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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SS] 왜 어떤 죽음은 쇄골에 잠들고 있을까? 연극 ‘쇄골에 천사가 잠들고 있다’

상실을 기억하는 방법

by 김나윤 에디터
2026.08.25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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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쇄골에 천사가 잠들고 있다>(극단 불의전차)는 일본의 극작가 ‘핑크 지저인 3호’의 동명 희곡을 원작으로 한다. 작품은 ISIL 일본인 인질 사건을 모티브로 삼는데, 이는 민간 군사 회사의 대표 유카와 하루나가 시리아에 납치를 당하고, 저널리스트 고토 겐지가 그를 구하러 갔다가 두 사람 모두 사망하게 된 사건이다. 당시 일본 사회는 이들이 공동체에 폐를 끼쳤다고 평가하며 비난을 가했다.


핑크 지저인 3호는 조금 다른 시선으로 사건에 접근했다. 그는 유카와의 블로그에서 “나는 항상 고독해.”라는 문장을 만난다. 그리고 이후 장례 지도사로 일하면서 그의 고독에 관해 생각하게 된다. 이 이력은 연극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된다. 연극 <쇄골에 천사가 잠들고 있다>는 한 인간의 고독한 죽음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생명이 꺼진 타인의 신체를 마주하며, 생전 그의 고독을 가늠해 보는 일. 이승을 떠난 타인을 마지막까지 잘 배웅해 주는 일. 연극은 장례 지도사 '토루'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며, 그 일을 서사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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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루의 옛 스승이자 요시오의 아버지인 켄토의 장례식으로 연극은 시작한다. 그때 토루의 옛 친구인 요시오가 눈앞에 나타난다. 그는 몇 년 전에 터키와 시리아 국경으로 갔다가 죽음을 맞은 인물이다. 작품은 2015년 현재와 요시오와 토루가 함께했던 2005년 과거를 번갈아 보여 주며 요시오라는 한 인간의 시간을 되짚기 시작한다. 녹슨 펜스로 둘러싸인 마당, 차고를 개조한 요시오의 방, 낡은 벤치와 야구 방망이, 여름 햇빛이 내리쬐는 지붕. 오로지 조명과 인물들의 의상만으로 과거와 현재가 중첩된다.


요시오는 귀신이나, 초월적인 존재라기보다는 ‘과거에서 소환된 상실’에 가깝다. 죽은 요시오가 토루 눈앞에 등장하고, 현재에 과거가 틈입하는 것은 살아 있는 사람들이 요시오를 불러내기 때문이다. 과거와 현재를 오갈 때의 연출은 그런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연극 <쇄골에 천사가 잠들고 있다>는 현재에서 과거로, 과거에서 현재로 넘어갈 때 의도적인 균열을 만든다.


 

현재(2015년 7월)

교코 …하나 안 좋은 일이 일어나면, 또 안 좋은 일이 일어나고, 영원히 끝나지 않아. …그 책을 내면, 이 끔찍한 일들을 끝낼 수 있는 건가요?

 

과거(2005년 7월)

[중략]

 

현재(2015년 7월)

교코 …하나 안 좋은 일이 일어나면, 또 안 좋은 일이 일어나고, 영원히 끝나지 않아. …그 책을 내면, 이 끔찍한 일들을 끝낼 수 있는 건가요?

마사미 …모르겠어요. 하지만 난 끊고 싶어요.

 

- 핑크 지저인 3호 지음, 곽윤미 옮김, 『쇄골에 천사가 잠들고 있다』, 지만지드라마, 81~114쪽

 

 

보통의 연극은 물 흐르듯 장면을 전환하며 과거와 현재를 연결한다. 반면, 이 작품은 같은 대사를 현재에서 과거로 넘어갈 때 한 번, 다시 과거에서 현재로 넘어올 때 한 번 반복한다. 이는 원작 희곡에서부터 의도되었던 것으로, 마치 옷에 천을 깁는 것처럼 시간을 매끄럽지 않게 처리한다. 선형적으로 흐르는 현재의 시간에 과거를 덧대어 넣는 것처럼 느껴지게 하는 것이다.


무대 상단을 가로지르는 초록색 조명도 유사한 역할을 한다. 과거와 현재를 오갈 때, 초록색 직선 조명이 영문 모를 모양으로 나타난다. 작품 후반부에 가서야 의미가 선명해지는데, 이는 사실 요시오가 전쟁터에서 봤던 국경 경비대의 서치라이트를 표현한 것이다. 이 조명은 요시오가 마주했던 죽음의 현장을 뒤늦게 가리키며 과거와 현재를 가른다. 연극의 후반에 등장하는 조명을 앞에서부터 맥락 없이 노출하는 것은 자연스럽지 못하다. 이 부자연스러움은 과거를 마땅히 지나간 시간이 아닌, 현재를 통해 끄집어내어지는 인위적인 시간으로 느껴지게 한다.

 

'잠들고 있다'라는 제목의 현재 진행형 문법 또한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이미 과거형인 타인의 죽음을 지금 이 시점에서 기억하려고 언어화하려는 움직임이 함축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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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떠난 타인의 내면은 제한적으로나마 엿볼 수 있다. 요시오의 방은 얇은 커튼으로 가려져 있다. 토루와 관객들은 딱 그만큼만 요시오의 내면을 짐작할 수 있다. 그가 자신의 성 정체성으로 인해 혼란을 느끼는 모습이나, 진실을 담는 카메라 앞에서 자유로워진 모습을 어렴풋하게나마 볼 수 있을 뿐이다. 요시오는 자신만의 공간이 필요한 동시에, 그곳에 있는 자기 내면을 누군가가 알아봐 주기를 원했다. 그가 전쟁터로 향한 것 역시 자신과 같은 마이너리티의 존재를 더 널리 알리고, 자신의 목소리로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였다. 살아 있는 동안 자신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인정받고 싶어했던 요시오. 그는 죽은 뒤에야 주변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가시화된다.

 

그러나 직접 보지 못한 죽음은 어떻게 기억할 수 있을까. 작품의 말미, 시리아와 터키의 국경에서 벌어지는 전쟁의 참상과 인질로 잡힌 요시오의 모습은 암전 속 소리로만 들린다. 어둠 속에서 텍스트로만, 그것도 요시오의 목소리로만 그려지는 고문의 현장. 그것은 전쟁을 보여 주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그 참혹함을 보여 주는 것인 동시에, 요시오 본인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직접 목도하지 못한 것이기에 장면화하지 못하는 것이기도 하다. 토루와 관객들은 요시오의 죽음을 통해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생각하게 되지만, 투명한 커튼과 달리 새까만 암전 속에서는 그가 어떤 모습으로 죽어갔는지 보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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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왜 ‘쇄골’일까. 변영진 연출은 우리 심장에서 쇄골이 가장 가깝다는 점, 전 세계에서 모든 인종이 쇄골만큼은 크기, 형태, 무게가 똑같다는 점, 일본 정서에서 쇄골이 아름답고 특이하게 많이 쓰인다는 점을 들어 그 까닭을 설명했다(《공연과 이론》 2023년 여름호(통권 90호)). 심장과 가까우면서도 손으로 매만질 수 있는, 그러면서도 연약한 곳에 요시오는 누나 카즈에를, 토루는 친구 요시오를 간직했다. 그것은 어떤 죽음을 고독하게 두지 않고, 내 삶 근처에 두겠다는 태도일 것이다.


작품에서 유우카는 하이데거를 인용하며, “‘죽음’이라는 말이 있어야지 ‘죽음’이 생겨.”라고 말한다. 그것은 아들을, 친구를, 또 딸을, 누나를, 그리고 남편을 떠나보냈다는 것을 부정하려는 논리가 아니다. 이제는 다시 만날 수 없는 사람을 어떻게 기억하고 간직할 것이냐의 문제이다. 그래서 마사미는 남편 타쿠지와 요시오에 관한 책을 쓰려고 하고, 토루는 쇄골에 요시오를 간직하며 그의 육체를 씻어 주는 '탕관' 의식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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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작가 핑크 지저인 3호가 유카와를 간직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공동체에 폐를 끼쳤다고, 원래 이상한 사람이었다고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고독을 읽어내고, 그라는 사람을 내 방식대로 기억하는 것. 작가는 그것을 “오만한 생각”이라고 자학하기도 하지만, 산자가 망자를 소환하고 기억할 때 오만은 불가피하다. “나는 네 생각과는 다른 사람이야.”라고 항변할 사람이 떠나고 없는 곳에서, 우리는 오만한 상상력으로나마 그를 불러내고 기억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얼룩덜룩 깁은 시간일지라도, 정체 모를 구분선이 그 사이를 가로지를지라도, 타인이 겪은 고통을 감히 두 눈으로 보지 못할지라도. 누군가의 상실을 심장 근처, 연약한 자리에 오래 간직하는 것. 다 끝난 과거가 아니라, 현재 진행형으로 상실을 받아들이고 내 방식대로 언어화하는 것. 그렇게 어떤 죽음은 지금도 쇄골에 잠들고 있다.

 

 

참고: 김혜정 정리, [토론] 〈쇄골에 천사가 잠들고 있다〉, 《공연과 이론》 2023년 여름호(통권 90호), 공연과이론을위한모임,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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