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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에디터로서의 마지막 글을 마주한다. 그렇다고 이 글이 정말 끝은 아니다. 끝은 또 다른 시작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동안 쓴 글들을 되돌아보니, 마음에 드는 글도 있고 아쉬움이 남는 글도 있다. 그러나 개인적인 만족과는 별개로, 꼭 써야만 했던 글이 있었다. 아직 그 글을 쓰지 못했다는 사실이 마음에 남아 있었다. 이제 그 ‘써야만 했던 글’을 써보려 한다.

 

아주 어렸을 적이다. 기억이 희미하게만 남아있는 어린 시절. 내가 떠올릴 수 있는 가장 이른 기억은 어린이집을 다니던 때다. 어린이집을 갈 수 있는 나이가.... 네 살? 그래, 그렇다면 그 무렵쯤이었을 것이다. 첫 만남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내가 인지할 수 있었던 첫 번째 기억은 그 집에서 만화책을 보던 순간이다. 그 정도로 어릴 때부터 나는 이모와 함께 지내기 시작했다. 이모. 그렇게 부르기로 했다. 피는 섞여있지 않지만, 아무튼 그랬다.

 

어린이집을 다녀오면 늘 이모의 집으로 향했다. 점심과 저녁을 함께 먹었고, 엄마는 퇴근 후 저녁에 나를 데리러 왔다. 데리러 오지 않는 날은 이모네에서 자곤 했다. 그럴 때마다 엄마가 보고 싶다며 펑펑 울었지만, 이모는 한 번도 화를 낸 적이 없었다. 이모네에는 아저씨, 언니 두 명과 오빠 한 명이 있었다. 외부인이었던 나를 이모의 가족은 막내 식구처럼 챙겨줬다.

 

대부분의 시간은 둘이서 보냈다. 유치원을 다닐 때까지는 함께 만화책을 보거나, 이야기하고, 각자 좋아하는 티비 프로그램을 번갈아가면서 보았다. 나는 혼자 글을 쓰거나 시를 쓰기도 했는데, 이모는 항상 그것들을 모아 엄마에게 전해줬다. 유빈이는 무엇이든 잘 할 아이라는 말과 함께.

 

재미있게도 내가 이모에게 가장 크게 해 본 부탁은 계란후라이를 해 달라는 것이었다. 단순해보이지만, 한참을 망설이다 겨우 꺼낸 말이었다. 그 이유는 이모가 무서워서가 아니라, 소심하고 눈치를 많이 보는 성격 탓이었다. 비싼 장난감도 아니고, 거창한 것도 아닌데 그 한마디가 왜 그렇게 어려웠을까. 그걸 안 이모는 원하는 것이 있으면 다 해 주겠다며, 당당하게 말하라고 그랬다.

 

나른한 오후, 키즈 채널에서 하던 애니메이션을 함께 보며 이모에게 '안녕 자두야에서 누가 좋아?'라고 물었던 적이 있다. 이모는 자두가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이유를 물어보니 똑부러지는 행동이 마음에 들고, 이를 닮아 내가 '안녕 자두야'의 자두처럼 강하게 컸으면 좋겠다고, 그런 말을 해 주었던 기억이 난다.

 

초등학교 진학 후에는 이모가 우리 집으로 와서 지내기 시작했다. 열한 살이 되던 해에 스마트폰이 생겼고, 자극적인 화면 속 세계에 빠졌다. 매번 나누던 대화, 티비를 보면서 하던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은 그 이후로 완전히 사라졌다. 이모는 늘 같은 자리에 앉아있었지만 나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오로지 나 때문에 대화가 줄어들었다. 열한 살의 나로 돌아간다면, 손에 있는 멍청한 기기를 던져버리고만 싶다.

 

열세 살이 되던 해까지 그랬다. 중학교 진학을 앞두고, 자연스레 이모와 이별할 순간이 찾아왔다는 것을 알았다. 슬펐던 점은, 스스로 '난 충분히 컸고, 이젠 이모와 지내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는 것이었다. 이별은 슬펐지만 홀로서기에는 기대를 품고 있었다. 그렇게 십 년을 함께한 이모와 나의 이별은 하루만에 끝났다. 내 유년시절을 부모님보다 오래 봐오고, 함께 지내던 이와의 마지막은 한 순간에 정리되었다.

 

그 날은 울었다. 다시는 볼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나중에 연락한다고 말했지만 중학교 입학 준비로 바쁘다는 핑계였을까, 엄마와 난 연락하지 않았다. 그때 이후로 이모와 연락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텀이 길어질수록 무슨 염치로, 어떤 문자를, 이어서는 '왜'까지 나오며 회피했다. 왜 이제야 연락하느냐는 질문이 두려워 자꾸만 미뤘다. 그렇게 미루는 사이, 십 년이 흘렀다. 이제는 정말, 이어질 수 있는 방법이 사라졌다. 혹은 방법이 사라졌기에 이제야 써내려갈 수 있게 된 걸까.


결국에 목소리도, 얼굴도 이제 희미해졌다.

감정은 바래지 않았지만, 안부만 묻고 싶을 뿐이다.

혹은 조금은 욕심을 부려서, 내가 살아왔던 이야기를 전해주고 싶기도 하다.

 

이모라면 궁금해 할 것만 같아서.

 

 

 

에디터 명함 길유빈.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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