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흐르는 계절 속에서 찾아낸
반짝이는 삶의 조각들
"속절없이 흐르는 계절 속에서 찾아낸 삶의 온기,
그 시리도록 애틋하면서도 사려 깊은 기록."
- 정유희 [PAPER] 편집장
우리가 흘려보낸 계절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까. 설렘과 아픔의 봄, 사랑과 이별의 여름, 기쁨과 슬픔의 가을, 빛과 어둠의 겨울. 작가는 지난 계절 속에서, 차마 입 밖으로 내지 못했던 마음속 깊이 고여 있던 기억을 길어 올린다. 총 50개의 이야기에 담긴 이 사적인 계절의 기록은, 어쩌면 작가 자신만의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우리가 살아낸 시간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눈물과 웃음 그리고 상실과 만남은 우리 모두 지니고 있을 테니까. [계절의 이유]는 이제 보내 주어야 할 때가 된, 켜켜이 먼지가 쌓인 지난 시절의 자신을 물결에 흘려보내야 하는 이유를 우리 마음의 수면 위로 조심스럽게 꺼내어 본다.
어제의 잔상은 과거에 머물러 있는 것일까, 아니면 현재 진행형일까. 지금을 살며 과거를 떠올릴 때면 어제의 나와 만나는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런 내가 애틋해, 지난 흔적을 잔뜩 떠안고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추억이라 하기에는 너무나 가혹한 슬픔이나 돌이킬 수 없는 후회가 점점 나를 물속으로 가라앉게 만든다는 사실조차도 모른 채. 언젠가 삶이라는 배가 이 무게를 견딜 수가 없어지면 어떻게 될까. 그때는 버릴 수 있을까. 한 방울씩 고여, 이제는 퍼낼 수도 없을 만큼 깊어진 눈물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를 물속으로 가라앉히고 있는지도 모른다. 삶이라는 배가 침몰하지 않으려면 그 무게를 내려놓아야 할 때가 있다. 어제의 나를 향해 잘 가라고 손을 흔들며, 저 멀리 물결에 실어 보내야 한다.
작가는 이 책을 통해 지난 시절에 작별 인사를 전하며, 과거가 현재, 그리고 미래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발견한다. 반복되는 계절은 단지 시간의 흐름만이 아니었다. 기억을 놓아 준다는 것은 단순히 무언가를 버리는 행위가 아니라, 새로운 계절이 들어올 자리를 마련하는 준비 과정이었다. 그렇게 맞이한 내일을, 그 평범한 일상을 묵묵히 살아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어디선가 따뜻한 바람이 불어오는 것을 느낄 수 있게 된다. 그 바람은 작은 진동으로, 얇은 물길을 튼다. 그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정성을 다하는 마음. 그것이 전부이다. 애써 지운 슬픔은 어느 날 문득 되살아나 짓누르기도 하고, 겨우 간직해 온 행복은 오히려 그 부재를 일깨워 더 공허하게 만들기도 하기에. 지난 계절에 연연해하지 않고, 오지 않은 계절에 불안해하지 않는 것.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내면, 지금의 우리를 휘청이게 만드는 물살이 아무리 거세더라도 그것은 우리를 눈물짓게 하려는 것이 아님을, 현재를 버티고 서서 내일을 맞이할 준비가 된 굳건한 자신을 발견하게 하기 위함임을 깨닫게 된다.
눈을 뜨면 지난밤의 꿈이 기억나지 않는 것도 이유가 있지 않을까. 이 생의 원리를 전부 알 수는 없지만, 어제의 무거운 기억도 모두 쫓으려고 애쓸 필요는 없을 것이다. 때로는 자연스레 잊히도록, 멀어지도록, 사라지도록, 떠나보낼 수 있어야 한다. 물결에 실어 떠나보내고 남은 자리에는, 컴컴했던 구름 위로 고개를 내민 태양이 건네는 인사와 함께 반짝이는 빛이 채워진다. 눈물로 빚어낸 기쁨은 얼마나 눈부신가. 어쩌면 우리의 삶은 시간이 가는 대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지키고 선 한 존재로서 묵묵히 그 시간을 받아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다시 스스로에게 질문해 본다. 우리에게 계절은 어떤 의미일까. 밤이 지나면 아침이 오듯이, 꽃이 지고 다시 피어나듯이, 지나간 시간에 대한 미련을 떠나보내는 작별 인사이며, 더 아름다운 하루와 꽃을 피워 내는 나에게 건네는 환영의 인사이다. 흐르는 계절을 온전히 바라보는 마음을 담은 [계절의 이유]를 통해 독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곁을 스치고 지나갔을지도 모를, 저마다의 계절의 이유를 발견하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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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고은
화가, 작가, 그리고 산책가. 홍익대학교에서 애니메이션을 전공하고 아티스트 그룹 DNDD를 설립했다. 전시, 디자인, 출판 등 시각 예술의 경계를 넘나들며 폭넓은 활동을 이어 오고 있다. 서울미술관 [3650 storage – 인터뷰] 등의 전시에 참여하며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구축해 왔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보이지 않는 것들], [삶은 여전히 빛난다] 외 여러 도서의 표지 및 삽화 작업으로 다채로운 이미지를 선보였고, 뮤지션 루싸이트 토끼의 프로젝트 앨범 [리듬], 작곡가 수린의 EP 앨범 [Wave] 아트워크 등 국내외 예술가들과의 폭넓은 협업을 통해 섬세한 시각적 언어를 확장해 왔다. 이제는 그 시선을 조금 더 내면으로 옮겨, 일상에서 발견한 삶의 반짝이는 빛들을 글과 그림으로 기록하는 일에 매진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혼자서 거닐다 마주친 작고 소중한 것들이 건네는 위로를 담은 에세이 [산책가의 노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