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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전시가 끝나고 난 뒤


 

주말 오후, 오랜만에 찾은 미술관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림을 보는 사람들의 모습은 제각각이었다. 전시 안내문을 한 글자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가만히 서 있지만 누구보다 바쁘게 눈알을 굴리는 사람. 귀에 이어폰을 꽂고 오디오 가이드를 들으며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 도슨트 선생님의 안내를 따라 움직이는 사람들. 한 작품 앞에 오랫동안 머무는 사람도 있고, 전시 동선과 상관없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림을 보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만약 관람객이 많아 줄을 서야 하는 전시라면, 그 흐름에 휩쓸려 어쩔 수 없이 끌려다니는 나도 있다.


지금껏 다녀온 전시회들을 돌아보면, 나는 대체로 정해진 동선을 따라 그림을 감상해왔다. 그러다 보니 어떤 작품을 마주했을 때, 그것을 온전히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은 늘 한정적이었다. 작품에 집중하려 주변을 의식하지 않으려 해도, 그건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작품들을 보고 나서 집으로 돌아오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들곤 했다.


"그래서 이 좋은 그림들을 보고, 내게 남는 게 뭐지?"


최근에도 주말의 인파 속에서 전시를 보고 돌아오던 날, 비슷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그날 본 전시는 다른 전시에 비하면 사람이 많지도 않았다). 그 즈음, 우연히 한 책을 만났다. 부제는 ‘예술 작품을 볼 때 머릿속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질까?’라는, 바로 《감상의 심리학》이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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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상의 심리학》, 오성주 저, 북하우스

 

 

 

그림을 보는 동안 우리의 뇌 속에서 일어나는 일


 

이 책은 총 열두 장에 걸쳐 인간이 예술 작품을 감상할 때 뇌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다룬다. 이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주로 사용되는 개념이 ‘예술심리학’이다. 예술과 심리학. 언뜻 서로 다른 분야처럼 보이지만, 이 둘은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까?

 

사전에서는 예술심리학을 이렇게 정의한다.

 

["예술, 문학, 음악 등의 창작 활동과 감상 활동을 심리학적으로 연구하는 학문. 응용심리학의 한 분야."]

 

오랫동안 예술 작품은 객관적 분석보다는 주관적 감상의 대상으로 여겨져 왔다. 그래서 우리는 보통 “화가가 어떤 의도로 이 그림을 그렸을까?”, “이 그림은 왜 위대한가?”, “어떤 시대적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등, 작가와 작품이라는 두 축을 중심으로 감상해왔다.

 

하지만 예술심리학은 그 시선을 감상자에게로 돌린다. 예술 작품을 대하는 우리의 무의식적 반응, 선호하는 화풍의 차이, 작가의 의도를 알고 있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 감상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등을 탐구한다. 감상자의 시선과, 그 시선 뒤에서 작동하는 심리적 메커니즘을 다양한 사례로 풀어낸다.


가령, 저자가 마크 로스코의 작품을 감상하던 중, 같은 작품을 보며 눈물을 흘리는 사람을 목격했지만 정작 자신은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던 일화가 소개된다. 그렇다면 왜 똑같은 작품을 보고도 사람마다 감상이 다를까? 책은 그 차이를 ‘감정의 활성화’라는 개인차로 설명한다.

 

 

그림 감상에서 감정의 활성화는 개인차가 크다. 예술적 오한이란 그림을 감상하면서 감정적 전율을 느껴 닭살이 돋고 등골이 오싹한 신체 상태를 말한다. 그림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다. 프랑스의 소설가 스탕달은 피렌체의 미술 작품 앞에서 과호흡 증세를 보였다고 하는데, 여기서 유래한 ‘스탕달 신드롬’은 예술 작품에 압도되어 심신이 충격 상태에 이르는 현상을 말한다.

 

- 80쪽

 

 

작품을 바라볼 때 사람마다 느끼는 감정의 깊이가 다르다는 사실이 무척 흥미롭게 다가온다. 그래서 우리는 같은 작품을 보고도 누군가는 눈물을 흘리고, 누군가는 그 그림을 무감하게 지나간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각자 '예술적 오한'을 느끼는 작품은 무엇일까?


 

 

작품과 눈 맞추는 법을 배우다


 

책은 감상자의 머릿속을 분석하면서, 동시에 작품을 더 깊고 재미있게 감상하는 법도 알려준다. 예를 들어, 에드워드 호퍼의 밤을 새는 사람들이라는 작품이 소개된다. 개인적으로 호퍼의 그림을 볼 때마다 느끼는 감정은 “인간 군상 속의 고독을 잘 표현했다” 정도였는데, 그 이유를 막연히 감각적으로만 받아들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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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호퍼,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 1942년(출처: 위키백과)

 

 

책은 이 작품 속 인물들의 위치와 방향, 구도에 ‘집단화의 원리’가 적용되어 있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긴장감을 느끼게 만든다고 설명한다. 단순히 ‘쓸쓸해 보인다’는 느낌을 넘어서, 그것이 어떻게 구성적으로 만들어졌는지를 알게 되자 감상이 한층 깊어졌다. 그림 속 사물의 위치, 사람의 배치, 색채의 대비 등으로도 감정을 설계할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또한 책은 풍경화, 추상화, 구성화, 현대 미술 등 다양한 작품을 예로 들며 감상의 폭을 넓혀준다. 덕분에 나 역시 내가 어떤 화풍을 좋아하는지를 새삼 생각해보게 되었다. 나는 예전부터 풍경화를 좋아했는데, 여전히 마음이 그쪽으로 향했다. 반면 그로테스크한 그림을 선호하는 유형도 있는데, 이런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보통 경험에 개방적이고 감각 추구 성향이 강하며 예술적 지식이 풍부하다고 한다. 이처럼 감상자의 성향과 취향을 분석하는 방식이 색다르고 재미있었다.

 

 

 

미술관 문을 나서며


 

예술은 감상자의 시선과 해석으로 비로소 완성된다. 그간 작품을 봐도 막상 남는 게 없다는 허전함을 느껴본 적 있다면, 혹은 감상하는 법에 늘 갈증을 느꼈던 사람이라면 감상의 심리학은 좋은 동반자가 되어줄 것이다.

 

이 책은 감상자라는 ‘나’를 중심에 놓고 예술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작품과 마주한 그 짧은 순간, 내 안에서 벌어지는 심리적 반응을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감상은 더 깊고 의미 있어진다.

 

요즘은 미술관에 직접 가지 않아도 명화를 감상할 수 있는 시대다. 하지만 직접 작품 앞에 서서 느끼는 감동은 그 무엇으로도 대체되기 어렵다.

 

이 책이 감상이라는 행위에 대해 스스로 질문을 던지게 하고, 그 답을 찾아가는 여정에 작은 용기를 더해주기를 바란다. 다음에 미술관을 찾게 된다면, 작품 앞에 조금 더 오래 머물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시간이 지난 후엔, “이번엔 내게 조금 남은 게 있는 것 같아”라는 말도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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