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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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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책을 알게 된 것은 알음알음 퍼져 나가던 입소문을 통해서였다. 강렬하고 인상 깊은 제목을 잊을만할 때쯤이면 한 번씩 너 혼모노 읽어봤어?라며 말을 꺼내는 주변인들 덕에 언젠가 읽어봐야지 생각하던 책이었고, 드디어 읽게 되었다.

 

 

 

합리성의 이름으로


 

각각의 단편이 각자 다른 느낌의 ‘찜찜함’을 선사하고 있지만, 그중 가장 소름 돋는 단편은 <구의 집: 갈월동 98번지>였다. <구의 집>은 풍수적으로 명당이라 일컬어지는 갈월동 부지에 어느 날 생긴 ‘수련원’을 건축한 구보승에 대한 이야기이다. 매사 물렁한 태도를 보이던 구보승은 다루기도 쉽고 마땅한 뒷배도 없다는 점 때문에 스승 여재화에게 조수로 발탁되어 수련원 건축에 참여하게 된다. 그러나 수련원의 진정한 용도는 ‘불온세력’을 고문하기 위한 고문실이었고, 그 중압감과 부담감에 고민하던 여재화는 구보승에게 3층의 설계를 일임하게 된다. 그렇게 하여 구보승이 짓게 된 건물은 인간성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고문이라는 목적에 부합하는 완벽하게 차갑고 무정한 건물이었다.

 

이 단편이 유독 소름 돋았던 것은 구보승의 태도에 있었다. 여재화가 평가하던 것처럼 아주 성실하게, 최대한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설계를 하는 그의 모습. 빛은 희망을 준다며 창문을 없애버리고, 눈을 가리고 계단을 오를 때 층수를 알지 못하게 함과 더불어 공포를 주기 위해 좁은 원형 계단을 설치하던 그의 모습.


그의 설계 과정을 듣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혀를 내두를 만큼 잔인한 설계임에도, 정작 그것을 말하는 구보승의 태도는 더없이 산뜻하고 진중하다. 건물의 목적에만 부합한다면 다른 것은 상관없다는 듯이. 그런 구보승의 태도를 보며 과거 나치 하에서 아무런 죄책감 없이 학살에 가담하던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명령받았기에 비판 없이 모든 것을 수용하던 사람들 말이다.


책의 해설에서는 이러한 구보승의 태도를 이렇게 평가한다.


 

"한나 아렌트가 유대인들을 강제수용소로 내몰고 죽음으로 이끈 ‘아이히만’을 향해 내렸던, 희생자 관점으로 사물을 보는 “상상력”을 “결여”했다는 평가로부터 한발 더 나아가 국가폭력의 피해를 입는 이들의 관점에서 사물을 보는 상상력을 매우 열심히 발휘함으로써 구조적 폭력에 더욱 충실하게 복무하는 모습에 해당한다. 이때 구보승의 ‘상상력’은 주어진 업무의 목적을 일절 의심하지 않는 선에서, 자신의 행위가 영향을 미치는 시스템을 총체적으로 조망하고자 하는 노력을 결코 하지 않음으로써 발휘된다. 구보승이 문제적 인물로 다가오는 이유는 그의 합리성 추구가 ‘순전한 무사유’에서 비롯되었을 뿐 아니라, ‘치열한 사유’로 계속해서 이어지기 때문이다." (p.340~341)


 

이 해설을 읽고 나니 <구의 집>이 왜 그렇게 소름 돋고 무서웠는지 깨닫게 되었다. 단순히 순응하는 것을 넘어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그의 노력은 인간을 완전히 타자화하고 배제하려는 적극적인 행동으로 보였다. 그리고 그 지점에서 사람들 간에 통용되는 보편적인 감정과 사고체계가 완전히 다른 사람을 볼 때 생기는 공포감 같은 것이 느껴졌다. 동시에 그러한 구보승이 우리와 다를 것 없는 '평범한' 사람이라는 점에서 일종의 경각심을 가지게 된다. 과연 나는 어디까지 행할 수 있을까? 나와 저 사람 사이에는 과연 얼마나 많은 차이가 존재할까?

 

 

 

청춘의 종말에서


 

<메탈>은 메탈이라는 비주류 장르를 공통점으로 뭉쳤던 친구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서 조금씩 멀어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누군가의 잘못이 아니라 그저 자연스레 각자 다른 삶의 방향을 걷게 되며 벌어지는 일이기에 보는 내내 씁쓸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러나 앞서 각각의 단편들이 저마다의 찜찜함을 품은 채 끝이 났던 것과 달리, <메탈>은 드물게도 희망이 존재하는 마무리를 보여준다. 싸우고서 연락이 끊긴 친구에게 몇 년 만에 전화를 하는 장면으로 끝이 난 것이다. 물론 친구가 전화를 받을지 받지 않을지, 설령 받는다 해도 그때의 우정을 회복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어쩌면 연락을 하지 않느니만 못한 상황이 펼쳐질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장면에서 어쩌면 끝나버렸던 무언가가 다시 시작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느껴졌다. 이야기 내내 청춘의 한 시절이 저무는 모습을 보여줬지만 어쩌면 끝이 영원히 끝으로 남아있지 않을 수도 있다. 영원할 것 같았던 모든 것이 변하기 마련이라면, 종결되어 끝나버린 무언가도 다시 시작될 수 있지 않겠는가.

 

학창 시절의 친구와 멀어지고 열정을 불태우던 음악과도 이별하는 모습에서 쌉싸름함을 느끼다가도, 그렇기에 이야기의 마침표를 읽고 나면 괜히 어떠한 희망을 갖게 되는 것이다. 앞선 단편들이 꽤나 암울한 느낌으로 마무리되었다는 점을 생각해 보니 책을 마치는 이야기가 <메탈>이었다는 것이 왜인지 다정하게 느껴졌다.

 

책의 뒤표지에는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가짜인가. 그 경계에서 ‘혼모노’를 묻다”라고 적혀있다. 이 말처럼, <혼모노>는 책을 읽는 내내 무엇이 ‘진짜’인가를 계속해서 반문하게 되는 책이었다. 진짜와 가짜의 경계선은 어디인지, 왜 우리가 진짜라고 여겼던 것들이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은지 같은 것들을 끊임없이 생각하게 된다. 아마 '진짜'를 찾는 과정은 더디고 힘들 것이다. '진짜'는커녕 '진짜 가짜'도 되지 못한, '가짜 가짜'가 될지도 모를 노릇이다.

 

그러나 '진짜'와 '가짜'를 묻는 질문에서 중요한 것은 둘의 차이를 아는 것, 둘의 구분이 왜 필요한지를 아는 것이리라 생각한다. 그러니 생각을 게을리하지 말자. 설사 진짜가 되지 못한다 하더라도 중요한 것은 그것을 추구하는 과정에 있을 테니까. 그리고 그 과정에서 <혼모노>는 끊임없이 경각심을 일깨워 주며 생각을 곱씹게 해줄 동반자가 되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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