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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미치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렇게까지 하나? - 나는 오늘도 유물과 대화하러 간다 [도서]

장인의 세계를 엿보다

by 손현진 에디터
2026.08.23 14:54

"이렇게 사서 고생할 정도로 이 일이 그렇게 좋단 거야?"

 

한낮의 불볕더위 아래에서 현장의 쓰레기를 치우고 내부를 정리하던 문화유산 사진작가 서헌강을 향해 한 학예관이 던진 말이다. 이 질문은 그의 삶이 담긴 책 <나는 오늘도 유물과 대화하러 간다>를 읽으며 품었던 의문과도 맞닿아 있었다. 한 분야에 이토록 '미쳐' 있을 수 있는 그 용기가 경이로웠다.

 

어떤 대상에 온전히 애정을 쏟는 일은 필연적으로 두려움을 동반한다. 내가 쏟은 마음만큼 결과가 돌아오지 않을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그러나 서헌강 작가는 망설임 없이 온 힘을 쏟아붓는다. 그는 책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애석하게도 내게는 저명한 예술가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 법한 천재성이 없다."

 

 

그리고 그는 천재성 대신 근성 있게 일을 밀어붙이며 성과를 내는 데 몰입했다고 덧붙인다. 하지만 끝장을 보고야 마는 열정과 우리의 문화유산에 대한 지독한 애정은 이미 그만의 '천재성'으로 승화되었다. 책과 사진을 통해 마주한 서헌강 작가는 그야말로 '장인(匠人)' 그 자체였다.

 

<나는 오늘도 유물과 대화하러 간다>는 30여 년간 국내외 유무형 문화유산을 사진으로 기록해 온 서헌강 작가가 그동안 어떻게 '유물'과 대화를 나누며 카메라에 담아왔는지를 소상히 밝힌다. 총 4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각각의 고유한 테마를 통해 사진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낸다.

 

 

 

공간과 사람, 유물을 넘어 '삶'에 닿다


 

3. 나는 오늘도 유물과 대화하러 간다_평면표지.jpg


 

'공간의 이야기'를 담은 1장에서는 천 년의 온기를 품은 건축물에 주목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종묘, 경복궁, 창덕궁 등 눈에 보이는 건축물 이면에 존재하는 역사를 풀어낸 작가는 침묵 속에 그 존재감을 발휘하는 문화유산의 이야기를 렌즈로 세심히 포착한다. 무심코 지나쳤던 문화유산과 풍경들을 온전히 '다시 보게' 되는 순간이다.

 

'사람의 이야기'를 다루는 2장에서는 그 자체로 문화유산이 된 인물들을 조명한다. 과거에는 인간문화재로 불렸던 이들을 찾아가 그들의 세월을 기록했다. 수십 년간 한 분야에 투신하여 그 자체로 문화가 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다. 책에 수록된 사진만으로도 그들이 얼마나 단단한 내면을 지녔는지, 지난한 세월 속에서 잊혀 가는 문화를 바로 세우기 위해 얼마나 분투했는지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유물의 이야기'를 엮은 3장에서는 역사를 간직한 다양한 유물들을 촬영해 온 과정을 서술한다. 그러자니 학창 시절 박물관에서 복잡한 설명문을 견디지 못해 지나쳤던 기억이 떠올랐다. 작가의 스토리텔링을 따라 유물의 이야기에 다시 귀 기울이는 순간, 이것들이 왜 지금까지 문화유산이라는 이름 아래 간직되었는지 알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삶의 이야기'를 펼친 4장의 중심은 작가의 자전적인 서사로 이루어졌다. 서헌강이라는 사람이 어떻게 카메라를 쥐게 되었으며 어쩌다 문화유산의 길로 들어오게 되었는지를 서술한다. 그가 어떤 마음으로 문화유산을 대하는지에 대한 진솔한 고백을 통해 사진 너머에 존재하는 치열한 집념의 뿌리를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다.

 

책장을 넘길수록 문화유산뿐만 아니라 작가라는 사람에 대한 궁금증도 자연스레 커졌다. 도대체 이 사람은 왜 이렇게까지 고생하며 사진을 찍는 건지, 어떤 마음이 그를 여기까지 이끈 것인지 말이다. 이 물음을 해소해 준 것은 4장이었다. 1, 2, 3장에서는 작업물을 통해 한국 문화유산의 고유한 미美를 보여주다가, 서서히 '작업'에서 '작가'로 독자의 관심이 옮겨갈 즈음 마지막 장에서 작가의 서사를 풀어내는 그 흐름이 매끄러웠다.

 

 

 

사진 한 장이 문화유산으로 이끌 때



사실 이 책을 집어 든 이유는 내가 우리 문화유산에 대해 너무 무지하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국내 여행을 다니다 보면 지역마다 고유한 문화유산을 품고 있는 경우가 많았지만, 배경지식이 없으니 그저 '멋지다'는 감상만 남긴 채 맛집을 찾아 떠나기 일쑤였다. 그리고 그 기억들은 금세 휘발되었다. 하지만 그렇게 지나쳤던 우리 유산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누군가는 묵묵히 담아오고 있었다.

 

작가는 책에서 이렇게 밝힌다.

 

 
"하지만 나는 우리가 그동안 늘 접해오던 '보여주기식' 사진은 찍고 싶지 않았다. 사진을 보는 사람들이 호기심을 가지고 그 문화유산에 대한 이야기를 찾아보고 직접 가보고 싶다고 생각할 만한 사진은 그런 구도로 찍은 사진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서헌강 작가는 사진이 사람들을 유산 앞으로 이끄는 동력이 되기를 바랐고, 그 의도는 완벽히 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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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사진이 먼저 등장하는 대신, 작가가 문화유산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그리고 어떤 구도로 현장을 잡아냈는지를 치밀하게 서술한 뒤에야 비로소 사진이 담긴 페이지를 등장시킨다. 대상에 대한 지식이 없는 상태로 작가의 서술을 따라가다 페이지를 넘겼을 때 마주한 찰나의 아름다움이 인상 깊었다. 텍스트로 구축된 상상과 실제 사진을 비교하는 재미, 무심히 지나쳤던 공간의 이야기가 드러나는 순간이 짜릿했다.

 

작가는 조선왕릉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프로젝트 당시, 왕릉의 역사적 가치를 담아내는 것을 넘어 '과거의 삶이 현대인의 삶과 어떻게 어우러지고 있는지'에 초점을 맞추려 했다고 밝힌다. 과거의 유산 역시 현재라는 시간 속에서 우리와 함께 호흡하며 살아있기 때문이다.

 

결국 지금 이 시대와 과거의 유산이 어떻게 맞물려 나아가야 하는지 고민해야 할 시기인 것 같다. 과거의 공간에 멈춰있던 유물들이 작가의 시선과 장인정신을 거쳐 비로소 지금의 현실 속으로 성큼 걸어 들어왔다. 이제 다시 낯선 문화유산 앞에 서게 된다면, 예전처럼 그저 스쳐 지나가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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