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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나는 어떻게 내가 되었을까 - 도서 ‘카오스의 가장자리’

누구도 설계하지 않은 지금의 '나'에 대하여

by 배지은 에디터
2026.10.07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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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천에서 용 난다'. 한때는 희망의 상징 같은 말이었지만, 아쉽게도 요즘 시대에는 어울리지 않는 말이 되었다. 부모의 경제력에 따라 날 때부터 출발선의 많은 부분이 이미 결정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이제 누군가 밑바닥에서 시작해 정상까지 올랐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나도 그렇게 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보다 의심이 먼저 드는 게 어쩔 수 없다.


      2022년 프린스턴 신경과학 워크숍에서 강연을 마친 한 과학자도 이런 의심을 받았다. “어떻게 해내신 건가요?” 그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도서 <카오스의 가장자리>를 통해 아주 길고 솔직하게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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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카오스의 가장자리>의 저자 데이비드 수실로는 계산신경과학자다. 계산신경과학은 한 개체(주로 사람, 영장류 혹은 설치류)가 지각, 인지, 운동을 하는 동안 뇌에서 일어나는 정보의 처리 과정을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한다. 그는 컬럼비아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구글 브레인과 메타를 거쳐 지금은 스탠퍼드대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이력만 보면 어디 흠잡을 데 하나 없는 엘리트 코스 그 자체다. 하지만 어린 시절까지 꽤 오래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전혀 다른 모습이 보인다.

       

      그는 뉴멕시코에서 헤로인 중독자 부모 사이에서 태어났다. 다섯 살 무렵엔 아버지가 집에 불을 질러버리겠다며 자살 소동을 벌였고, 이 사건을 계기로 부모가 이혼한 후 편모가정에서 극심한 가난 속에 자랐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가 심각한 우울증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함에 따라 보육원에 맡겨졌다. 부모가 세상을 떠난 것도 아닌데 곁에 없는, 고아보다 더 애매하고 외로운 처지에 놓인 것이다.


      하지만 그는 외려 그곳(보육원)에서 꿈을 얻었다. 컴퓨터에 코드를 입력했더니 ‘David is cool’이라는 문장이 화면에 뜨는 것이 아닌가! 그는 신세계를 경험했다. 그렇게 그는 컴퓨터 프로그래밍에 대한 지대한 관심과 이를 활용한 꿈을 가지게 되었다.


      7학년 무렵엔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면서 삼촌에게 거두어졌고, 지적인 친척들 사이에서 수학자나 물리학자를 꿈꾸기도 했다. 이렇게 해피엔딩이 되었으면 좋았겠지만, 그랬다면 이 책 자체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기숙학교로 진학한 이후 교내에서 폭력을 당했고, 보육원에서 꿈꿨던 ‘대학 장학금’만을 생각하며 공부에 매진했다. 결국 장학금을 받으며 대학 진학에 성공하지만, 이후에는 공황발작에 시달려 극단적인 선택을 떠올리기도 했다.


      참담했던 과거의 밑바닥 시절에서 벗어났지만, 그 시절에 받은 상처는 차마 아물지 못했던 것이다. 그나마 심리치료와 달리기를 통해 다시금 일어설 수 있었고, 비로소 신경과학이라는 진짜 자신의 자리를 찾아갔다.

       

      책에서는 ‘나처럼 하면 된다’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왜 어떤 아이는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살아남는 반면, 어떤 아이들은 그러지 못할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그 답을 의지나 재능에서 찾기 보다는, 곁에 있던 사람들과 지나온 삶, 그리고 우연에 돌린다. 개천에서 난 용이 바로 자신이라고 홍보하는 게 아니라, 용이 될 수 있도록 그 개천에 어떤 물줄기들이 흘러들었는지를 하나하나 짚는 셈이다.


      이 책은 단순 회고록에 그치지 않는다. 저자는 본인 인생을 연구 대상처럼 다루고 있다. 그리고 그 분석 도구로 꺼내 드는 개념이 바로 ‘창발(Emergence)’이다. 창발이란, 하위 요소들에겐 없던 특성이 전체 구조의 상호작용을 통해 자발적으로 갑자기 나타나는 현상을 말한다. '떠오름'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한 예로 개미 한 마리는, 그저 개미다. 하지만 집단을 이루고 군체를 형성하게 되면, 누구의 지시 없이 개체들 일부가 스스로 운반을 하고, 집을 짓는 등 체계가 잡히게 된다.


      질서와 무질서 사이의 경계를 뜻하는 ‘카오스의 가장자리’. 너무 질서정연하면 아무것도 새로 배울 수 없고, 너무 무질서하면 아무것도 유지되지 않는다. 그 가장자리는 생명과 진화, 복잡한 시스템이 스스로 조직화되고, 새로운 현상을 만들어낸다고 여겨진다. 저자는 이 가장자리에서 질서와 무질서를 오가며 생을 보냈다. 상처만 남겨준 어른들, 그래도 마음 터놓을 수 있던 친구, 첫사랑 등등. 이 여 러가지 일들이 얽히고설켜, 그 누구도 설계하지 않았던 ‘지금의 나’가 생겨났다. 저자 인생 자체가 하나의 창발이었다.

       

      책에서는 아쉬운 부분도 있었다. 요즘 에세이를 보면 책이 많이 두껍지 않은 편인데, 이야기가 다소 길게 늘어진다. 무엇보다 과학 파트에 대한 설명은, 사실대로 이야기하자면 흐린 눈으로 보았다. 열심히 이해해보려고 했지만, 그와 같은 길을 밟지 않았기에 나로서는 이해하는 데에 한계가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이 내용을 온전히 이해하지 않아도 이야기의 큰 흐름을 따라가는 데에는 큰 문제가 아니었던 점이다.


      처음 질문이었던 “어떻게 해내신 건가요?”에 대한 대답은, 결국 책을 끝까지 읽어도 명쾌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대신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인다. 결코 혼자서 해낸 것은 아니라고. 인생에 있어 수많은 인연과 상처가 창발의 거름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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