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맵핑히틀러>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백수 한들호가 우연한 계기로 유튜브 채널을 통해 일억 구독자를 얻게 된 후, 대통령에 당선되는 장광설을 그린 블랙코미디이다. 플랫폼 시대의 권력이 만들어내는 현실 가능한 디스토피아를 정교하게 그려낸 이 작품은 얼핏 허황된 이야기처럼 들리다가도 섬뜩할 정도로 현실과 맞붙어 있는 모습들을 보여준다.
욕할 대상이 필요해
한들호의 시작은 사소한 것이었다. 번번이 취업에 실패하는 현실 속에서 마주한 사소한 불의. '금연 구역에서 담배 피우지 말고 흡연구역에 가라'는 정당한 요구에도 상대는 화를 내며 무시하고 만다. 주민 단톡방에 올려도 아무런 변화가 없자 한들호가 선택한 것은 다름 아닌 유튜브. 이렇게 시작된 그의 채널은 조금씩 커져 사람들이 일상에서 경험한 무개념 행동들, ‘비상식적’인 주변인을 고발하는 장이 된다.
이 채널에 모인 구독자들의 모습은 어딘가 익숙하다. 내가 보낸 제보가 가장 무개념적인 영상이 되길 바라고 내 영상을 보며 사람들이 같이 욕해주기를 바란다. 그러면서도 당사자가 나타나 자신의 행동에 해명을 하는 경우 '말이 많다'라며 조롱하기 바쁘다.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자신이 겪는 일이 실질적으로 해결되는 것보다 자신의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나와 비슷한 이들이 같이 욕을 해주는 도피처가 필요한 것처럼 보인다.
아니면 이렇게 볼 수도 있다. 그냥 사람들은 남을 욕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특히나 욕을 해도 지탄받지 않을 만큼 ‘안전한’ 상대라면 더더욱.
그러나 이것이 전부였다면 그들의 유튜브는 적당한 유명세를 얻고서 끝났을 것이다. 그들의 구독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된 것은 한들호가 국회의원에게 빗자루질을 하며 ‘정치를 잘하라’는 식의 메시지를 남기면서부터이다. 이 일로 교도소에 가게 된 한들호는 그곳에서 ‘나의 복음’이라는 자서전을 내며 커다란 유명세를 얻게 된다.
책의 내용은 대강 이러하다. 자신은 나라의 안녕을 생각하는 진정한 애국자이며 나라를 망치고 있는 ‘무소인’을 없애야 나라에 희망이 생긴다는 것이다. 얼핏 보면 황당하기 그지없고 선동과 혐오로 가득 찬 이야기이지만, 연극 속에서 이 책은 기어코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하고 그들은 100만 구독자를 거느린 유튜버가 된다.
어떻게 저런 일이 가능한가 싶다가도 한들호가 쓴 글귀가 무대의 스크린을 채우고 점점 올라가는 구독자 수, 무대에 흩날리는 종이들을 보고 있자면 이 상황에 대한 황당함보다 공포심이 커진다. 사실, 이 모습들이 완전히 허황된 것은 아니지 않은가. 범죄자의 자서전도, 혐오 정치의 효과도. 머릿속에 여러 정치인의 모습이 스치고 나자 연극은 조금 더 현실적인 무언가로 바뀌어 있었다.
공공의 적?

그들이 말하는 ‘무소인’이란 유대인의 ‘유’를 ‘무’로, ‘대’를 ‘소’로 바꾼 명칭이다. 그들이 '무소인'을 정의하게 된 방법은 놀랍게도 ‘관상’이었다. 자신들의 경험과 제보 속 ‘민폐남녀’의 얼굴을 AI로 분석한 결과 일정한 모양새의 얼굴형이 나온 것이다. 이렇게 생긴 사람들은 전부 문제가 있다며 ‘무소인’의 관상을 일일이 설명하는 그들의 모습은 약간의 실소와 함께 섬뜩함을 자아낸다.
이렇게 시작된 ‘무소인이 나라를 말아먹는다’는 식의 불평은 점차 몸을 불려, 어느 순간 그들은 ‘무소인’에게 지워지지 않는 물감을 쏘며 직접 낙인을 찍는다. 그들이 무대를 넘어 관객석을 침범하여 돌아다니는 순간 무대와 현실이 하나로 합쳐지는 듯한 인상을 받게 된다. 이 이야기는 단순히 무대 안에 존재하는, 그렇기에 우리가 그저 안전하게 바라만 볼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라고. 이것이 지금 당장의 현실이라고.
현실에서도 우리는 자신들의 틀에 맞지 않는 사람들에게 이름 붙이고 낙인을 찍는다. ‘무소인’이라는 것도 결국엔 특정한 관상을 일컫는 단어라기보다는(설령 처음에는 정말로 특정 생김새의 이들을 지칭한 것이었다 해도) 권력자의 입맛에 맞지 않는 모두가 ‘무소인’이 될 수 있는 실체 없는 개념이 되고 만다.
'무소인'이 되고 싶지 않은 이들은 자신에게 요구되는 무언가를 수행하게 된다. 행동을 줄이고 입을 다문다. 결국 사람들이 쉽게 욕하며 손가락질하던 무언가는 권력자들의 통제 수단이 되고, 우리는 더 큰 문제를 직시하기보다 조장되는 혐오에 휩쓸리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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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과정을 겪으며 한들호는 결국 대통령에 당선되게 된다. 취임 후 혼자 남은 한들호는 말한다. 북한과 전쟁을 벌여 한국을 통일할 거라고, 러시아는 별것도 아니니 금방 끝날 거라고. 다른 어떤 장면보다도 이 장면이 무서웠던 것은 극 중 한들호가 이런 짓을 하고도 남을 위인이라는 것과, 무엇보다도 전쟁을 쉽게 입에 올리는 그 태도 때문이었다. 전쟁에는 명령이라는 이유로 죽고 죽이는 이들과 피 흘리는 시민들이 남는다. 누군가의 고통 위에서 세워지는 영광이란 과연 얼마만큼의 가치가 있을까. 그것을 영광이라 칭할 수 있을까.
이 독백을 마지막으로 연극은 끝이 나고 커튼콜이 이어진다. 한 명씩 무대 위로 등장하는 배우들과 박수를 치고 있는 관객들. 한들호 역의 배우가 등장하고 그에게 박수를 보내고 있는 나를 보며, 어쩐지 배우가 아닌 한들호 대통령에게 박수를 보내는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혐오를 일삼고 전쟁을 입에 올리는 대통령에게 내가 박수를 치고 있다니. 마지막까지도 방심하기 힘든 연극이라 생각했다.
우리의 미래에 과연 한들호가 대통령을 하고 있을지. 아니, 그런 미래를 걱정하기 전, 지금의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여러 질문을 떠올리게 하는 연극이었다.
부디 이 연극을 보며 한들호에 깊이 공감하는 이들이 없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