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Review] 사랑했던 것들은 또 다른 사랑으로 돌아온다, 책 '계절의 이유'

기억을 놓아주는 것은 상실이 아닌 새로운 계절이 들어올 수 있도록 하는 것

by 고지희 에디터
2026.06.10 14:40

 

 

계절의 이유 책표지.jpg

 

이따금씩 ‘살아가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내가 사랑했던 것들과 이별을 하고, 내 삶도 언젠가 끝이 있다는 생각이 들면 이상한 허무감과 공허함에 사로잡히게 된다. 이럴 때면 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살아가야하는지 자꾸만 질문을 던지게 된다. 종교에서 전하는 이야기에서 답을 찾기도 하고, 먼저 살아온 인생 선배들의 이야기에 위로를 얻기도 한다. 그럼에도 나는 한낱 평범한 인간이기에 또 다시 이상하고 기묘한 삶의 유한함에 대해 자꾸만 생각하게 된다.


그러다가 만난 이고은 작가님의 <계절의 이유>. 이 책을 요약하는 추천사 중 ‘슬픔도 지나가는가. 슬픔은 그대로 있고 내가 지나가는가. 슬픔과 내가 두 손을 잡고 함께 계절을 건너가나’ 의 문구에 꽂혀 한 장 한 장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담담하면서도 섬세하게 묘사된 문장들은 나를 다독이는 느낌이었다.


 

이제는 벚꽃을 봐도 슬프지 않다. 꽃이 지고 나면 또 다시 피어날 것을 알기에, 떨어지는 꽃잎을 봐도 다시 만날 날이 기다려진다. 사랑했던 것은 사라지지 않고, 계절처럼 다시 돌아온다는 사실을 이제는 알 것 같다. 스티치의 기억이 내게 그러했던 것처럼 - p.38


여전히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은 여름이다. 비록 내게 여름은 상실의 계절이었지만, 뜨겁게 내리쬐는 햇빛은 내몸과 마음에 다시 걸어갈 수 있는, 다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가득 채워주었다. 이제 내게 여름은 생명의 계절이다. 나는 지금도 그 찬란한 햇빛 아래를 걷고 있다. - p.80

 

 

저자는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강아지 스티치와의 이별에 대한 이야기를 여러 챕터에 담아냈다. 어린 시절 부모님의 사랑으로 길러졌던 어린 날들, 힘든 순간 꺼내어 볼 수 있었던 따뜻한 추억들, 살면서 받아온 사랑을 온전히 줄 수 있었던 강아지 스티치와의 순간들. 이들과의 이별에 대한 이야기는 사랑했던 만큼 더욱 사무치게 가슴이 아프다.


아직 경험하지 않았어도 짐작할 수 있는 이별에 대한 이야기. 나도 함께 부모님과의 애정 어린 순간들과, 나의 고양이 짱이와 함께한 순간들을 떠올리며 눈시울이 붉어졌다. 생각만으로 힘겨운 이별에 대한 이야기는 저자만이 겪어야 할 경험은 아닌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시간이 좀 다르거나 외면하고 있을 뿐이다.


벚꽃을 보며 환호하는 계절 봄, 죽어가는 스티치를 안고 벚꽃을 봤던 기억은 봄을 얼마나 두렵게 만들었을까. 그 계절만 되면 상실의 감정이 생각나 봄이 오는 게 무척이나 두려웠을 것 같다. 하지만 흐르는 사계절을 보내며, 시작과 끝이 있는 생명들을 바라보며, 상실의 감정을 자연스럽게 떠나보내게 된다.


이별 앞에 무너지고 좌절해도, 우리의 삶을 꼭 빼닮은 꽃, 나무, 동물들에게서 다시 살아가야할 이유를 찾는다. 붙잡고 싶지만 떠나가는, 그럼에도 때가 되면 다시 돌아오는 자연의 순리가 유한함에 대한 이유를 설명해준다.


사랑했던 것들은 결국 다른 계절의 얼굴로 돌아오기에, 기억을 놓아주는 것은 상실이 아닌 새로운 계절이 들어올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하는 과정임을 깨닫는다.


 

공원을 걷다 알록달록한 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린 보리수 나무 앞에 멈춰 선다. 베어 물면 떫고 신맛이 나겠지. 아직 채익지 않은 초록 열매와 발갛게 익어 가는 열매들이 한데 어우러져 반짝이는 여름날의 하모니를 이루고 있다. - p.96


풍경은 아직 녹색으로 채워져 있지만, 이끼로 뒤덮인 나무들은 조금씩 단풍을 들이며 얼룩덜룩해지고 있다. 숲은 계절과 계절 사이에서 분주히 옷을 갈아입는 중이다. - p.173

 

 

화가인 저자의 문장은 풍경화를 감상하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생생한 색감에 대한 표현과 섬세한 상황 구사는 눈앞에 그림을 띄우는 것만 같다. 봄엔 알록달록한 풍경화가, 여름엔 초록빛의 시골의 모습이, 가을엔 차분한 단풍산, 겨울엔 눈으로 뒤덮인 마을이 떠오른다.


풍경을 머릿속으로 상상하다 보면 그 계절에 걸맞은 자연의 소리도 절로 들리는 듯하다. 봄엔 활기찬 사람들의 소리, 푸르른 여름엔 매미소리가 들리고, 가을엔 단풍잎 밟는 소리, 겨울엔 소복소복 조용히 눈만 쌓이는 고요함이 절로 느껴진다. 화가인 저자의 세밀한 묘사 덕에 삽화가 없어도 있는 것처럼 느껴져 매력적이었다.


덕분에 오고 가는 계절의 흐름과, 그 계절만이 선사할 수 있는 찰나의 행복을 곱씹어 본다. 무심코 지나쳤던 자연의 생동을 감각할 수 있음에 감사함을 느낀다. 또한 경시했던 작은 생명들을 잠깐이나마 멈춰 바라보는 시간을 가졌다. 죽음이 보이는 나비의 마지막 순간이 잠깐이라도 평온하길 바라며 근처 풀숲에 내려놓은 저자의 마음, 여름을 다 보내고 떠나는 가냘픈 나비에 눈시울이 붉어진 마음을 읽으며 생애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본다.


 

어느 순간 갑자기 행복은 찾아온다. 그리고 슬픔과 괴로움도 여전히 나와 함께 있다. 여러 가지 색이 모여 하나의 풍경이 되듯, 이 모든 감정이 모여 비로소 하나의 삶이 된다. 내가 찾고자 할 때 행복도, 고통도, 그곳에 있다. - p.86


꽃이 지는 이유가 다시 피기 위함이듯, 내 삶의 계절이 속절없이 흘러가는 이유 또한 더 단단한 나로 거듭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이제 나는 두려움 대신 설렘으로, 다음 계절이 내게 건넬 새로운 이유를 기다려본다. - p.207

 

 

행복이 영원하지도, 슬픔과 괴로움이 영원하지도 않다. 그렇기 때문에 행복을 무리하게 붙잡거나 슬픔을 억지로 지우려하지 않아야겠다. 여러 계절이 지나가고 반복되듯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조금씩 더 나은 사람이 되고 받은 사랑을 또 다른 사랑으로 베풀 수 있는 사람이 될 것이다.


자연이 알려준 자연스러움에 대한 이치. 만남도 이별도, 삶과 죽음도 모두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사실은 묘한 안정감을 준다. 계절에 몸을 맡기며 큰 숨을 내쉬어 본다.

 

 

고지희 에디터의 인기글

많이 읽힌 글 3편
  1. 01 [Review] 운명적 사랑에 대한 고찰, 책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2. 02 [Review] 채울수록 허기지는 행복에 대한 고찰, 우아한 사고를 위한 철학
  3. 03 [Review] 예술이 우리에게 주는 힘 - 뇌가 힘들땐 미술관에 가는게 좋다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