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작품의 아우라를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미술/전시]

글 입력 2022.06.24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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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예술 작품에는 ‘아우라’(aura)가 있다고 한다. 아우라는 본래 숨결, 혹은 분위기란 뜻으로, 발터 벤야민에 의해 예술이론 용어로 사용되게 되었다. 그에 의하면 아우라는 예술 작품이 지니고 있는 고유하고 미묘한 분위기로써, 진정한 아우라를 형성하는 예술 작품은 가까이 있어도 거리감을 형성하며, ‘일회적 현존재’로서의 원본성, 그리고 제의적 가치를 갖는다.

 

이외에도 많은 것들이 예술 작품의 아우라에 영향을 미친다. <거의 정보가 없는 전시>는 그러한 요소들을 최대한 제거해보고자 한 전시다.

 

 

“<거의 정보가 없는 전시>는 예술 작품을 자족적 대상으로 여기기 위해 예술 작품의 전기적, 경제적, 문화적, 사회정치적 맥락 등을 지시하는 작가명, 작품명, 제작 연도, 작가 및 작품 설명 등의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

 

- 전시 팜플렛 중

 

 


작가명


 

[포맷변환]Screenshot_2015-12-20-06-30-52-1.jpg

 

 

이 그림을 보면, 어떤 느낌이 드는가? 아마 평범하고 예쁜 초상화라는 감상이 따를 것이다.

 

이 작품은 피카소가 그의 부인이었던 올가를 그린 그림이다. 작가가 피카소라는 걸 알게 되면 그 사실 자체로 왠지 작품이 더 가치있어 보인다고 느낄지도 모른다. 또 우리는 작품에서 어떠한 “피카소스러운” 요소를 찾아보려고 하거나, 피카소와 올가와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보게 될지도 모른다.

 

 

 

작품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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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작품은 그 유명한 마르셀 뒤샹의 <샘>이다. 현대미술, 거기에서도 개념미술의 시작을 알린 이 작품은 뒤샹이 상점에서 구매한 변기에 제조업자의 이름을 딴 싸인을 적어 출품한 것이다.

 

이 작품을 예술로 만드는 것은 무엇보다 이 작품에 <변기>라는 제목이 아닌 <샘>이라는 작품을 붙였다는 것이다. 기성품의 본래의 기능을 해체하고 새로운 이름을 붙여 전혀 다른 존재로 승화시키는 것, 그것이 소변기를 예술작품으로 만든다.

   

한편, 미술관에 가면 <무제>라는 작품명이 붙은 작품을 흔히 볼 수 있다. 그러한 작품들은 우리를 당황시키기도 하지만, 작품에 나름대로의 의미를 부여하는 자율성을 가지게 한다.

 

*

 

<거의 정보가 없는 전시>에는 유일하게 작가와 작품명이 공개된 작품이 있다. 아서 단토의 사고 실험에 의한 아홉 개의 붉은 사각형이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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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에 배치된 아홉 개의 붉은 사각형들은 모두 같은 크기와 재료의 붉은 사각형이지만 각각 다른 작품명을 가지고 있다. 각각의 제목은 <홍해를 건너는 이스라엘 사람들>, <키에르케고르의 기분>, <붉은 광장>, <열반>, <붉은 식탁보>, <빨간 색의 직사각형> 등 이다. 우리는 이러한 작품명에 따라 같은 그림을 다르게 해석하고 느끼게 된다.

 

 

“..어떤 것을 예술로 본다는 것은, 눈으로 알아낼 수 없는 어떤 것- 예술 이론의 분위기와 예술사에 관한 지식- 즉 예술계를 요구한다.”

 

- 아서 단토 (1924~2013)

 

 

단토에 따르면 어떠한 대상을 예술작품으로 보게 만드는 것은 이러한 예술사에 대한 지식을 기반으로한 해석에 의한 것이다. 전시는 이러한 단토의 주장에 대한 의문 제기이자, 하나의 실험이다.

 

 

“감상자의 처지에서 대상과 그 해석의 관계를 파악하는 행위는 매우 어려운 과업이다. (중략) 전시는 단토의 그 예술계를 의심한다.”

 

“만약 그것에 제목이나 그것을 설명하는 배경과 같은 정보가 없었다면 이 붉은 사각형들의 존재는 오직 우리 감상자에 의해서만 그 존재가 결정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전시가 거의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 전시 팜플렛 중

 

 

 

공간


 

작품이 어떠한 공간에 어떻게 배치되어 있는가도 예술작품의 아우라에 큰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거의 정보가 없는 전시>는 작품을 중립적으로 배치하며 과도한 전시 디자인을 자제하였음도 언급하고 있다.

 

*

 

우리는 인터넷으로도 쉽게 작품을 볼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직접 보는 것 만이 줄 수 있는 아우라가 존재한다. 대표적인 작품이 김환기의 <우주>라고 생각한다.

 

 

[크기변환]김환기-우주(Universe)_05-IV-71_200,_1971년,_코튼에_유채,_각폭_254×127cm(2점),_개인_소장.jpg

 

 

위의 이미지가 한국 미술품에서 최고가인 132억에 낙찰된 김환기의 <우주>이다. 나도 이렇게 이미지로 밖에 본 적이 없다. 김환기 미술관에서 실물을 본 사람들은 모두 그 아우라가 남달랐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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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기 미술관의 <우주>

 

 

김환기 미술관은 1994년 김수근 건축상을 받기도 한 미술관으로, 주변의 자연과 잘 어우러져 서정과 생동감이 느껴지며 높은 천장이 그리 크지 않은 면적에도 탁트인 느낌을 주는 건물이다. 이러한 건물의 하얀 벽에 위치한 작품은 건물의 분위기에 더해 아우라를 뿜어낸다.

 

설치작품도 그것이 위치한 공간이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작품이다. 그 예로 이우환의 ‘관계’ 작품들을 들 수 있겠다. 이우환은 돌을 이용한 설치 작품으로 ‘관계’를 표현한다. 그의 작품에는 설치된 돌과 장치들뿐 아니라 주변 공간과 그 여백까지가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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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사진은 부산 시립미술관 이우환 공간에 전시된 작품이고, 두 번째는 나오시마 섬에 설치된 작품이며, 세 번째는 국립현대미술관의 개방 수장고에 위치한 작품이다.

 

미술관의 화이트 박스에 전시된 작품은 특유의 압도감과 거리감이 느껴지고, 나오시마 섬에 설치된 작품은 작품 재료의 특성에 따라 자연에 녹아들어 있다. 그리고 여러 작품을 특정 의도 없이 보관하는 역할을 하는 수장고에 위치한 작품은, 그 아우라를 느끼기 어려웠다.

 

   *

 

이렇게 예술 작품에는 많은 맥락들이 작용한다. 이러한 맥락들, 그리고 특정한 지식과 정보에 근거하여 작품을 감상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은 때로 관람객들을 예술에 다가가기 어렵게 만든다.

  

 

“예술 작품 감상 앞에서 우리는 소심해지기 쉽다. 흔히 난해하다거나 어렵다고, 가끔은 저런 건 나도 만들겠다고 이야기하는 동시대 예술 작품 앞에서는 더욱 더 그럴 것이다. 전시는 이러한 감상자와 동시대 예술의 불화를 토대로 한다.”

 

- 전시 팜플렛 중

 


<거의 정보가 없는 전시>는 감상자와 동시대 예술의 화해를 위하여, 예술 작품의 맥락을 지시하는 정보들을 과감하게 제거해버린다. 그것이 다소 과하다고 느껴질지라도,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비로소 평소에 당연하게 여겨왔던 전시에서 제공하는 정보들이 어떠한 역할을 해왔는지를 깨닫게 된다. 그리하여 우리는 처음으로 온전히 자율적으로, 예술 작품을 대상 그 자체로서  감상하는 새로운 예술적 경험을 해볼 수 있다.

 

나는 평소 작품을 바라보고 느끼고, 나름의 감상과 해석을 내리는 시간 그 자체와, 작가와 그의 예술관에 대한 정보 그리고 작품 해설을 바탕으로 작품의 의미를 알아가는 과정 둘 다를 즐긴다고 생각했지만, 이번 전시를 통해 그간 후자의 방식에 훨씬 익숙해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정보가 거의 없는 동시대의 예술작품을 그 자체로 만나는 것은 상당히 어색하기도 했고, 재밌기도 했다.

 

전시를 즐겨보는 사람이라면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고, 평소 동시대예술은 난해하다고만 생각해온 사람이라면 의미를 해석하려는 부담없이 보다 편안하게 작품을 만나볼 수 있을 것 같다.

 

 

**

<거의 정보가 없는 전시>에 전시된 작품들의 정보는

7.1일 홈페이지에 공개될 예정이다.

 

 

 

김민정 에디터.jpg

 

   

[김민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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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  
    • 예술작품을 감상하는 행위란,
      눈에 보이는 것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끄집어내어
      짧거나 긴 스토리를 엮는 그 어떤...

      미술관에 다녀온 듯 오랜만에 예술정신 충만해지는 글, 잘 보았어요~~
    • 0 0
  •  
  • osolmi
    • 김환기의 우주가 132억이라는 게 더 감동이면 저는 감상자로서 미달일까요 ㅋㅋ?
      이번에도 좋은 안내 킵 잘하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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