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극단이 [2026기획초청 Pick크닉]으로 새해 문을 열었다. 공놀이클럽의 <이상한어린이연극-오감도>가 명동예술극장에서 2026년 삼연을 맞이한다. 연극 <이상한어린이연극-오감도>는 한국 최초의 어린이 공동창작 연극으로, 시인 이상의 시 ‘오감도’를 영감의 원천으로 삼아 어린이극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어린이들의 고민과 생각을 담은 희곡은 정형화된 어린이청소년극의 틀을 깨고 어른들이 만든 세상에 어린이들이 던지는 생생한 질문과 낯선 세계를 보여준다.
어린이극 하기와 어린이극 보기
어린이극 혹은 아동극은 어린이를 위해 구성된 연극이다. 어린이극에 대한 정의가 간단한 까닭은 어린이극 자체가 하나의 장르라기보다 분류이기 때문일 것이다. 다수의 경우 어린이가 연극을 본다면, 연극 보기를 선택한 것은 어린이의 보호자인 어른의 선택에 가깝다. 그렇기에 어린이극은 어린이의 정서 함양 및 교육 효과를 기대받는다. 이외에도 몇 가지 특징이 있다면 (어린이의 집중 가능 시간을 고려한) 상대적으로 짧은 상영 시간과 막 구성, 관객의 소음과 이동에 관대한 혹은 권장하는 관람 태도, 배우의 나이와 상관없이 어린이로 설정된 주인공, 관객 참여 유도 등으로 정리해 볼 수 있다.
연극 <이상한어린이연극-오감도>는 어린이를 위한 연극인 동시에 어린이가 만든 연극이기도 하다. 성인 배우가 등장하기는 하지만, 대다수의 배역을 초등학생 나이대의 어린이가 맡았다. 또한 연극을 제작한 ‘공놀이 클럽’은 연극의 제작 과정에서 어린이 배우와 워크숍을 진행하며 극의 내용과 연출에 어린이 배우들의 의견을 충실히 담아내고자 했다.
어린이극을 하나의 장르로 보기는 어렵겠으나, 어린이극은 자신의 의도와 별개로 연극 자체에 많은 질문을 건넨다. 연극과 극장에는 많은 약속이 존재한다. 이를테면, 배우와 배역이 동일하지 않다는 약속, 그럼에도 관객은 배역에 이입할 것이라는 약속, 극장에서는 큰 소리를 내지 않겠다는 약속, 또한 의자에 가만히 앉아 있겠다는 약속 같은 것들이다. 그러나 어린이 관객 앞에서 연극의 약속은 무색해진다. 어린이들은 웃고 싶을 때 웃고, 걷고 싶을 때 걷는다. 또한 무대 위 배역의 대사에 질문을 던지거나 바로 공감해 주기도 한다. 그러므로 연극에 대한 비평과 감상이라는 것이 어린이극 앞에서 실제로 작동할 수 있냐는 고민 역시 남는다.
어린이극 <이상한어린이연극-오감도>의 극장에도 어린이와 함께 온 가족 단위 관객이 다수였다. 어린이와 동반하지 않은 어른 관객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보통의 극장 풍경과는 공기부터 달라진다. 일반 극장에서 가장 보편의 존재가 되곤 하는 나의 존재가 조금은 어색해진다. 어린이들이 배우로 등장하는 연극에서는 어린이가 아닌 관객 역시 자신에게 익숙했던 연극의 약속에 조금 유연해질 것을 요구받는다. 성인 배우와는 다른 어린이들의 발음, 즉흥적인 움직임들, 대사를 까먹은 듯한 표정을 수용할 것을 말이다. 어린이 관객들은 자신과 같은 어린이들이 주인공인 어린이극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할지 궁금하다.
어린이와 어른은 모두 같은 세상에 산다
이상의 시 ‘오감도’에 대한 여러 감상 및 비평이 존재하나 ‘오감도’를 처음 마주했을 때의 감정을 생각해 본다. 그것은 숨 막힐 듯한 공포와 두려움이었다. 막다른 것인지 뚫린 것인지 알 수 없는 길 앞에서 ‘무서워하는’-무서움을 주거나 받는- 아해들이 질주한다.
어른들은 연극의 제목을 보고 바로 시인 이상과 그의 시 오감도를 떠올렸을지 모르겠으나 어린이들은 정상의 반대어로서 이상을 먼저 떠올렸을 것이다. 그러나 어른과 어린이가 해석한 연극의 제목은 결국 같은 의미가 된다. 공놀이클럽은 이상의 ‘오감도’를 연극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원작의 핵심 정서인 ‘공포’에 집중했다. 원작의 시에서 질주하던 13인의 아해가 무엇을 무서워했을지를 13개의 장면으로 구성했다. 어린이들이 느끼는 공포의 세계는 촘촘하고 다층적이다. 태어난 나와 나를 둘러싼 가족과 집, 학교와 친구들, 내가 사는 도시, 국가의 정책과, 세계적인 전쟁과 기후위기 모두 공포를 일으키곤 한다.
어른들은 의도적으로 어른과 어린이의 세계를 구분하고자 한다. 그것은 어린이에 대한, 또한 자기 자신에 대한 보호가 되곤 한다. 연극 <이상한어린이연극-오감도>의 두 번째 막은 ‘제2의 아해도 달리기 무섭다 그리오’였다. 2막에서는 어린이 대표 콘텐츠인 오은영 박사, 뽀로로 등이 어린이에게 꿈과 희망을 말한다. 그러나 어린이들 앞에서 긍정적인 전망과 마음가짐을 말하는 어른들에게 그것들이 남아있을지는 의문이다. 그렇다고 어린이들에게 미래에 대한 전망 없는 마음을 그대로 전가하는 것이 솔직한 마음이 되지는 않는다. 어린이들 역시 자신이 놓인 현실을 바탕으로 어른들의 말의 참과 거짓, 진의와 선의를 해석한다. 연극 <이상한어린이연극-오감도>는 이 간극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기후위기를 미래의 문제로, 다음 세대의 문제로 만드는 미사여구 앞에 피부로 와닿는 이상기후는 이것이 오늘의 문제임을 보여준다. 어린이도 어른도 모두 같은 세계에 연루되어 있다. 우리는 다른 선에 서 있지 않다. 사랑하는 부모님이 나를 위해 해주는 칭찬과 격려의 말조차 어린이들에게 부담과 압박이 되곤 한다. 연극은 어린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자신의 욕망을 투여하는 두 부모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내 다른 배우들이 등장해 부모의 머리를 쓰다듬고, 또 다른 배우들이 등장해 그 배우들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겹겹이 싸인 인간의 벽은 세대 간 사랑과 폭력을 시각화한다. 연극 <이상한어린이연극-오감도>는 모두가 어린이였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것을 빌미로 어른에게 과도한 연민을 허용하지도 않는다.
어린이로 사는 일은 하나도 ( ) 하지 않다
어린이로 사는 일은 하나도 행복하지, 즐겁지, 유쾌하지, 편안하지 않다. 그러나 동시에 슬프고, 화나고, 두렵고, 무섭기만 하지도 않다. 어린이는 이미 자신이 놓인 세계를 알고 있다. 나를 미워하는 친구의 얼굴을 알고 있고, 나를 사랑하고 미워하는 가족의 얼굴을 알고 있다. 내가 유일하게 쉴 수 있지만 무한히 두려운 집의 얼굴을 알고 있다.
꿈을 말하는 장에서 한 젊은 성인 배우가 3년 뒤 만기인 통장을 끝까지 유지하고 싶다고 말했을 때 나도 깊이 공감하며 웃음이 났다. 한편, 어린이 배우들의 꿈에 구체적인 시험 성적이 주로 등장하는 것을 보고 당황스러웠다. 그 점수들을 들으며 어른이 된 나는 미안했지만, 사실 나도 그랬던 거 같다는 생각을 했다. 연극 <이상한어린이연극-오감도>는 행복하지만도 불행하지만도 않은 어린이들의 삶을 공포라는 개념으로 말을 걸었다.
연극의 마지막 장면, 12막의 주제였던 전쟁에서 세워졌던 세 개의 하안 문이 서 있다. 그리고 어린이와 어른이 만난다. 어른은 어린이의 미래이고, 어린이는 어른의 한 시점이다. 어른 역의 배우는 키높이 장치를 추가로 착용하고 있어 위태로워 보인다. 어른은 자신이 과거의 자기 미래라는 점을 자각하고는 쉽게 문 너머의 세계를 갈 것을 말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내 둘은 서로를 마주하고 한 때의 자신으로부터 위로를 얻는다. 연극은 이상의 시 ‘오감도’에서 있는 아해들에게 막혀있거나 뚫려있는 길을 질주하거나 질주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한다. 연극은 그렇게 공포의 공간을 미래와 선택의 공간을 바꾸어낸다.
사진 출처 - 공놀이클럽, 이지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