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ture 15.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들 - 우리는 왜 누구는 쉽게 믿고 누구는 쉽게 의심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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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INTRO
의심疑心
확실히 알 수 없어서 믿지 못하는 마음
의심이란 양날의 검 그 자체가 아닐까 싶어요. 적절한 의심은 나를 안전하게 지켜줄 수도 있고, 누군가를 도와줄 수도 있습니다. 상대방이 “아냐, 아무 일도 없어.”라고 했지만 왠지 의심스러워서, 위험한 일에 뛰어들기 전에 막아줄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시도때도 없이 생겨나는 의심은 정신적 스트레스를 유발하고 원만했을 대인관계를 망치게도 합니다. 양날의 검이라곤 했지만 지금 보니 위험도가 조금 더 큰 것 같네요.
저 역시 지금도 끊임없이 상대방을 의심합니다. 의심이라는 단어가 보통은 부정적인 의미로 많이 사용되지만, 상대방의 말을 온전히, 100% 수용하기가 어렵다는 뜻으로 얘기했습니다. 가령 농담을 건냈다가 뒤늦게 말을 실수한 것 같아 사과하고 정정하려고 할 때, 상대방이 “괜찮아.”라고 말 해주지만 쉽사리 믿기가 어렵습니다. 역지사지로 생각해보면 제가 한 말이 괜찮을 것 같지가 않거든요. 상대의 말을 믿어주고 물 흐르듯 넘기는 방법도 중요한데, 이상하게 저는 그대로 믿어주는 게 힘듭니다.
친구 관계에서도 ‘의심’이란 단어가 쓰이게 된다면 의심을 하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모두 상처가 될 수 있는데 하물며 가족은 어떨까요. 모든 사람이 등을 돌려도 끝까지 내 편일줄 알았던 가족마저 나를 등진다면 그로 인한 상실감은 어떻게 이루 말할 수 있을까요?
오늘 제가 소개하고 싶은 콘텐츠는 의심으로 둘러쌓인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입니다.
STORY
“진실의 가장 큰 적은 거짓이 아닌 믿음이다.” - 프리드리히 니체
국내 최고의 프로파일러가 수사 중인 살인사건에 얽힌 딸의 비밀과 마주하고, 처절하게 무너져가며 심연 속의 진실을 쫓는 부녀 스릴러
깊은 산 속에서 백골 사체 한 구가 발견됩니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나버린 나머지 신원파악조차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이 백골 사체 사건이 채 해결되기도 전에, 2L에 가까운 혈흔이 발견되었으나 시체가 사라지는 또 다른 사건이 발생합니다.
해당 사건을 조사하는 국내 최고 프로파일러 장태수(배우 한석규). 그에게는 자식이 한 명 있는데요, 정말 이상하게도 위 사건이 발생하고 난 뒤 딸 하빈(배우 채원빈)이의 행적이 자꾸만 눈에 띄고 의뭉스럽습니다. 수학여행을 가는 줄 알았던 딸이 참가 신청 조차 하지 않았고, 그 기간 동안 다른 친구와 단둘이 방 안에 머물러있다곤 했으나 사실은 오밤중에 몰래 방을 빠져나가기도 했거든요. 사건사고 안 치는 것 같던 딸이 가출팸과 엮이기도 하고요. 결정적으로 하빈이가 가지고 있던 물품 중 일부가 사건의 현장에서 발견되기까지 합니다.
정말로 너가 이 사건을 일으킨 장본인이냐고 직접적으로 물어도 하빈이는 묵묵부답입니다. 살해 현장의 증거들이 하빈이를 계속 가리키고, 마치 의도라도 한듯 태수는 의심하고 싶지 않아도 자꾸만 딸이 의심스러운 상황. 과연 하빈이가 정말로 그들을 살해한 걸까요? 그렇다면 도대체 사라진 시체는 어디로 갔고 무슨 연유로 그들을 살해한 것일까요?
COMMENT
본 드라마에서는 꽤 많은 사람들이 얽히고 설켜있습니다. 가출팸에 속한 송민아 외 여럿과 그 팸의 우두머리인 최영민. 가출팸, 최영민이 얹혀 사는 집 주인 김성희. 성희를 사랑하는 하빈이의 학교 선생님 박준태와 그의 아버지 정두철 등 말이죠. 그리고 ‘의심’이란 감정은 태수를 통해서, ‘믿음’이란 감정은 두철을 통해서 계속 공존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태수는 그럴리 없다 생각하면서도 계속해서 발견되는 증거로 인해 하빈이에 대한 의심을 거둘 수가 없습니다. 반대로 두철은 본인이 사람을 죽였다고 자수까지 한 준태임에도, 내 아들이 절대 그럴리 없다는 맹목적인 믿음을 보입니다. 그리고 아들의 무죄를 만들기 위해 시체를 찾아다가 훼손하는 등 물불을 가리지 않아요. 누가 보아도 그는 태수와 정반대의 위치에 서 있습니다. “진실의 가장 큰 적은 거짓이 아닌 믿음이다.”라는 니체의 문장을 정두철이라는 캐릭터로 승화시킨 것 같습니다. 아마 하빈이는 자신을 온전히 믿어주는 아버지를 가진 박준태가 부럽다고 느꼈을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가족이잖아요? 저도 만약 부모, 형제자매, 자식(이 있지는 않지만)이 판결을 통해 완전한 형벌이 내려지기 전까지는 절대 아니라고 부인했을 거 같아요. 아니, 어쩌면 판결이 잘못됐다고 소리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트루먼쇼마냥 온 세상이 내 자식이 범인이라고 하는 것 같은데, 저라도 조금의 의심이 안 들 순 없을 거예요. 우리는 왜 온 마음을 다해서 사랑하는 사람일지라도 의심이란 감정을 재울 수 없을까요? 왜 있는 그대로 믿어주는 게 어려울까요?
사실은, 대부분은 그 답을 알고 있습니다. 사람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인간’이라는 종족의 본능이기에.
몇 년 전, 태수에게는 아들이, 하빈이에게는 남동생 한 명이 있‘었’습니다. 이름은 ‘장하준’. 가족 넷이 캠핑을 갔고, 잘 놀던 딸과 아들이 부모들이 캠핑 준비를 하는 사이에 실종됩니다. 오랜 수색 끝에 하빈이를 겨우 찾을 수 있었지만, 동생 하준이는 하빈이가 발견되었던 절벽 근처에서 이미 추락사한 상태였습니다. 아무도 없는 산 오밤중에, 동생이 죽었는데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는 딸의 모습에 전부터 이상하게 생각한 태수는 하빈이를 붙들고 다그쳤고, 아빠의 강압적인 태도에 울부짖는 하빈이를 두고볼 수 없었던 엄마 지수는 결국 이혼을 결심합니다. 그러다 지수가 죽고 나서 미성년자인 하빈이는 다시 아빠와 함께 살게 된 거고요.
그렇게 아빠와 딸, 태수와 하빈이의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거대하고 두꺼운 벽이 지금까지 계속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태수는, 그 때는 미처 믿지 못 했던 딸의 말을, 이번 만큼은 반드시 믿어주려고 합니다.
(하빈) 알잖아, 내가 어떤 인간인지. 그래서, 내가 괴물이라서, 버린 거잖아.
(태수) 버린 게 아니라 도망쳤어. 내 속에 있는 그 의심 확인하는 게 무서워서, 그래서 도망친 거야. 하빈아, …니가 정말 하준이 죽였어?
(하빈) … 내가 안 죽였어.
(태수) … 알아, 아빠가 너무 늦게 물어봐서 미안해. 미안해, 하빈아.
극중에서 태수의 딸 하빈이는 일반적인 학생과는 너무 다릅니다. 친구들처럼 사소한 일에 웃는 일이 거의 없이 항상 무표정이고, 아빠 태수를 속이기 위해 눈물을 연기하기까지 합니다. 물론 아빠에 대한 배신감으로 인해 경찰을 믿지 못 하는 것도 있긴 하겠지만, 무섭지도 않은지 아직 미성년자임에도 계획을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단신으로 움직입니다. 자신이 세운 이 계획은 완벽하다고 의심치 않거든요. 하빈이가 만약 사이코패스 테스트를 진행한다면 분명 높은 수치를 보일 겁니다.
시체를 왜 토막내냐고? 그래야 옮기기 쉬우니까.
배는 왜 갈라봤겠냐고? 뻐꾸기 시계 뜯어보는 거랑 똑같은 거 아닌가? 궁금하니까.
하지만 하빈이는 다른 사람들보다 ‘공감’이 조금 부족하고, 대부분의 사건사고를 감정이 아닌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독립적인 성향이 보다 더 강할 뿐이지 목적을 위해 누군가를 해치는 것에 거리낌이 없는 사람이 아니에요. 엄마가 정신과 의사와 나눈 대화 녹음본을 듣다가, 끝내는 자신을 의심하기 시작하는 목소리에 황급히 노트북을 닫고 USB를 뽑아버려요. 그러면서도 이제는 유물이 되어버린 녹음본을 들으면서 잠에 들기도 합니다.
하빈이의 죽이지 않았다는 그 대답으로 인해 딸에 대한 믿음이 생겨난 것인지, 아니면 그저 딸을 범인이라고 의심하는 것을 그만두기로 한 것인지까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태수는 믿기로 합니다. 비록 여기까지 오는 그 과정이 너무나 고되고 힘들었지만, 어쨌든 내가 사랑하는 하나뿐인 딸이니까요.
드라마를 보기 전에 먼저 보았던 유튜브 영상 하나가 생각이 나더라고요. 유명한 국내 1호 프로파일러 권일용 교수가 이야기하는 사이코패스들의 뇌구조에 관한 이야기인데요, 영상에서 권일용 교수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사이코패스는요, 사실 정신병질로 분류된 질병이 아니에요. 성향 같은 거라서 우리 모두가 갖고 있습니다. 근데 그게 우리는 소위 정상이라고 하는 어떤 범주 안에 들어있기 때문에 그 문제로 사람들을 공격하거나 해치지는 않아요. 근데 항상 높거나 거의 없는 이 범주에서 벗어난 사람들이 문제죠.
시청자는 초반에 일어난 살인 사건의 범인이 과연 누구일지 궁금해하면서 드라마를 보다가, ‘일반’ 사람들과는 다른 하빈이가 등장하면서부터 순식간에 하빈이를 ‘의심’하게 돼요. 하는 행동이 완전 사이코패스 같은데, 진짜 장하빈이 범인인 거 아냐? 반면에 자수까지 한 준태는 이상하게도 쉽게 의심이 들지 않아요. 생김새나 하는 행동거지가 살인을 저지를 것 같은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이 들거든요.
우리는 분명 하빈이에게도 박준태에게도 그들을 잘 모르는 제3자일 뿐인데, 누구는 쉽게 의심을 하고 누구는 쉽게 믿습니다. 우리가 겉으로 보는 게 거의 진실에 가깝다고 생각하면서 말예요. 저는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가 인간의 이러한 성향이 얼마나 위험한지도 함께 보여주고자 했던 게 아닐까 싶어요.
드라마의 마지막에 태수는 하빈이에게 시계를 선물합니다. 많고 많은 선물 중 왜 시계냐는 딸의 질문에 “그냥”이라고 대답하고요. 시계는 본디 시간의 흐름을 가장 잘 보여주는 동시에 정상적으로 흘러간다는 느낌을 주죠. 공포영화에서 현 상황이 뭔가 잘못되었음을 보여줄 때 시계 침이 거꾸로 가기도 하고, 어떤 공간에 갇힐 때는 시계가 멈추기도 하듯이요. 단절되어 있고 멈춰있던 두 사람의 시간과 관계가 드디어 흐른다는 걸 보여주고자 한 게 아닐까 싶어요.
한 가지 아쉬운 점은, 태수가 분명 ‘국내 최고 프로파일러’라는 칭호를 갖고 있지만 프로파일링에 대한 면모가 많이 보이지는 않더라고요. 날카로운 질문을 통해 상대를 놀라게 하고 거짓을 밝혀내는 모습도 보이기는 했습니다. 그렇지만 딸에게 휘둘리고, 그러다가 사건 사고에 휘둘리고, 직장 동료들하고 부딪히고, 부하 직원들한테도 깨지고.. 솔직히 조금 불쌍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가족과 같이 자신과 가장 가까운 사람이 엮이게 되면 그 대단한 프로파일링이 큰 쓸모가 없다는 걸 말하고 싶었나 봐요. 그러면서 의심 없이 온전히 상대방을 믿어주는 게 얼마나 힘들고, 고되고, 가치있는 일인지를 말이죠.
OUTRO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는 신나고, 유쾌하고 속도감 있게 볼 드라마는 아니에요. 정적인 장면도 많고, 카메라 워킹을 일부러 느리게 하여 보여줄 때도 많습니다. 프레임을 설정하고 가둔 화면도 많고요. 하지만 그 안에 깔린 차분하면서도 어딘가 긴장감을 주는 배경음이 상황을 몰입하게 만들어줘요.
사실 이런 류의 미디어를 많이 본 분들이라면, 눈치껏 누가 진짜 범인인지 아닌지 대충 짐작할 수 있을 거예요. 그래서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 드라마는 범인을 찾아가는 것보다는, 사람에 대한 전적인 의심과 전적인 믿음이 나와 상대방의 관계를 어떻게 바꿀 수 있고 만드는 지에 대해 더 초점을 맞추면 흥미진진하게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10화 정도로 딱맞는 분량으로 끝나서 보기도 좋구요.
인간의 감정과 성향에 대한 심도있는 고찰이 담긴 내용이나 주제를 다루는 미디어를 좋아하신다면 충분히 재밌게 보실 거라 생각이 듭니다.
[배지은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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