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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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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전개와 장면에 대한 언급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느덧 10월이다. 누구나 한 해가 마무리될 때, 올해 본 영화 중에 어떤 것이 가장 좋았는지 순위를 매겨보곤 할 것이다. 그렇다면 나의 1위는 이미 정해진 듯하다. 바로 10월 1일 개봉한 폴 토마스 앤더스(PTA) 감독의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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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현재 미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와 이에 대한 비판을 다룬다. 설정은 굉장히 정치적이지만, 이를 표현하는 방식은 정말 유려하다. 비록 나의 영화 지식이 완전하지는 않지만, 그동안 봐왔던 영화와 비교해 보았을 때 사용하는 컷, 장면 전환, 시퀀스의 구성까지 정말 질이 높은 작품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총 2시간 30분의 러닝타임 중 초반부는 과거 서사를 설명하는 데 할애된다. 팻(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과 퍼피디아(테야나 테일러)는 혁명 조직 French 75에 몸담아 이민자들의 편에 서서 싸우며, 사랑과 혁명에 도취된 젊은 날을 보낸다. 두 사람 사이에는 윌라(체이스 인피티니)라는 딸도 태어난다. 그러나 한곳에 얽매인 삶을 거부한 퍼피디아는 결국 떠나 반항적인 삶을 이어가다 체포되고, French 75와 관련된 자백을 하고 만다.

 

한편 백인 우월주의 조직에 가담하려는 스티븐 록조(숀 펜)는, 과거 퍼피디아와의 관계 때문에 발목이 잡힐 위기에 처한다. 그는 윌라의 존재를 위협으로 여기고 제거하려는 작전을 펼치고, 팻은 딸을 지키기 위해 다시 싸움에 뛰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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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부분의 서사 구조에서 백인 중심주의 기득권층과 이민자 계층 반란군의 대립 구도를 드러냈다면, 중반부 이후부터는 본격적인 추격이 시작된다.

 

여기부터, 본격적으로 이 영화의 매력이 펼쳐진다. 한 명의 관객으로서 느낀 바를 그대로 표현해 보자면, 감독이 짜놓은 긴장의 흐름에 속절없이 휘말린 기분이었다.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를 정도로, 조였다 풀었다 하는 영화의 리듬에 몰입해서 보게 되었다.

 

이 작품의 백미는 자동차 추격 신이다. 윌라와 백인 우월주의 조직 멤버, 그리고 팻의 삼중 추격으로 이어지는 장면은 언덕이 가득한 도로에서 진행된다. 구불구불한 언덕 때문에 뒤에 차량이 보였다 안 보였다 하는 공간적 긴장감이 기본적으로 깔려 있고, 여기에 초조한 윌라의 눈을 번갈아 비추며 불안감을 한층 더 쌓아 올린다.

 

이때 윌라가 언덕 구조를 이용하는 기지를 발휘해 시퀀스를 끝낼 때까지의 숨 막힘은, 보면서 감탄이 나올 정도로 엄청난 것이었다. 영화관에서 보기를 추천하는 이유도 바로 이 장면 때문이다.

 

이후 팻과 윌라가 마침내 재회하는 장면에서는, 200m 내에 있으면 음악이 재생되는 ‘Trust device’ 의 효과가 톡톡히 드러난다. 사실 처음에 그 장치가 등장했을 때는 굳이 싶기도 했지만, 결정적인 순간 기계에서 흘러나오는 선율은 심장을 두근거리게 했다. 또한 그 선율은 묘하게 불안하다.

 

갑작스럽게 음악이 들리는 순간까지는 여전히 마음을 놓을 수 없다가, 마침내 인물들이 서로를 확인한 후 극적 안도로 이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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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장감을 조성할 때 크게 기여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음악이다. 이 영화에 깊게 몰입할 수 있었던 것은 Jonny Greenwood의 음악 덕분이었다. 라디오헤드를 좋아하는 나는 그의 이름을 보자마자 ‘역시’라고 생각했다. 그는 라디오헤드의 기타리스트로, 최근에는 영화 음악 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보이고 있다.


라디오헤드 음악의 특징 중 하나는 리듬을 단순하게 쓰지 않는 것인데, OST 중 ‘Baby Charlene’ 역시 4+4.5박 단위로 전개된다. 규칙적인 4박 뒤에 반 박자가 덧붙어서, 엇갈리는 느낌이 불안감 고조에 효과적이다. ‘Mean Alley’에서는 반음을 올릴 때 기타의 튠이 어긋난 듯 들려, 어두운 느낌을 조성한다. 그 밖에도 피아노와 관현악기, 퍼커션을 활용해 다채롭고 의미심장한 사운드가 펼쳐진다.

 

Greenwood의 음악은 각자의 이상을 위해 서로를 쫓고 쫓는 여정 속 서스펜스를 극도로 끌어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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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 Battle After Another'라는 제목은 ‘연이어 벌어지는 전투’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엔딩 시퀀스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전투는 퍼피디아에서 윌라로 대를 이어온, 미국 사회에 대한 투쟁이다. 현재 미국의 문제를 명료하게 담아내는 이 영화는 조롱과 과장을 섞은 블랙코미디이지만, 동시에 긴장감 넘치는 액션과 영화적 리듬감으로 예술성 또한 성취했다.


정치적 내용을 이토록 세련된 방식을 통해 빚어내다니, 감독의 공력에 감탄하게 되는 작품이었다. 물론 작품이 전제한 미국 사회의 맥락을 전부 따라가진 못했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시각적, 청각적 욕망을 충족시키는 2시간 30분이었다.

 

다양한 관객을 모두 사로잡을 수 있는 영화라고 판단되기에, 꼭 스크린관에서 감상하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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