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Review] 나는 정말 원숭이가 맞을까? - 뱅크시 : Still Here

뱅크시의 저항을 소비하는 사람들

by 이지연 에디터
2026.08.15 14:17

뱅크시_Still Here_포스터_260619.jpg


 

Art should comfort the disturbed

and disturb the comforable

 

예술은 불안한 사람을 위로하고

안락한 사람을 불편하게 해야 한다

 

 

얼굴 없는 거리 예술가 뱅크시(Banksy)의 유명한 철학이다. 그는 사회의 모순이나 타락한 현실, 권력자의 어리석음을 우스꽝스럽게 표현한다. 피켓을 들고 소리치는 대신 벽면에 원숭이를 그린다. 영국 여왕을 닮은 '몽키 퀸'을.

 

이번 「BANKSY: Still Here」 특별전은 '더현대 서울'에서 열렸다. 더운 날, 백화점으로 들어서자마자 피부에 닿는 냉기에 숨통이 트였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며 문화공간을 구경하다가 꼭대기 층에 도착했다. 전시는 6층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창의적인 작품들을 빨리 구경하고 싶다는 생각에 발걸음이 빨라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불안한 사람이라고 믿었다.

 

그래피티를 옮겨놓은 공간에서 카타르시스와 웃음, 그리고 위로를 얻을 것으로 여겼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생겨난 감정은 예상치 못한 불편함이었다.

 


 

쇼핑백을 든 그리스도


 

KakaoTalk_20260815_011654586.jpg

 

 

신성모독에 가까운 불경한 그림이지만 무교인지라 그저 웃기기만 했다. 어릴 적에 가졌던 의문과도 연결되는 부분이 있었다.

 

 
예수 생일인데 왜 본인들에게 선물을 주는 거지?
 

 

단순한 '연말 기념 축제'였다면 아무런 질문이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남의 생일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의아해졌다. 분위기에 편승하여 케이크를 먹고, 코트를 사고, 트리 앞에서 사진 찍다가도 문득 궁금해지곤 했다.

 

뱅크시는 한술 더 떠서 종교의 영역까지 침투한 소비주의를 주제로 삼았다. 자선과 연민, 용서와 감사와 같은 기독교의 본래 가치는 무거운 쇼핑백에 밀려났고, 예수는 별로 신성치 못한 무게를 감당하고 있다.

 

이때까지는 전시가 즐거웠다. 본격적으로 웃음기가 사라진 것은...

 

 

 

페스티벌 (자본주의 붕괴)


 

KakaoTalk_20260815_015924689.jpg

 

 

아래의 작품이 바로 「페스티벌 (자본주의 붕괴)」이다. 펑크, 고스, 히피 스타일을 한 사람들이 나란히 서 있다. 'Destroy Capitalism'라고 적힌 티셔츠를 사기 위해서.


 
저항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문화가 소비의 대상이 되는 순간, 비판은 체제 안으로 흡수된다. '자본주의를 파괴하라'는 선언은 더 이상 체제 밖의 외침이 아니라, 소비 가능한 상품이 되어버린 것이다. /작품설명
 

 

우스꽝스러운 '타자'의 모습이라고 생각하며 웃음을 터트렸다. 하지만 점점 입꼬리가 내려왔다.

 

나 역시 전시장에 들어오기 전에 사람들과 나란히 줄을 서 있었다. 복도 벽면에 딱 붙어서.

 

 

 

풍선과 소녀


 

다음 챕터에서는 기분이 더욱 이상해졌다. 뱅크시의 가장 유명한 대표작을 마주쳤기 때문이다. 방금 느낀 위화감이 실물 형태로 작품화되어 있었다.

 

 

사진-크기-001.jpg

 

 

해당 작품은 런던의 거리 벽화로 처음 등장했다. 벽화 옆에는 '희망은 언제나 존재한다'는 문구가 있었다. 「풍선을 든 소녀」는 뱅크시를 상징하는 이미지이자 영국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그림이 되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소녀의 의미도 달라졌다. 경매에 출품되어 상징에서 소유로 넘어가려던 그 순간, 낙찰과 동시에 그림이 파쇄된 것이다.

 

알고 보니 뱅크시가 경매 전날 직접 파쇄 장치를 설치해 두었다. 예술이 거대한 자본과 투기의 대상이 되어버린 미술시장을 향한 조롱이었다. 작품명은 「러브 이즈 인더 빈」으로 바뀌었다. 직역하면 '사랑은 쓰레기통에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작품의 가격은 오히려 올랐다.


만인의 희망을 특정 개인이 점유하게 되었고, 풍선을 띄웠던 원작자는 저항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저항에도 값이 매겨졌다. Love is in the bin, 뱅크시의 분노는 한화 약 300억 원이었다.

 



안락한 사람



 

더운 날, 백화점으로 들어서자마자 피부에 닿는 냉기에 숨통이 트였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며 문화공간을 구경하다가 꼭대기 층에 도착했다. 창의적인 작품들을 빨리 구경하고 싶다는 생각에 발걸음이 빨라졌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의 느낌이 달랐다. 그저 예쁘게만 느껴지던 녹색 정원에서 어쩐지 이질감이 들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니 발렌시아가, 루이비통, 프라다 매장이 보였다.

 

자본주의가 가장 화려하게 드러나는 공간에서 권력과 자본이 만들어낸 사회의 모순을 비판하고 있던 것이다.


*

 

전시를 주최한 더현대를 비난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저항은 신성하니 자본과 얽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동시에 모순이 우스운 것도 사실이다.

 

그 모순 속에서 처음부터 위화감을 느끼지 못한 스스로에 대한 민망함도 느껴졌다. 예술은 불안한 사람을 위로하고 안락한 사람을 불편하게 해야 한다. 여기에서 '안락한 사람'은 고위층이나 권력층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 것 같다. 현재의 질서에 큰 불편함을 느끼지 않고 안주하는 사람이라면 전부 원문의 the comfortable에 해당될 수 있다.

 

뱅크시의 세계관에서는 불안한 사람과 안락한 사람이 이분법적으로 분리되지 않는 것 같다.

 

 

 

지금은 웃어라


 

KakaoTalk_20260815_033510563.jpg

 

 

전시 초반에 감상했던 작품도 다시 보였다. 원숭이가 '지금은 웃어라. 하지만 언젠가는 우리가 세상을 지배하게 될 것이다'라고 적힌 샌드위치 보드를 목에 걸고 있다. 이때 해당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권력층이 아니다. 평범한 소시민이다. 하지만 전쟁이나 자본주의에 대한 별다른 저항 의식은 없을 가능성이 크다. 세상의 부조리를 어렴풋이 알지만 굳이 맞서려 들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전시에 방문한 관객들은 원숭이일까, 원숭이를 바라보는 맞은편의 사람일까, 혹은 둘 다일까?


이번 전시를 통해 미니멀리스트로 새롭게 태어난 것은 아니다. 난민들을 위해 기부하지도 않는다. 다만, 더현대 지하에서 묵은지 참치김밥을 먹으면서, 크록스 지비츠를 구경하면서, 그리고 지금 후기를 쓰면서, 기분이 조금 이상해졌을 뿐이다. 마치 크리스마스의 진정한 의미를 알았던 그때처럼.



 

컬쳐리스트 이지연.jpg

 

 

이지연 에디터의 인기글

많이 읽힌 글 3편
  1. 01 [Review] 더현대 '모네展'에 가기 전에 - 한 권으로 읽는 인상파
  2. 02 [Opinion] 겨울은 웨이브투어스의 계절 [음악]
  3. 03 [Opinion] 서브스턴스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영화]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