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히 다른 성격인 남매 데이비드와 제니퍼는 어느 날 TV 채널을 두고 싸우게 된다. 리모컨을 두고 티격태격하던 둘은 리모컨을 고장 내고 어쩔 줄 몰라 하던 때 부르지도 않았던 수리공 할아버지가 문 앞에 찾아온다. 수리공 할아버지는 데이비드에게 흑백 시트콤 <플레전트 빌>에 관한 퀴즈를 내고 광팬이었던 데이비드는 막힘없이 맞춘다. 그런 데이비드를 본 수리공은 원래 리모컨이 아닌 기계처럼 생긴 리모컨을 둘에게 건넨다. 새 리모컨으로 채널을 돌리는 순간 데이비드와 제니퍼는 <플레전트 빌> 세계관 속으로 들어가 버드와 메리 수가 된다.
데이비드가 좋아하던 <플레전트 빌> 속 세상은 이상할 정도로 평화롭고 이상적이다. 아침이면 가족이 다 같이 식사를 하고, 학교에서는 농구부가 매번 골을 넣고, 소방관들은 불을 끌 일이 없어서 나무 위에 올라간 올라간 고양이를 구한다. 날씨는 항상 맑고 따뜻하며 마을 밖의 세상은 존재하지도, <플레전트 빌> 주민들은 궁금해하지도 않는다.
현실의 데이비드는 친구도 별로 없고 학교생활도 즐겁지 않은데, <플레전트 빌> 속에서는 자신이 모든 걸 알고 있다. 누가 어떤 말을 할지,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전부 알고 있는 데이비드는 이곳에 더 빨리 적응하고 행복해한다. 반대로 이 세계관으로 떨어지기 직전까지도 썸남과 데이트를 앞두고 있었는데 갑자기 남녀가 손만 잡고 있어야 하는 곳에 온 제니퍼는 <플레전트 빌>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
제니퍼는 그런 <플레전트 빌>의 규칙을 하나씩 깨기 시작한다. 학교에서 선생님에게 <플레전트 빌>의 바깥에는 무엇이 있냐 물어보고, 메리 수에게 고백을 하고 이어지는 역할인 농구부 주장 스킵에게 섹스를 가르쳐 준다. 처음으로 짜인 설정이 아닌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 스킵은 흑백 세상에서 빨간 장미를 보게 된다.
자신이 뭘 하고 싶은지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호기심을 갖고, 무언가를 느끼기 시작하면서 꽃이나 자동차 같은 사물부터 몸에도 색이 생긴다. 마을 사람들이 하나둘씩 색을 갖게 되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베티가 변하는 과정이 기억에 남았다. 항상 남편과 자식들을 위해 정해진 '엄마' 역할을 수행하던 베티는 새로운 감정을 알게 되고,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생각하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남편에게 들킬까 봐 색이 사라지기를 바라지만 결국에는 자신에게 생긴 변화를 받아들이고 자신의 욕망과 빌을 향한 감정에 솔직해지기로 한다.
데이비드가 일하고 있는 햄버거 가게 주인 빌은 매일 정확히 정해진 시간에 패티를 굽고 양상추를 올리며 햄버거를 만드는 루틴 속에 살아간다. 빌은 다른 메뉴 주문이 들어오면 불안해하고, 데이비드는 그런 빌에게 정해진 메뉴만 만드는 규칙을 깨뜨리고 주도적으로 일하는 법을 가르쳐 준다. 빌은 주방에서 벗어나 원래 데이비드가 해야 할 일을 하며 주체성과 예술적 감정에 눈을 뜬다. 빌은 이런 감정을 깨닫는데 도움을 준 데이비드에게 자신이 오늘 어떤 일을 했는지 말해주려고 그의 집에 찾아가고 베티와 사랑에 빠지고 역시나 색을 가지게 된다.
색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에게 생긴 색을 보며 신기해하고 행복해한다. 하지만 여전히 흑백인 사람들은 색을 가진 사람들을 <플레전트 빌>의 평화를 깨는 요소라 보고 책을 읽는 것, 음악을 듣는 것, 그림 그리는 것을 통제하려고 한다. 이런 규칙을 만들고 결국 색을 가진 사람들을 차별하기까지 한다. 처음에는 자신이 좋아하는 드라마가 망가지는 걸 막으려고 했던 데이비드도 더 이상 <플레전트 빌>이 자신이 알던 곳이 아님을 깨닫고 <플레전트 빌>을 바꾸는 쪽에 서게 된다.
현실에서 공부와는 거리가 멀었던 제니퍼는 이곳에서 공부에 대한 재미를 느끼고 색을 갖게 된다. 반면 여자친구도 생겼지만 여전히 흑백인 데이비드는 색을 가지지 못한 것에 내심 고민을 한다. 베티가 빌과의 관계, 엄마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람들의 비난을 받게 됐을 때 데이비드가 그녀를 보호하면서 색을 갖게 된다. 현실의 틀에서 벗어나 이제껏 하지 않았던 행동을 함으로써 색을 갖게 된 것이다.
<플레전트 빌> 세계관을 생각해 보면 현실도 비슷한 것 같다. 아무것도 모르고 살 때는 오히려 편할 때가 있다. 굳이 새로운 것을 찾아보지 않으면 실망할 일도 없고 하고 싶은 게 없으면 실패할 일도 없다. 그냥 남들이 정해놓은 대로 살면 적어도 크게 틀릴 일은 없으니까. 하지만 계속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 잘하는 게 뭔지 알아가는 과정 속에서 완벽하지 않아도 조금씩 나만의 색을 찾아갈 수 있게 된다.
색을 가진 사람들을 마땅치 않게 보던 흑백의 사람들도 결국 색을 가지게 되면서 <플레전트 빌>은 색으로 가득한 화사한 세상이 된다. 현실로 하루빨리 돌아가고 싶어 했던 제니퍼는 남아서 더 공부하고 싶다며 그곳에서 대학을 가기로 선택한다. 계속 머무르고 싶어 했던 데이비드는 오히려 현실로 돌아가는 것을 택한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다양한 경험을 하고 그 경험으로 계속 가치관이 변한다는 걸 많이 느끼는 요즘에 이런 영화를 보게 돼 더 곱씹어 보게 됐다. 인생에 대한 고민이 있거나 지쳤을 때 어쩌면 이 영화가 생각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