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은 인간이 만들어낼 수 있는 것 중 가장 절제되고 객관적인 기록일지 모른다. 그러나 좋은 사진은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명암이 만들어내는 깊이 속에서, 평면이던 피사체는 어느새 만져질 듯한 얼굴로 되살아난다. 일본 포토저널리즘의 거장인 구와바라 시세이의 반세기 넘어 60년간 이어진 작업이 바로 그 증거다.
그래서 우리는 사진을, 그리고 사진가 구와바라 시세이의 사진들을 관찰해야 한다. 그는 자신의 배경인 일본이라는 국적에 개의치 않고 각 지역을 돌며 일본의 구석진 곳, 한국의 구석진 곳, 그리고 전쟁의 참상까지 카메라에 담아냈다. 고희영 감독의 포토멘터리 영화 <사진의 얼굴>은 한 사람이 평생에 걸쳐 남긴 사진의 생김새와 묵묵한 열정을 따라가는 작품이다.

영화는 구와바라 시세이의 작은 방 전경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수많은 책에 둘러싸인 채 성인 남자가 겨우 몸을 뉘일 수 있는 곳에서 그는 자신만의 세계를 응축하고 있었다. 그에게 집은 잠시 쉴 곳일 뿐, 취재 자료를 보관하는 장소와 다르지 않았다. 그가 촬영 외에 머무르는 곳은 좁은 집과 좁은 현상소뿐이다. 1936년생으로 올해 90세에 도달한 그는 움직이기도 힘들고 어린 시절의 사고로 오른쪽 눈이 실명된 상태다. 그럼에도 농업대학을 졸업한 후 사진으로 전향해 사다리 위에서도 거침없이 몸을 맡기던 그의 열정은 식지 않았다. 그는 거창한 사명감을 과시하기보다, 차가운 현장 위로 묵묵히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딛는 사람이었다.
일본의 이면을 기록하다
그가 처음 취재하게 된 현장은 1962년 미나마타병 사건이었다. 당시 도쿄 올림픽의 화려함 속에서 사회적으로 상대적으로 쉬쉬되고 등한시되던 이 비극은, 1956년 구마모토현 미나마타시에서 메틸수은에 오염된 어패류를 장기간 섭취함으로 인해 발생한 집단 수은 중독 참사였다. 공식 집계된 희생자만 2,265명(1,784명 사망)에 달했던 이 현장에서, 구와바라는 참상을 적나라하게 폭로하기보다 피해자들 곁으로 들어가 그들과 함께 생활하고 가깝게 지내며 그들의 안부를 물었다.
수은에 중독되어 말 한마디 못한 채 누워 지내다 2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마쓰나가 구미코의 사진이 그의 시선을 대표적으로 보여준다. '살아있는 인형'이라 불린 그녀의 평범하면서도 예쁜 모습에 초점을 맞춘 그의 사진은, 누워있을 수밖에 없는 현실에 비해 아름다운 그녀의 눈동자를 통해 미나마타가 품은 안타까움을 더 깊게 느끼게 한다. 이 사진을 포함한 첫 전시회(1962년 도쿄 후지필름 사진전)와 첫 사진집 『미나마타병』(1965)으로 그는 일본 사진비평가협회 신인상을 거머쥐었으며, 이후로도 매년 미나마타를 찾아 위령제에 참여하고 유족들을 챙겼다.
한국의 정면과 마주하다
그런 그가 1964년 한국으로 시선을 돌린 것은 1960년대 한국이 지닌 역동적인 시대상 때문이었다. 당시는 첫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청년들과 시민들이 두려움 없이 거리로 나와 사회운동의 행렬을 이루던 때였고, 구와바라는 프레임 속 한 명 한 명의 얼굴에 서린 시대의 숨결을 포착해 냈다. 잔잔히 흐르는 노래 <상록수>는 어쩌면 구와바라 시세이의 삶 그 자체와 참 많이 닮아 있다. 비바람이 불어도 제자리를 지키며 푸르름을 잃지 않는 상록수처럼, 그는 시련을 견디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얼굴을 담아내고 그 자신이 곧 상록수처럼 묵묵히 카메라를 들었다.

그러나 한국은 그에게 호의적이지만은 않았다. 한국은 민주화의 열기와 함께 청계천 주변으로 판자촌 행렬이 가득했던 개발도상국의 부끄럽고 노후화된 풍경이 공존하던 때였다. 당시 우리보다 문명이 발전했던 일본인의 시선이었기에, 한국인들은 그에게 "쪽바리", "개XX"라고 부르거나 "이런 노후화된 한국을 찍어서 뭐 하냐"며 부정적인 반발을 쏟아내기도 했다. 그러나 구와바라는 후퇴하거나 물러서지 않고, 그 숱한 욕과 적개심을 먹는 가운데서도 상록수처럼 그 자리에 서서 묵묵히 카메라를 들고 현장을 걸었다.
흐린 초점 끝에서 선명해지는, 기록의 얼굴들
구와바라는 현장을 멀리서 관찰하기보다 피사체에 깊이 줌인(Zoom-in)하여 관객이 인물의 서사 속으로 직접 이입되게 만든다. 자동 초점이 없던 시절, 그는 수동으로 초점을 맞추는 작업을 그 누구보다 완벽하게 해냈다고 한다. 수동 초점을 맞춘다는 것은 잠시 숨을 죽인 채, 렌즈 속에 들어오는 인물의 표정과 배경, 그리고 그 뒤에 숨겨진 시대의 모든 서사를 단 한 컷의 프레임 안에 단단하게 응축해 내는 섬세하고도 밀도 높은 과정이다. 구와바라는 이 고도의 집중을 통해 어떤 인물이든 그 삶의 무게와 서사를 화면 가득 깊이 있게 담아냈다.
특히 영화 속에서 그가 현상소로 들어가며 사진의 표면적인 색감이 아니라, 오로지 빛과 그림자가 만들어내는 명암의 깊이를 눈과 손끝으로 일일이 확인한다. 현상액 속에서 천천히 떠오르는 묵직한 명암이 빚어내는 양감은, 그가 사진이라는 매체를 통해 피사체를 단순한 대상이 아닌 '진실' 그 자체로 다루었으며, 그 인물들의 삶 속에 실제로 깊이 함께 숨 쉬고 있었음을 증명한다.
이외에도 베트남 전쟁의 참상부터 입국 금지를 감수하면서 찾아간 이산가족의 북한 현장까지, 그는 늘 무거운 카메라들을 어깨에 지고 어떤 장소든 마주할 준비를 마친 채 시대를 촬영해 왔다. 고희영 감독의 <사진의 얼굴>은 그가 남긴 사진의 생김새를 담담히 되짚으며, 상록수처럼 자기 자리를 지켜온 작가의 시선과 진실의 얼굴을 화면 가득 전달한다. 시대의 진실과 정면으로 마주하고 싶은 이들에게 깊은 잔향을 남길 이 다큐멘터리 영화는 오는 9월 2일 전국 극장에서 개봉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