 있다는 증거이다.

       

      최지운. (2023). TV드라마 속 회귀물의 함의 연구: <어게인 마이 라이프>와 <재벌집 막내아들> 중심으로. 인문콘텐츠. 68호. 146쪽.

       

       

      《선재 업고 튀어》에서 과거로 돌아가는 행위는 소중한 사람을 구하고 싶은 마음과 지나간 관계를 다시 선택하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다. 이미 일어난 상실을 되돌리고,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사실을 바탕으로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서사의 중심에 놓인다. 《재벌집 막내아들》에서는 과거로 돌아간 주인공이 미래에 대한 지식을 이용해 자신을 둘러싼 권력관계를 바꾸고, 이전 생에서 겪었던 부당함과 실패를 뒤집으려 한다. 두 작품은 인물의 동기와 장르적 성격이 다르지만, 이미 주어진 삶을 다시 선택할 수 있다는 상상을 공유한다.

       

      회귀물에서 과거는 단순히 그리운 시절이 아니다. 현재의 결과를 알고 있는 주인공에게 과거는 미래를 수정할 수 있는 기회의 공간이다. 현실에서는 이미 지나간 선택을 되돌릴 수 없고, 과거의 실수는 현재의 조건으로 남는다. 그러나 회귀 서사는 이러한 시간의 비가역성을 일시적으로 무효화한다. 주인공은 실패를 경험한 채 과거로 돌아가며, 이전에는 몰랐던 지식과 경험을 무기로 새로운 삶을 설계한다. 과거는 더 이상 바꿀 수 없는 시간이 아니라, 현재를 다시 만들 수 있는 자원이 된다.

       

      이러한 서사는 왜 매력적인가. 잘못된 판단을 내리지 않았다면, 다른 사람을 만났다면, 그때 포기하지 않았다면, 조금 더 일찍 기회를 알아차렸다면 지금의 삶은 달라졌을 것이라는 생각은 누구나 한 번쯤 해볼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의 시간은 되돌아오지 않는다. 회귀물은 바로 이 불가능성을 가능성으로 바꾸어 보여준다.

       

      자연과 고향으로의 회귀, 그리고 과거로의 회귀는 이렇게 연결된다. 전자가 현재의 삶을 바꿀 수 있는 다른 공간을 제공한다면, 후자는 현재의 삶을 바꿀 수 있는 다른 시간을 제공한다. 하나는 공간의 이동을 통해 삶의 조건을 바꾸려 하고, 다른 하나는 시간의 이동을 통해 삶의 선택과 결과를 바꾸려 한다. 둘 다 지금의 삶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대신, 지금과 다른 삶이 가능하리라는 상상에서 출발한다.

       

       

       

      TV드라마로 현실 재인식하기



      그러나 그 위로가 깊어질수록 우리는 그 이면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자연은 실제 삶의 노동과 불편을 포함하며, 공동체는 돌봄과 함께 갈등과 규범을 품고 있다. 과거는 다시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의 공간인 동시에, 현실에서는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이다. 이러한 현실을 잊을 때 자연은 낭만적인 도피처가 되고, 회귀는 모든 문제를 개인의 선택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환상이 될 위험이 있다.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물어야 할 질문은 이것이다. 우리는 정말 다른 곳으로 떠나야만 쉴 수 있는가. 인생을 처음부터 다시 살아야만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가. 왜 우리는 지금 여기에서 회복할 수 없고, 지금 이 시간 안에서 다시 시작할 수 없다고 느끼는가 하는 질문일 것이다.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현재의 삶을 포기하고 싶다는 뜻만은 아니다. 지금과는 다른 삶을 여전히 바라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드라마는 현실에서 벗어나는 상상을 제공하지만, 동시에 현실에서 무엇이 부족한지를 드러낸다. 그 판타지를 통해 우리가 발견해야 할 것은 돌아갈 장소나 되찾을 시간이 아니라, 어쩌면 지금의 삶에서도 가능해야 할 다른 삶의 조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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