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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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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리뷰는 뮤지컬 <펑크>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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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으로간나비

 

 

내가 나라서 견딜 수 없는 때가 있다.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의 인물들처럼, 그렇게 스스로가 도저히 견디기 어려울 때면 거대한 '무가치함의 벽' 앞에 선 기분이 든다. 결국 모든 인간은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지난 3월에 개막한 섬으로간나비의 뮤지컬 <펑크>(윤상원 작/연출, 이정연 작곡, 대학로 자유극장, 2026.03.10.~05.31.)는 바로 그 '나를 견디기 어려운 순간'에서부터 출발하는 작품이다.

 

 

 

살아가는 데 무슨 이유가 필요해?


 

'가까운 미래'라고 하면 당장 눈앞에는 어떤 풍경이 펼쳐지는가. 뮤지컬 <펑크>가 그리는 가까운 미래는 디스토피아에 가깝다. 세계는 인간의 낙원 '에덴'과 버려진 클론들의 쓰레기장 '인페르노', 두 곳으로 나뉜다. 기술의 발전으로 영원한 젊음을 얻은 인간들은 가상현실에 빠져 쾌락과 허무에 잠식된 좀비로 전락했고, 이 완벽한 에덴은 AI 아르케가 통치한다. 클론은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기 위해 만들어진 인조인간으로, 인간을 복제해 탄생했지만 결국 인간은 될 수 없는 비극을 타고난 존재다.


서로를 공격하고 약자의 것을 빼앗는 행위가 당연해진 죽음의 땅, 인페르노. 이곳에 폐기된 클론들은 자신이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곳은 에덴뿐이라고 믿는다. 시스템이 그들에게 다음과 같은 사상을 주입했기 때문이다.

 

 

클론은 도구입니다. 인간이 아닙니다.

클론의 존재가치는 에덴을 위한 노동력 제공에만 있습니다.

안드로이드를 보조하려면 기억 데이터를 삭제해야 합니다.

 

 

인페르노의 클론 '레오'는 에덴 진입을 위한 AI 시험에서 감정을 드러내는 바람에 탈락한다. 레오가 그토록 에덴을 바라는 이유는 단순하다. 시스템이 말해준 것처럼, 클론이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곳은 에덴뿐이니까. 그런 레오의 욕망은 단 하나, 에덴에 가서 인간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한 레오는 그저 죽음만을 기다리는 처지에 놓인다.

 

'글렌'은 지상 낙원이라는 에덴을 스스로 저버리고 쓰레기장 인페르노에 굴러들어 온 알 수 없는 캐릭터다. 그는 자신의 AI '리베르'와 함께 폐공장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데, 소문을 듣고 글렌을 찾아간 레오는 그의 기타 연주를 들으며 처음으로 자신의 심장 소리를 감각한다. 음악을 통해 인간성을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을 품은 레오는 자신의 친구이자 같은 클론인 '잭'을 끌어들여 글렌과 함께 밴드를 결성한다. 잭은 살아남는 것 자체가 목적인 현실적인 캐릭터다. 인페르노에서 살아남기 위해 갱에 들어가기도 하지만, 레오를 통해 음악의 힘을 깨닫게 된 잭은 비로소 꿈을 꾸며 변화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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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으로간나비

 

 

이 디스토피아 세계관 속 캐릭터들은 스스로가 견디기 어려운 상태에서 출발한다. 자신의 존재 가치를 간절히 찾고자 한 레오는 에덴 진입에 실패한 순간, 원해서 태어난 것도 아닌 이 세상에서 평생을 공포와 두려움 속에 살아야 한다는 분노에 잠식되고, 클론의 처지를 벗어나지 못함을 비관한다.

 

글렌 역시 한때 다른 인간들처럼 가상현실에 빠져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음악을 듣고 깨어난 그는 자신을 일깨운 음악으로 다른 인간들까지 구하고자 했으나 실패하고, 인페르노에 내려왔다. 그 후 죽지도 못하고 살아가던 글렌은 차라리 죽음을 욕망하기에 이른다. 자신이 꿈꾸던 이상이 완전히 산산조각 난 지금, 글렌은 스스로를 견디기가 어렵다.


잭은 살기 위해 누군가를 다치게 했을 때 고통을 느꼈다. 약한 자는 모두 죽는다는 인페르노의 법칙 속에서도, 자신이 해친 클론의 눈빛을 잊지 못하는 잭은 생존의 경계에서 마주한 참혹한 현실을 견디기 힘들다. 이렇게 스스로를 괴롭히는 상황 속에 허덕이던 캐릭터들이 마침내 삶의 이유를 되찾는 순간은 바로 음악, 즉 밴드를 결성했을 때다.

 

 

 

나는 오직 음악만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고 믿어


 

뮤지컬 <펑크>의 각성 계기는 음악이다. 뮤지컬에서 필수 불가결한 요소를 꼽으라면 주저 없이 넘버라고 대답할 수 있을 텐데, 이러한 넘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에서 나아가 극 중에서 인간을 각성시킬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음악'이라는 설정을 덧붙였을 때는 객석에 앉은 관객들까지 손쉽게 몰입시킬 수 있게 된다. 특히 이 공연은 음악 디자인을 통해 극 중 세계관을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펑크>의 두 번째 넘버 '차가운 천사'에서는 주인공 레오가 가진 목표가 본격적으로 드러난다. 이는 레오의 '아이 원트 송(I want song)'이라고 볼 수 있겠다. 아이 원트 송은 주인공의 욕망을 가장 단적으로 드러내는 넘버인데, 이 곡에서 레오는 클론으로 태어난 것에 대한 절망과 에덴에 대한 갈망을 표출하고, 이를 통해 관객은 본격적으로 <펑크>의 세계관에 편입된다. 해당 넘버에서 드러나는 기계적인 음향과 연출은 작품의 배경인 디스토피아적 미래 설정과 사이버펑크적인 분위기를 잘 나타낸다.


그리고 <펑크>는 특히 '락 뮤지컬'의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다. 제목으로 택한 장르인 '펑크(PUNK)'는 누구나 할 수 있다는 DIY 펑크 정신을 주된 콘셉트로 삼고 있음을 드러낸다. 글렌은 음악만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고 믿는 캐릭터이며, 레오 역시 음악으로 심장 박동을 감각하며 인간성에 대한 희망을 엿보게 된다. 락은 저항과 자유의 상징이자, 연대를 표출하는 장르인데, 에덴이라는 주류에서 밀려난 비주류끼리의 연대가 바로 그 락을 통해 드러난다는 점, 그중에서도 특히 펑크를 활용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이 어떤 콘셉트와 주제를 가지고 가는지 확실히 알 수 있다.

 

락 뮤지컬답게 커튼콜 이후로 이어진 앵콜은 유독 기억에 남는다. 관객들이 다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 배우의 노래에 맞춰 박수를 치고 노래를 따라 부르도록 만든다는 점에서, 이 작품이 의도한 바가 확연히 다가왔다. 인간성을 잃어가는 현재의 세태를 돌아본 캐릭터들은 음악으로 인간성을 일깨우고자 한다. 앵콜의 목적은 관객들의 심장을 울리고, 노래를 따라 부르게 만드는 것인데, 뮤지컬 <펑크>는 이를 통해 관객을 작품 속으로 끌어들이며 최종적으로는 인간성과 예술에 대한 의미를 되묻는다.

 

 

 

당신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


 

그렇다면 그토록 외치는 인간성은 대체 무엇인가. 인간이 되고 싶은 레오와 인간성을 잃은 인간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을 가진 글렌을 보면 과연 인간성이라는 게 뭔지, 그리고 인간과 비인간을 구분 짓는 것은 또 무엇인지 되묻게 된다.

 

인간은 기억으로 이어진 존재다. 탄생에서부터 시작해 현재의 '내 모습'까지, 그 시간들을 이어주는 것은 결국 기억이 아닐까. 나만이 가진 고유한 기억이 이 몸 전체를 구성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기억'만으로는 부족해진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특히 <펑크> 속 클론이 받는 취급을 보면 더더욱 비슷한 질문을 하게 된다. 인간을 복제해 만들어진 클론은 태어나자마자 청년이 되는 존재이자 '기억 데이터'를 주입받는 존재인데, 모든 단계를 건너뛰고 청년에서부터 시작하는 클론의 기억은 온전하고 고유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이렇게 기억이 복제되고 주입되는 게 당연시되는 시대라면, 우리는 무엇에 기대어 '나' 자신을 설명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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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으로간나비


 

<펑크>는 그 답을 '감각'에서 찾은 것 같다. 음악을 통해 자신의 심장 박동을 자각한 레오가 글렌의 연주를 들으며 새로운 감각을 느꼈다고 고백하는 장면이 그 증거다. 기억은 주입받은 데이터일 뿐이지만, 그가 느낀 감각은 속일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인물들은 바로 그 감각을 불러일으키는 음악을 통해 세상을 변화시키려고 한다. 이제는 내가 가진 고유한 기억에서 더 나아가, 나만이 느낀 고유한 감각에 집중해야 할 때가 아닐까.

 

 

 

(     )가 세상을 바꾼다


 

그렇다면 당신을 인간답게 만드는 단 한 가지는 무엇인가. 나아가 그것은 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 뮤지컬 <펑크>가 찾은 답은 음악이었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정답이 있을 것이다. "(     )가 세상을 바꾼다"의 빈칸을 채워야 한다면 당신은 어떤 대답을 하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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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으로간나비

 

 

뮤지컬 <펑크>는 특히 장르적 특징을 잘 살린 음악과 조명 연출로 눈과 귀를 즐겁게 한 작품이다. 또한, 인간성이 흔들리고 있는 현시대에 유효한 질문을 건넨다는 점이 인상 깊다. 그에 더해 인간에 대한 회의를 품은 인간이 도리어 클론을 통해 다시 인간적으로 변화한다는 설정 역시 흥미롭다.


공연이 끝나고도 계속 곱씹을 만한 질문을 남긴다는 점도 좋다. 결국 당신을 인간답게 하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 말이다. 무언가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면, 그 무언가는 무엇일까. 극 중 캐릭터들은 락을 통해 저항과 연대를 외치지만, 이것은 정답이 없는 질문이다. 우리 각자만의 대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삶의 중심과 방향성을 잡아야 한다는 뮤지컬 <펑크>는 기억이 데이터화되고 감각이 희미해지는 현시대에 가장 필요한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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