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 곳곳에 보이는 벽. 벽은 경계를 나누고, 외부로부터 내부를 보호하기도 한다. 벽이 남기는 질문. 벽이 가른 두 존재 중 어떤 존재가 위협적인 외부가 되는가? 경계를 둠으로써 오히려 그 경계의 모호함에 대한 의문이 든다. 그런 ‘벽’이라는 존재 위에 유쾌한 농담 같은 진실을 담는 거리의 화가, 뱅크시.
더현대 서울 ALT.1에서 열리는 특별전 BANKSY: Still Here가 7월 22일부터 시작되었다.
뱅크시는 누구인가
익명의 예술가, 퍼포먼스의 달인. 뱅크시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단어들이다. 영국 브리스톨 출신의 백인 남성이라는 것 외에는 그를 특정할 수 있는 정보가 거의 없다. 하지만 자신의 존재를 지운 채 남긴 작품들은 역설적으로 뱅크시라는 사람의 아이덴티티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

전시에서 만날 수 있는 작품은 뱅크시가 설립한 유일한 공식 감정 기관인 페스트 컨트롤 오피스(PCO)의 검증을 거쳐 인증서를 발급받은 오리지널 컬렉션, 뱅크시의 판화의 에디션 작품을 제작 및 유통했던 픽쳐스 온 월즈(POW)를 통해 정식 발매된 오리지널 컬렉션, 사진작가 박우일의 벽화 사진(PHOTO ARCHIVE), 뱅크시가 직접 주도한 공식 프로젝트의 오리지널 오브제와 인쇄물(PROJECT ARCHIVE), 초기 실크스크린 제작 방식을 고증한 WCP(West Country Prince) 판화 아카이브로 구성되어있다.
뱅크시의 풍자
그는 모순된 요소를 동시에 배치하며 심각한 상황을 우습게 만든다. 그게 내가 생각하는 뱅크시의 탁월한 농담 기술이다.

무례한 경찰
Rude Copper
뱅크시 | Banksy
2002 | Screenprint in paper | WCP
질서를 수호하는 경찰이 가운데 손가락을 내민다. 뱅크시는 권위를 상징하는 존재에게 가장 무례한 행동을 시키며, 그 권위를 순식간에 우스운 것으로 만든다.

쇼핑백을 든 그리스도
Christ with Shopping Bags
뱅크시 | Banksy
2004 | Screenprint in paper | WCP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의 양손에는 쇼핑백이 매달려 있다. 희생과 구원을 상징하는 종교적 이미지에 소비의 상징을 끼워 넣자, 성스러운 장면은 순식간에 우스꽝스럽고 불편한 풍자가 된다. 우리가 기념하고 있는 것은 그리스도의 탄생일까, 아니면 소비 그 자체일까.

펄프픽션
Pulp Fiction
뱅크시 | Banksy
2004 | Screenprint on paper | POW
영화 [펄프 픽션] 속 두 남자는 총 대신 바나나를 겨눈다. 위협적인 자세는 그대로지만, 손에 들린 물건 하나가 바뀌자 긴장된 장면은 순식간에 우스워진다. 폭력의 이미지를 농담으로 무력화한다. 그리고 이 작품에는 대중문화의 유명한 이미지를 가져와 자기 방식으로 다시 쓰는 뱅크시의 특징도 잘 보인다.

행복한 헬리콥터
Happy Choppers
뱅크시 | Banksy
2003 | Screenprint on paper | WCP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이다.
명암이 뚜렷하게 대비되도록 두 가지 색만을 사용해 군용 헬리콥터를 그렸다. 엄숙하고 위압적인 헬리콥터와 달리, 배경의 파란 하늘은 밝고 가벼운 느낌을 준다. 헬리콥터 위에는 분홍색 리본까지 달려 있다. 금방이라도 공격할 것 같은 헬리콥터와 밝은 하늘, 분홍색 리본을 한 화면에 함께 배치한 뒤 이를 ‘행복한’ 헬리콥터라고 이름 붙인 것이 제법 웃겼다.
전시를 보고 나서

사실 전시를 보기 전까지 내가 알고 있던 그의 작품은 경매에 낙찰된 직후 파쇄되어 버린 작품, [풍선과 소녀] 하나뿐이었다.

전시장의 동선을 따라 뱅크시의 행보를 찬찬히 들여다보고 나니, 해당 작품 이외에도 그가 꾸준히 세상의 불편함을 고발하는 메시지를 남겨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가 작품을 통해 세상에 남기고 싶어 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자신의 존재는 드러내지 않은 채, 작품만으로 자신의 세계를 보여주는 예술가. 뱅크시의 전시 후기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