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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팬데믹을 지나 다시 도착한 재난극 - 인간동물들 [공연]

두려움 앞에서 우리는 한낱 '인간동물'일 뿐이다

by 채수빈 에디터
2026.09.02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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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난이 닥쳤을 때 우리는 무엇을 믿어야 할까. 정부의 발표일까, 전문가의 판단일까, 아니면 내가 직접 보고 느낀 본능적인 감각일까. 그리고 누군가 나의 안전을 위해 행동을 제한하겠다고 한다면, 나는 어디까지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사회적 합의는 어디까지 유효할까?


      연극 〈인간동물들(Human Animals)〉을 마주하는 순간, 오늘날의 관객은 자연스레 지난 팬데믹의 기억을 소환하게 될 것이다. 다만 놀라운 건 이 작품은 코로나19 이후에 쓰인 반추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2016년 영국 로열 코트 극장에서 초연된 이 작품은 전 세계가 바이러스의 공포에 갇히기 수년 전 이미 무대 위에 올려졌다. 그럼에도 무대 위에 펼쳐지는 디스토피아적 풍경이 서늘할 만큼 기시감을 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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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의 배경인 런던 도심에는 알 수 없는 이상 징후가 번져간다. 도심 속 야생동물들이 기이한 행동을 보인다. 비둘기들이 창문을 향해 달려들고, 여우들이 집 주변에 출몰한다. 사소한 이변으로 치부되던 사건들이 삽시간에 도시 전체를 마비시키며 결국 ‘재난’이 되고 만다.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정부가 투입되고 시민들의 행동은 제한된다. 사람들은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지 못한 채 쏟아지는 정보와 규칙에 적응해야 한다. 평범했던 외출과 접촉은 순식간에 ‘위험 행위’로 규정된다. 어제까지 허용되던 일이 오늘부터 금지된다.


      사람들은 전문가와 정부의 발표에 기대면서도 끝없는 의심을 거두지 못한다. 모두가 처음 맞닥뜨린 미지의 재난 앞에서 그 누구도 완벽한 해답을 쥐고 있지 못하다. 인물별로 대처 방법은 다르지만, 인간이 절박하게 생존을 향하는 동물이라는 결론에 수렴한다는 점에서 같다.


      물론 팬데믹 시기의 방역 조치와 극 중 정부의 극단적 통제를 기계적으로 동일시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당시 개인이 체감했던 사회적 압박과 실존적 불안은 극 중에서 보이는 것과 너무도 닮아 있다. 충분히 이해하거나 납득할 시간도 없이, 우리는 새로운 규칙을 수용해야 했고 타인의 시선과 규율에 내 몸의 결정을 내맡겨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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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동물들〉에서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동물들의 이상 행동보다도 자신과 다른 인간을 볼 때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인간과 동물의 경계에 '이성'과 '문명'이라는 견고한 울타리를 쳐왔다. 동물은 맹목적인 본능에 따르고, 인간은 합리적이고 윤리적인 사고를 통해 행동한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실존적 위기가 닥쳐오는 순간, 그 견고했던 경계는 맥없이 무너져 내린다. 공포와 불안이라는 원초적 감정 앞에서 인간은 낯선 자를 배척하고, 무리를 지어 결속하며,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공격성을 드러낸다.


      다만 나는 〈인간동물들〉의 이러한 주제의식이 어려웠다. 난해한 현대미술을 보는 것처럼 명확히 봉합되지 않는 장면들을 보며 끊임없이 생각해야 했다. 그 사이 연극의 장면들은 쉼 없이 나를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모든 예술이 관객을 즉각적인 위로와 감동으로 설득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작품은 불편한 질문을 남기는 것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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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에 처음 〈인간동물들〉을 본 관객에게는 이 작품이 디스토피아적 우화에 불과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팬데믹을 거쳐 이상 기후 등 자연적 문제를 계속해서 맞닥뜨리고 있는 지금의 관객에게 이 공연은 더 이상 허구로만 읽히지 않는다. 우리는 세계적인 재난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쉽게 불안해지는지, 개인의 자유와 공동체의 안전이 얼마나 복잡하게 충돌하는지, 그리고 확실한 답을 가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연극 〈인간동물들〉은 우리가 믿어온 인간성의 실체가 무엇인지 여전히 집요하게 묻고 있다. 우리는 재난 앞에서 한없이 무력했고, 불안을 이기기 위해 만든 규칙으로 서로를 의심하며 분열했다. 두려움 앞에서 우리는 대단한 문명의 주인이 아닌, 그저 살아남고자 애쓰는 또 하나의 동물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그 혼란 속에서 누군가를 사랑하고 지켜내려 했던 것 역시 인간이다. 가장 이기적인 생존 본능과 가장 이타적인 사랑이 뒤엉키는 모순된 경계 위에 위태롭게 서 있는 존재야말로, 연극이 우리에게 비춰 보인 진짜 '인간동물'의 모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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