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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메마른 기준, 둥근 악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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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실 TheBathroom, 1989, 캔버스에 유채, 249 x 205 cm ⓒ Fernando Botero Foundation

 

 

'미의 기준'은 무엇일까. 남자든 여자든 그러한 기준이 적용된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그 기준을 공기처럼 들이마신다. 스크린 속 배우들의 갸름한 턱선, 고전 회화 속 이상화된 신체, 잡지 속 균형 잡힌 비율들, 나 역시 어렸을 때의 환경과 가족, 그리고 그런 이미지들 속에서 자연스럽게 기준을 받아들이며 공고히 했다. 그것이 당연한 것인 줄 알았다. 세상을 바라보는 기준이었고, 어느 순간 나 자신에게도 가혹하게 적용되는 잣대가 되어 있었다. 현실은 다소 메마르기 때문에.


그러한 기준으로 봤을 때 17년전 초등학생인 나에게 보테로는 기준을 벗어나버린 악동과도 같은 작가였다. 모든 것이 뚱뚱한 것이었다. 초등학교 시절의 나에게 있던 단어는 '뚱뚱' 또는 '통통'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그를 표현하는 단어는 이에 불과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토록 단단한 기준을 가진 사람들도 보테로의 그림 앞에서는 인상을 찌푸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기준을 벗어난 인물들과 정물들로 가득 찬 화면인데도, 사람들은 오로지 감상에만 머물렀다. 뚱뚱하지만 비비드한 색감에 귀여운 그림. 그럼에도 그 인상은 기억 한켠에 오래 남아 있었다.


17년이 지나 다시 보테로 앞에 선 나는, 어렸을 때보다 훨씬 많은 단어를 갖게 되어 있었다. "풍요롭다, 관대하다, 육감적이다, 가득 차 있다." 등, 어렸을 때의 나는 그 형태들을 좁은 기준에 비추어 바라봤지만, 이제는 기준에 맞는지 틀린지를 따지기보다 그 형태가 주는 감각 자체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보테로의 그림이 오래도록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이유도 어쩌면 그것일지 모른다.

 

그의 그림 앞에서만큼은 누구든 오로지 감상에만 머물게 된다는 것. 그 몰입 속에서 비로소 풍요로움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는 것.

 

 

19. Fernando Botero with the sculpture Torso during the casting process, 1991.jpg

 

 

페르난도 보테로. '남미의 피카소', '풍만한 모나리자'로 알려진 그가 11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보테리즘(Boterismo)'이라는 고유한 양식으로 20세기 현대미술사에서 가장 독보적인 거장 중 한 명으로 자리매김한 그는, 콜롬비아 메데인 출신이다. 메데인은 한때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도시라 불리던 곳이었다. 마약 카르텔의 도시. 그러나 2000년 그곳에 보테로의 작품들을 모은 미술관이 생기고 난 후, 지역의 범죄율이 급락했다는 이야기는 그의 예술이 단순한 미적 유희를 넘어 어떤 힘을 가지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보테로는 어린 시절부터 위대한 거장들의 작품을 직접 마주하며 탁월함을 추구했다. 불과 열다섯 살의 나이에 스페인 프라도 미술관에서 모사 화가로 활동하기 시작한 그는, 벨라스케스와 고야의 회화를 깊이 탐구했다. 이후 토스카나로 이주하여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걸작들, 특히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와 파울로 우첼로의 작품을 접하면서 그의 예술적 시각에 지울 수 없는 자취가 새겨졌다. 뒤러, 반 에이크, 루벤스, 앵그르, 마네로 이어진 그의 관심은 단순한 공부가 아니라 자신만의 언어를 만들기 위한 치열한 탐색이었다.


그 탐색의 결정적인 순간은 1956년에 찾아왔다. 멕시코로 이주해 머물던 어느 날 밤, 만돌린을 스케치하던 보테로는 악기의 울림구멍을 비정상적으로 작게 그렸다. 그 순간, 풍만하게 부풀린 악기의 외곽선과 지나치게 작은 구멍의 대비가 화면에 강렬한 기념비성과 왜곡을 불러일으켰다. 보테로는 그 찰나에 오랜 예술적 탐구의 해답을 발견했다고 회고한다.

 

형태를 부풀림으로써 오히려 본질이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는 것. 이것이 보테리즘의 시작이었다.

 

 

 

Volume으로 완성된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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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니나, 벨라스케스를 따라 Menina After Velasquez, 캔버스에 유채, 198 X 160 cm ⓒ Fernando Botero Foundation

 

 

그렇다면 보테로는 왜 모든 것을 크게, 둥글게 그리는가.


그는 스스로 분명히 말한다. 희화화가 목적이 아니라고. 단순히 본질의 형태 자체를 강조하는 것이며, 양감(volume)으로써 본질과 환경을 더욱 풍요롭게 만드는 것이라고.

 

"예술에서 양감은 관능이라는 특정한 개념과 맞닿아 있습니다. 나는 회화가 관대하고, 감각적이고, 육감적이어야 한다고 확신합니다."

 

대상의 존재감은 크기에서 오고, 생명력은 구조적인 볼륨에서 온다. 그래서 그의 그림 앞에 서면 무언가를 해독하려 애쓰기보다, 형태가 만들어내는 감각에 자연스럽게 몸을 맡기게 된다. 다른 회화들처럼 그 안에 담긴 어떤 의미를 찾아내려 노력하기보다, 정물에 담긴 본질의 형태에 집중하게 되는 것. '눈으로 만지는 그림'이라는 표현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그는 1952년 첫 유럽 여행 이후 '변주(Versions)' 연작을 통해 미술사의 거장들에게 경의를 표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를,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을,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의 성화를  선대의 주제를 가져오되 결과물은 언제나 명백한 보테로의 것이었다. "예술은 같은 것을 다른 방식으로 말할 수 있는 가능성이다." 원전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형태와 양감의 언어로 다시 태어나게 하는 것.


이번 전시의 대표작인 '벨라스케스를 따라 그린 시녀들'은 보테로가 살아 있을 때 작업실 밖을 나오지 못했던 작품이다. 보테로 사후 처음으로 공개되는 이 작품은, 그가 평생 천착했던 거장들과의 대화가 마지막까지 이어졌음을 보여준다. 또한 네 살의 나이에 세상을 떠난 아들 페드리토를 그린 연작 역시 이번에 처음 공개되었다. 아들을 잃은 후 보테로는 1년간 그를 그리고 또 그렸다. 뉴욕의 아파트 한 곳에 그림들을 모아두고 문을 걸어 잠근 채, 그 문을 다시 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풍요와 유쾌함으로 알려진 그의 화면 안에 이런 깊은 슬픔이 함께 있다는 사실이, 그의 그림을 단순한 즐거움 이상으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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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풍 ThePicnic, 2001, 캔버스에 유채, 113 X 165 cm ⓒ Fernando Botero Foundation

 

 

또한, 그가 보여주는 명백하고도 강렬한 화폭은 모두 유년 시절, 혹은 자신의 뿌리인 라틴 아메리카로부터 온다.


"예술가는 자신의 고향과 삶에 뿌리를 두어야 한다. 나의 뿌리는 콜롬비아다. 내가 그리는 모든 것은 나의 유년 시절의 세계를 반영한다. 그것은 일종의 향수이자, 나의 예술을 관통하여 중심적 주제가 된 집념이다. 비록 60년 이상의 시간을 뉴욕과 유럽 등지에서 보냈지만, 나에게 영감을 준 것은 언제나 라틴 아메리카였다."


그래서 그의 화면에는 음악가, 무용수, 수녀, 군인, 우아한 상류층 여성까지 유년 시절 기억 속의 평범한 이웃들이 해학과 따뜻함을 입고 등장한다. 같은 라틴 아메리카 출신의 디에고 리베라나 프리다 칼로가 그랬듯, 자신의 뿌리를 가장 솔직하게 드러낼 때 오히려 가장 넓은 세계에 닿는다.

 

"예술이 진정으로 보편적이기 위해서는, 먼저 지역적이어야 한다."

 

보테로는 그것을 온몸으로 증명한 작가였다.

 

 


풍요에 품어지다


 

그렇게 나는 풍요로운 보테로를 마주했다. 그는 솔직하면서 표현에 있어 열정이 있을 뿐만 아니라 거침없었고 확고했다. 자신의 출신,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volume의 가치, 이를 통해 사람들이 공명하기를 바라는 마음들이 비비드한 색감처럼 강렬하게 다가온다. 어렸을 때는 그저 볼륨에만 집중하게 되었다면, 이제는 그가 양감을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인간들의 순수한 모습, 일상적인 생활, 대중 예술의 한 부분이 보인다.


결국 예술은 즐기는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그래서 그는 예술을 미술관 안에만 가두지 않았다. 광장에, 거리에, 사람들의 손이 닿는 곳에 작품을 놓았다. 조각을 만지고 기대고 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기뻐했다고 한다. 실제로 그가 고향 메데인에 기증한 작품들은 한때 세계에서 가장 위험했던 도시의 풍경을, 그리고 그곳 사람들의 삶을 바꾸었다. 예술로 사람을 풍요롭게 한다는 것이 수사가 아니라 현실이 될 수 있음을 그는 증명했다.


현실은 다소 메마르다. 우리는 저마다의 기준을 세우고, 그 기준으로 세상을 재단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보테로는 달랐다. 그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온전하고도 솔직하게 바라보았다. 깎아내는 대신 채웠고, 메마른 자리에 풍요를 불어넣었다. 그리고 그 풍요 속에서 사람들이 잠시나마 숨을 고를 수 있기를 바랐다. 나는 그 풍요에 품겼다. 그리고 바란다. 자신의 색이 바래졌다고 느낄 때, 혹은 현실의 메마름에 허기가 질 때 보테로처럼 세상을 조금 더 풍요롭게 바라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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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상Self-Portrait, 1998, 캔버스에 유채, 92.7 X 81.2 cm

 

 

해당 전시는 2026년 4월 24일부터 8월 30일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진행된다. 현실의 기준에 사로잡혀 자신의 색이 바래졌다고 느낄 때, 혹은 현실의 메마름에 허기가 질 때 보테로의 풍요로운 세계를 찾아가 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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