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
요즘은 정말 휴대폰만 있으면 안 되는 게 없긴 합니다. 한창 삼성페이가 각광받고 있을 때 아이폰 유저라 무조건 카드를 들고 다녔는데, 요새는 다른 간편결제들이 많이 발전해서 저도 지갑을 들고 다니지 않아도 되더라고요. 말고도 휴대폰 하나와 충전기만 있으면 그냥 아무것도 없이 하루 종일 시간도 보낼 수 있을 것 같고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편리함을 위해 휴대폰에다가 개인 정보를 이것저것 많이 저장하게 되니 약간 두려움도 들긴 합니다. 잠금 장치를 설정해두긴 했지만, 혹시라도 이 비싼 휴대폰을 잃어버리기라도 한다면 어쩌나-하고 말이죠. 핸드폰을 새로 사야 하는 건 둘째 치고, 이미 저장되어 있는 많은 데이터를 새로운 휴대폰에 다시 옮기려면 정—말 불편할 것 같습니다. 휴대폰에 담긴 개인 정보가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는 게 가장 큰 걱정이기도 하고요. 또, 요새는 핸드폰에 랜섬웨어를 설치해서 데이터를 빼가기도 한다는데, 세상이 발전해가면서 여러모로 장단점이 뚜렷하긴 합니다.
그리고 그런 상상을 현실로 만든 영화가 하나 있습니다. 내가 잃어버린 휴대폰을 누군가 습득해서, 그 안에 든 정보로 나를 괴롭히고 고통을 주는 사람이 있다면 어떨까요?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우리를 공포에 빠뜨리게 할까요? 이번에 소개해드릴 작품은 영화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입니다.
STORY
스마트폰을 분실한 여자와 그것을 주운 위험한 남자. 남자는 여자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며 그녀의 삶을 흔들어 놓는다.
주인공 나미(배우 천우희)는 굉장히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한 청년입니다. 휴대폰 하나로 친구들하고 메신저도 하고, 사진도 찍고, 통화도 하고, SNS도 하고, 일도 하는 등 다재다능한 편이기도 하죠. 휴대폰만 있으면 안 되는 게 없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친구들과의 약속에서 인사불성이 될 정도로 술을 마신 나미는 집에 가는 버스 안에서 휴대폰을 잃어버리고 맙니다.
나미는 다음날 친구가 집에 놀러 오고 나서야 휴대폰을 잃어버렸고, 다행히도 어떤 친절한 여성분이 습득하여 보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휴대폰을 돌려받기 위해 한 카페에서 기다리던 나미는 카페로 걸려오는 전화에서, 습득하신 여성분이 자신이 실수로 휴대폰을 떨어뜨려 액정이 깨졌고, 이를 수리센터에 맡겼다는 내용을 듣습니다.
액정을 깨뜨렸단 얘기와 요청하지도 않았는데 멋대로 수리센터에 맡겨버리는 행동에 살짝 화도 나고 당황스러웠지만, 어쨌든 돌려는 받아야 하니 나미는 여성분이 알려준 수리센터로 향하게 됩니다. 허름한 건물에 위치한 수리센터를 방문하니 수리기사가 휴대전화 기종이나 잠금 비밀번호와 같은 휴대폰 정보를 작성해달라고 요청합니다. 필요한 내용을 쓰고 잠시 기다리니 액정 교체가 끝이 났고, 새것 같은 휴대폰을 가지고 나미는 바로 친구에게 연락을 합니다.
그런데 웬걸, 조금 전 수리기사(배우 임시완)의 노트북에 나미의 얼굴과 나미가 휴대폰 화면이 가감 없이 그대로 뜨기 시작합니다. 나미가 작성하는 타자 내용이며, 통화 내용까지 모두요. 심지어 그냥 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나미가 보내지 않은 문자를 보내는 등 나미의 휴대폰을 직접 조작까지 합니다.
이 남자는 도대체 나미의 휴대폰에 무슨 짓을 한 걸까요? 그리고 목적이 뭘까요?
COMMENT
영화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는 시가 아키라 작가의 베스트셀러 동명 소설이 원작으로, 2023년에 리메이크를 진행한 영화입니다. 해당 소설은 ‘제15회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대상’에서 히든카드상을 받았다고 해요. 일본에서도 동일하게 2018년에 해당 소설을 기반으로 영화를 만들기도 했고요.
영화 초반부에서도 나오지만, 우준영은 남이 잃어버린 휴대전화를 습득해 스파이웨어를 설치하게 유도하고, 그 휴대폰을 통해 그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합니다. 단순히 휴대폰 내용만 볼 수 있는 게 아니라, 카메라까지 해킹하여 전면/후면 카메라로 비춰지는 것까지 모두요. 직접적인 사용도 가능해서, 나미의 휴대폰에 계정 로그인이 된 어플에 접속해 비밀 계정에 게시글을 올리기까지 합니다. 이런 방식으로 종국에는 상대를 사회적으로 고립시키고 살인까지 저지르죠.
이 영화는 15세 관람가인 만큼 작중 내에서 직접적인 살인 장면을 보여주지는 않습니다. 누가 살인을 저질렀고, 어떤 식으로 저질렀는지 알 수 있는 정도로만 나타납니다. 근데도 저는 이 영화가 꽤 무섭다고 느꼈어요. 장기가 튀어나온다든지, 이질적이고 괴상한 귀신이나 괴물이 나오는 게 아닌데도 말예요. 오히려 현실감이 있어서 무서웠습니다. 살인까지 당할지 안 당할지는 모르겠지만, 핸드폰을 잃어버렸을 때 나의 모든 사생활이 노출될 수도 있겠다는게 말예요. 부끄러운 삶을 산 건 아니지만, 내 일상이 누군가에게 24시간 빠짐없이 비춰진다는 건 소름 돋는 일입니다.
또한 '로맨스릴러' 같은 느낌도 들게 하여 공포감을 더 심어주지 않았나 싶어요. 우준영은 나미가 즐겨하는 게임, 좋아하는 운동경기 팀 등 휴대폰 속의 정보를 수집하여 마치 자신도 같은 취향을 가진 것마냥 나미가 자신에게 호감을 갖도록 유인합니다. 근데 솔직히, 처음 보는 남자지만 나랑 취향도 비슷하고 얼굴도 잘생겼는데(..) 어떻게 안 끌리겠어요. 직접적으로 두 사람이 연인과 같은 모습이 보이지는 않지만, 중간에 나미는 "~하면 괜찮을 것 같아." 하면서 다소 긍정의 말을 하기도 했거든요. 물론 모르는 사람은 언제든 조심하는 게 맞습니다.
원작에서는 범인이 아동학대를 경험했다는 설정을 보이는데, 영화에서는 이에 대해 자세하게 알려주지 않습니다. 그래서인지 ‘과거에 아픔을 가진 가해자’라는 프레임 없이, 사이코패스적인 면모가 더 돋보여서 좋았습니다. 완벽하게 악인으로만 볼 수 있었으니까요. 물론 <사연 없는 가해자는 없다>라는 글을 쓴 적이 있긴 하지만, 100명 중 두세 명 정도는 사연이 없는 가해자가 있을 수도 있겠죠.
영화는 꽤나 명백하게 주제 의식을 드러내요. “휴대폰을 잃어버리지 않게 조심하자.” 아니,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요. [휴대폰을 내 목숨처럼 소중히]라는 어이없는 제목을 썼듯이, 이 영화에서는 휴대폰 잃어버린 게 제일 큰 죄입니다. 개인 정보가 가득 들어있는 휴대전화를 잃어버리는 순간 엄청난 일어날 수도 있음을 영화가 보여줬으니까요. 작중에서도 우준영은 나한테 왜 이러냐는 나미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네 폰, 내가 주웠으니까.
이게 뭔 x소리야
그렇지만 우리가 휴대폰을 잃어버리고 싶어서 잃어버린 건 아니잖아요? 잠깐 옆에 뒀는데 그 사이에 누가 훔쳐갔을 수도 있고, 분명히 잘 수납했는데 나도 모르던 가방에 구멍이 있어 그 사이로 흘렸을 수도 있고.. 의지와는 상관 없이 일어난 일이 대부분이겠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조심 또 조심해야겠더라고요. 조심한다고 해서 나쁠 건 없으니까요. 앞서 말했듯이 저는 이 영화가 생각보다 리얼리티하게 다가와서 무섭더라고요. 물론 배우들의 현실감 있는 연기가 한몫 하긴 했겠지만요.
요즘 영화들을 보면 공권력을 가진 경찰이 맥을 못 추리는 경우가 많던데, 이 영화에서도 비슷합니다. 범인을 잡는 사람이 경찰이 아니라 나미라고 하는 게 맞을 것 같아요. 경찰은.. 언제 나미를 도와주러 오는지 긴장감 유발 + 총 빌려주는 사람 정도일까요.
이 사건을 해결한 것은 대부분 나미의 임기응변 덕분입니다. 나미는 범인을 잡을 수 있도록 자신이 직접 미끼를 자처하기도 하고, 자신의 휴대폰이 도청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용해서 범인에게 혼선을 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경찰은 미끼 역할을 맡았을 때 준영을 포위하긴 했지만 그냥 보내주게 되고, 살려달라는 메시지에도 꽤나 늦게 도착합니다. 그 때문에 나미는 아버지와 함께 죽을 뻔한 위기에 놓이기도 하고요.
아무래도 주인공을 돋보이게 하려는 이유가 있을 수도 있겠다만, 회사 다니던 한낱 일반인이 살인을 저지르는 사이코패스를 어떻게 쉽사리 상대하겠어요. 가끔은 제대로 된 정의구현도 좀 봐보고 싶기는 합니다.
OUTRO
영화 스틸컷을 찾다보니 다른 분들의 리뷰도 같이 접하게 되었는데요, 생각보다 비평이 많더라고요. 물론 이 영화가 엄청나게 완벽하지는 않다는 점에는 저도 동감합니다. 그래도 나름 볼만했어요. 저도 지인의 추천으로 보게 되었거든요.
또, 이 글을 쓰고 있을 때 한 통신사에서 해킹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일반적인 정보 유출과는 차원이 달라 고객들이 너도나도 유심을 변경하기 바쁩니다. 저는 다행히도 해당 통신사를 이용하고 있지 않았지만, 저를 제외한 가족 모두가 해당 통신사를 사용하고 있어 모두 근심걱정입니다. 관련있는 통신사 측에서 명확히 어떤 해결책을 내려줄지, 방도와 방법을 제대로 알려주지 않고 있고요. 왠지 조만간 이 영화와 비슷한 일이 많이 일어날 수도 있을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