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쥐와 비둘기, 여우가 질병에 감염된 채 도시를 떠돈다. 비둘기는 주택가를 날아다니다 창문에 머리를 처박고, 여우는 죽은 쥐를 씹어 삼키며 거리를 배회하다가 사람을 문다. 동물들의 질병이 사람에게까지 번지자 도시는 격리되고, 동물들은 살처분된다. 연극 <인간동물들>의 내용이다.
코로나로 격리를 경험해 본 우리에게 이 이야기는 그리 낯설지 않다. 어쩌면 10년 전 영국에서 초연한 <인간동물들>을 본 관객들보다 지금 우리가 작품을 더 깊게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동물을 살처분하는 일을 담당하는 업체의 대표는 다른 도시에 사는 가족을 빨리 만나기 위해 살처분 작업을 서두른다. 그는 동물들을 모조리 죽여버려야 이 지긋지긋한 전염병에서 벗어날 수 있고, 격리도 해제될 것이라고 믿는다. 정부에서 시킨 일이니 고민할 것도 없다. 그렇게 어떤 죄책감도 없이 동물들을 죽이고 공원을 불태운다.
마을은 철책에 둘러싸이고, 전기는 끊기고, 사람들은 집에서 무의미한 시간을 보낸다. 정보마저 제한되어 불안감이 커져가자, 사람들은 광기에 사로잡힌다.
사람들은 쥐와 비둘기, 여우를 죽일 때만 해도 세상이 변했음을,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음을 눈치채지 못한다. 반려동물마저 죽이고, 새가 지붕에 앉아 있다는 이유만으로 집을 불태우자, 사람들은 폐허가 된 자신의 집을 보며 '세상이 미쳐 돌아간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등장인물 중 시민사회 활동에 관심이 많은 20대 알렉스와 동물의 상처에도 마음을 쓰는 제이미만이 변해가는 세상을 기민하게 알아채고 뭐라도 해보려 애를 쓴다. 알렉스는 공원을 지키기 위해 시위에 참여하고, 제이미는 병든 동물들을 집에서 몰래 돌본다. 공원은 결국 불타버리지만, 제이미가 돌본 동물들은 살처분을 피해 거리로 나가 살아남는다.
재가 되어버린 공원에서 사람들은 죽은 아이를 발견한다. 사람들의 광기는 동물에 그치지 않았던 것이다.

새들이 사라지고 고요해진 세상. 동물을 죽이다 아이까지 죽여버린 사람들. 연극을 보고 60여 년 전 미국의 해양생물학자 레이첼 카슨이 쓴 <침묵의 봄>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침묵의 봄. 살충제로 벌레를 죽이자, 벌레를 먹는 새들도 사라져 조용해져버린 봄. 닭도 소도 양도 시름시름 앓다 죽어가자, 사람들은 그제야 무언가 이상한 일이 벌어졌음을 눈치챈다. 아이들마저 이유 없이 죽고 어른들도 병에 걸린다. 인간들은 이 모든 일이 더 많은 농작물을 수확하기 위해 뿌린 살충제 때문이었음을 뒤늦게 알게 된다.
곤충을 향해 겨누었다고 생각하는 무기가 사실은 이 지구 전체를 향하고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크나큰 불행이 아닐 수 없다.
- 레이첼 카슨, 침묵의 봄
최근 새를 보호해야 한다면서 길고양이를 죽이자고 주장해 논란이 된 어처구니없는 유튜버를 보면서 그게 정말 새를 보호하기 위한 일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정말 새를 보호하고 싶다면 새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부터 고민해야 한다. 길고양이를 죽일 게 아니다.
길고양이를 죽인다고 새들이 늘어날까. 새들이 늘어나면 사람들이 또 가만두겠는가. 그 새들을 유해 동물로 지정하지 않을까. 그리고 고양이가 줄어들면 쥐가 늘어나지 않을까. 그럼 그 쥐는 어떻게 하나. 쥐를 죽이려고 약을 치면 그 약을 먹은 새들은? 그리고 인간은?
인간이라는 종은 과연 언제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