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에 남는 몸의 자취
인간은 죽지만 모든 것이 함께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우리의 기억 속에 남는다.
예를 들어, 광화문 광장의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을 떠올려 보자. 우리는 그들을 직접 만난 적은 없지만 동상과 초상화, 기록과 이야기들을 통해 그들의 존재를 기억한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것들이 모두 한때 존재했던 몸의 흔적이라는 점이다. 몸은 사라지지만, 몸이 남긴 자취는 다양한 형태로 남아 시간을 건너 전달된다. 누군가의 얼굴을 본뜬 조각상, 손으로 쓴 기록, 오랫동안 사용한 물건에는 그 사람의 삶과 육체의 흔적이 스며 있다.
우리는 이러한 흔적을 통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타인의 몸을 상상할 수 있고, 시공간을 넘어 소통할 수 있다. 어쩌면 인간은 몸의 흔적을 통해 계속 살아가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크리스티앙 볼탕스키와 주인 잃은 옷
2022년 부산시립미술관에서 크리스티앙 볼탕스키의 회고전에서 처음 마주했던 <저장소: 카나다>가 떠오른다.
전시장 벽면에는 수많은 중고 의류가 걸려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오래된 천 냄새가 났고, 옷마다 다른 색과 무늬, 마모의 흔적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옷들을 하나씩 살펴보며 그 주인들의 나이와 취향, 삶의 모습을 상상했다. 마치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초상화를 바라보는 것 같았다.
볼탕스키는 홀로코스트와 죽음, 기억의 문제를 지속적으로 탐구하려 했다. 작품 제목인 ‘카나다(Kanada)’는 유대인의 개인 소지품을 모아둔 창고에 나치가 붙인 이름이었다.
한편, 부산 전시에 사용된 옷들은 실제 홀로코스트 희생자들의 유품이 아니라 한국에서 수집된 중고 의류였다. 그러나 작품이 전달하는 감정은 여전히 유효하다. 우리는 그 옷들을 통해 우리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이름 모를 사람들을 떠올리고, 언젠가 사라질 인간의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옷은 몸과 가장 가까운 사물이다. 오랜 시간 입은 옷은 체형에 따라 변형되고, 체취가 스며들며, 일상의 습관에 의해 닳거나 찢어진다. 옷에는 그 사람의 시간이 켜켜이 축적된다. 옷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몸의 흔적이라고 할 수 있다.
볼탕스키는 이러한 흔적을 통해 부재한 사람들을 현재로 불러온다. 전시장에 걸린 옷들은 침묵하고 있지만, 그 안에는 수많은 삶의 이야기가 숨어 있다. 관객은 옷을 바라보고, 냄새를 맡고, 그 존재를 상상하면서 보이지 않는 타인과 만나게 된다.
결국 볼탕스키의 작업은 몸이 사라진 이후에도 흔적은 남아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게 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강승과 게발선인장 '하비'
몸의 흔적은 때로는 살아 있는 생명체를 통해 이어지기도 한다. 2026년 6월까지 아트선재센터에서 진행되었던 《스펙트로신테시스 서울》에서, 나는 예상치 못한 존재를 만났다. 바로 선인장 ‘하비’였다.
‘하비’는 1977년 샌프란시스코 시의원에 당선된 미국 최초의 동성애자 정치인 하비 밀크(1930~1978)가 생전에 키우던 식물의 일부다. 1978년 그가 암살된 후, 그의 전 애인이자 룸메이트였던 스콧 스미스는 선인장의 줄기를 잘라 주변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이는 단순한 식물 번식이 아니라 하비 밀크의 기억과 정신을 이어가기 위한 행위였다.
작가 이강승은 2019년 이 선인장의 일부를 건네받아 다시 키우기 시작했고, 이를 퀴어 커뮤니티 구성원들과 나누었다. 전시에서는 실제 선인장과 관련 드로잉을 함께 선보이며 기억이 전승되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볼탕스키의 옷이 부재한 몸의 흔적을 떠올리게 한다면, 하비는 지금도 살아서 자라고 있는 흔적이다. 식물은 하비 밀크의 신체 일부는 아니지만, 그가 오랜 시간 돌보고 함께했던 존재로서 그의 삶을 현재까지 이어준다.
전시장에서 선인장을 바라보며 나는 이미 세상을 떠난 하비 밀크가 여전히 우리 곁에 존재하는 것 같은 감각을 느꼈다. 흔적은 사람에서 사람으로 전달되며 새로운 관계를 만들고 공동체를 형성한다.
볼탕스키는 남겨진 옷을 통해 부재한 타인을 현재로 불러오고, 이강승은 선인장을 몸으로 삼아 세대를 넘어 이어지는 기억과 연대를 보여준다. 타인의 몸을 느끼고, 타인의 흔적을 마주하며, 그 삶을 상상하게 만드는 것. 나는 이것이 미술이 수행해야 할 중요한 역할 가운데 하나이며, 인간과 인간 사이의 깊은 연대를 가능하게 하는 힘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