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선선한 목소리를 따라 가을을 걷자 [음악]

케니더킹, 재패니즈 브렉퍼스트, 로우행잉프루츠
글 입력 2022.09.28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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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시사철 계절 이야기를 거르지 않는 나는 여름 전후로는 특히 말이 많아진다. 추위에 약한 탓에 본능적으로 여름을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에게 가을과 겨울, 봄은 여름을 기다리는 계절에 불과하다. 그래서 더위가 살풋 느껴지기만 해도 이제 여름이라며 성급하게 기뻐하고, 찬 바람이 느껴지면 서운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다.


아무리 고대하던 계절이어도 여름의 시간은 다른 계절과 다르지 않은 속도로 흘러간다. 야속한 자연의 법칙에 반항이라도 하듯, 나는 초가을의 더위를 여름이라고 주장하며 꿋꿋이 민소매를 골라 입는다. 여름의 기분을 조금이라도 연장하려는 고집이다.


지난 일주일 사이에 민소매 날씨에서 순식간에 긴소매 두 겹 정도의 날씨가 되었다. 더 이상 고집을 부릴 수도 없게 성큼성큼 다가와 버린 가을이 부담스럽다. 하는 수 없이 긴 옷을 이리저리 대어보았지만, 걸치고 싶은 옷이 없었다.

 

마음에도 없는 손님을 맞이할 때가 되니 나가기가 싫어 괜히 옷 탓이나 하는 것이다.

 

 

케니더킹.jpg


 

나의 완고한 거부에도 불구하고 가을은 한동안 더 또렷하게 짙어지기만 한다.

 

여름에 누린 계절 놀이를 가을에도 즐기고 싶다. 다른 모든 계절처럼 가을 역시 아름다움은 분명하니 무언가 즐겨볼 거리가 분명 있을 거라고 확신한다. 그래서 다른 이의 가을을 기웃거리고 있다. 나에게는 가을의 마음이 내재하고 있지 않으니, 그걸 가진 이에게 가을의 기쁨을 배우고 싶다.


수개월 전, 가을에 어색하지 굴지 않는 이에게 이 글에 담긴 세 명의 아티스트를 소개받았다. 봄에 듣기에는 다소 선선하고, 여름에 듣기에는 미묘하게 후더운 목소리로 느껴져 잘 아껴두다가 가을의 초입에 꺼내 들었다.

 

가을의 이방인인 나는 이 음악들이 가을의 느낌이라고 마음대로 추측했다. 그리고 음악을 안내자 삼아 낯선 계절의 공기에 맞춰 걸어보기로 했다.

 

 

 

Lemonade – 케니더킹(kennytheking), Lemonade, 2019


 


 

Baby you, you’re like the lemon in my ginger teas, yes

You’re like the summer breeze in nicest dreams


‘Lemonade’는 아주 느슨한 곡이다. 모든 음은 느리게 낙하하는 낙엽처럼 으레 그래야 할 것 같은 자리에 하나둘 편안하게 떨어진다. 창으로 들어오는 은은한 햇살에 잠을 깨는 기분으로 부드러운 일렉기타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외로울 정도로 차가워진 공기 사이로도 여전히 햇살이 내린다. 계절에 흐름에 따라 쨍쨍 내리쬐던 해는 어느새 조각이 되었지만, ‘Lemonade’는 그 조각도 충분하다는 듯이 햇살에 잘 데워진 이불처럼 포근하게 우리를 감싼다.

 

 

 

Kokomo, IN – 재패니즈 브렉퍼스트(Japanese Breakfast), Jubilee, 2021


 

 

 

If I could throw my arms around you

For just another day

Maybe it’d fell like the first time

Now that you’re away

I’ll just spend my life not knowing

How it’d feel to


‘Kokomo, IN’의 도입부 가사이다. 이별의 마음을 담백하게 전하고는 쌓여가는 악기 사이로 슬픔을 숨긴다. 춤을 추듯 흐르는 바이올린 소리에 맞춰 자잘한 슬픔이 사라지고, 금방 다시 목이 멘다. 상실감과 찬란한 추억 사이에서 몸을 흔들다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다음 곡으로 넘어가게 된다.

 

드라마 ‘Gilmore Girls (2000-2007)’에서 이별을 다룬 에피소드가 끝날 때 나오는 음악처럼, ‘Kokomo, IN’은 조금은 외로우면서도 희망차다. 우리에게 언제나 다음 에피소드가 있을 거라는 사실을 예견하듯이.

 

 

 

우린 그저 빛을 따라 – 로우행잉프루츠(Low Hanging Fruits), Today From Past Days, 2022


 

 

 

I’m back in silence

End of night is silent

Wonder where we going


4분 46초간 반복되는 리프 위로 드문드문 단어들이 얹어져 있다. 어렵지 않은 박자로 떨어지는 단어들은 마치 밤의 도로를 지나가는 자동차들 같다.

 

그 풍경을 가만히 느끼고 있자면 마음이 편해진다. 본능을 따르는 일은 불안하고, 막연한 두려움은 자연스럽다. 그 순리에 따라 ‘우린 그저 빛을 따라’ 걸어간다. 고요함 속에서,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는 몰라도 말이다.


낯선 언어의 가사들은 이따금 불어오는 가을바람처럼 우리를 부드럽게 스친다. 밀도 있게 조이던 여름의 공기에서 벗어나 숨 쉴 자리가 많은 가을을 이제야 느끼는 기분이다.

 

선선한 목소리들을 따라 가을을 걷는 법을 천천히 터득해보려고 한다.

 

 

 

컬쳐리스트 김희진.jpg

 

 

[김희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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