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당신은 상실의 슬픔을 어떻게 표현하나요? [영화]

영화 <데몰리션>
글 입력 2022.09.25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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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몰리션 포스터.jpg
영화 <데몰리션> 포스터

 

 

어떤 감정은 너무 익숙해서 잃어야 소중하다는 걸 깨닫기도 하지만, 떠나기 전에 영영 모르는 감정도 있다. 바로 상실이다.

 

맺고 끊음을 잘하지 못하는 나에게 상실은 어색하다. 주인공 데이비스처럼 무심해서 누군가 내 곁에 떠나고 몇 개월이 지나야 슬픔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사람의 상실, 죽음은 다르다. 상실을 바로 알아채고 다시 채울 수 없다.

 

가운데가 텅 비어있는 도넛처럼 구멍을 하나 가진 채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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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데몰리션> 스틸사진

 

 

데이비스는 아내와 함께 교통사고를 당하고 운전석에 있던 아내가 죽었다. 멍하니 병원 의자에 앉아있다 구두에 묻은 피를 닦고 자판기에 돈을 넣는다. M&M 초콜릿을 선택했지만, 자판기 사이에 껴서 나오지 않는다. 그는 자판기 회사 정보를 핸드폰 카메라로 찍고 집으로 돌아간다.


데이비스는 시종일관 멍한 표정으로, 슬픔과 상실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무(無)의 표정으로 아내의 장례식의 시간을 견딘다. 슬퍼하지 않는 자신을 보고 이상하게 쳐다보는 사람들 때문에 화장실에서 억지로 우는 척을 해본다. 그는 자리에 앉아서 초콜릿이 나오지 않았던 자판기 회사에 건의 편지를 보낸다.


가끔 그럴 때가 있다. 나를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을 붙잡고 나의 이야기를 두서없이 털어놓고 싶다는 욕망이 솟구친다. 데이비스는 수신인이 익명의 편지에 아무렇지 않게 초콜릿을 사 먹기 10분 전에 아내가 죽었다고 고백하고 어떻게 아내를 만났는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담담하게 쓴다.

 

여러 통의 편지를 보냈고, 그 편지를 받은 캐런 모리스는 한밤중에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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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데몰리션> 스틸사진

 

 

뭔가를 고치려면 전부 분해한 다음,

중요한 게 뭔지 알아야 해.

사람 마음 고치는 것도 자동차 수리와 같아

철저히 살펴본 후에 다시 끼워 맞추는 거지

 

 

그가 상실의 슬픔을 표현하는 방법은 붕괴다.


데이비스는 장인의 말을 듣고, 냉장고, 직장의 컴퓨터, 화장실 문, 아내가 산 카푸치노 머신까지 모든 걸 분해한다. 인생에서 어쩌면 가장 큰 사건을 겪고 나서도 멀쩡한 자신을 분해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으니까 모든 물건을 분해하고 결국은 파괴한다.

 

그는 결국 분해한다는 행동에 중독되어 이베이에서 포크레인을 사서 집을 부순다. 그는 부수기만 할 뿐 다시 끼워 맞추려고 하지 않는다. 다시 끼워 맞춰도 줄리아가 돌아오지 않으니까.


 

전에 못 보던 것들이 갑자기 눈에 띄기 시작해요

어쩌면 보긴 봤는데 무심하게 본 거겠죠

 

 

캐런의 아들인 크리스는 게이지만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기 위해 오히려 남성성을 드러낸다. 화장실에서 총을 거울에 그린 과녁에 향해 쏘는 척을 하지만 과녁을 그린 립스틱을 궁금해한다. 그런 자신을 숨기기 위해 오히려 더 세게 드럼을 치고, 데이비스와 함께 붕괴에 동참한다.


그들의 붕괴는 자유롭지만 불안하다. 내면의 허기가 채워지지 않아서 외면의 폭력성으로 표출한다. 행동의 결과는 내면은 채워지지 않은 채 부서진 부스러기가 아주 많이 남았을 뿐이다. 두 사람은 다른 방식으로 용기를 낸다. 크리스는 집단 폭력을 당해 병원에 입원했지만,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하지 않고 온전히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살겠다고 말한다.


데이비스는 자신도 깨닫기 전에, 이미 자신의 일상에 군데군데 스며든 줄리아를 잃었다는 걸 인정하는 것조차 어려웠다. 데이비스는 기억의 파편처럼 그녀의 얼굴과 모습을 자주 떠올린다. 아니 저절로 떠올려진다. 어디에 가든, 무엇을 하든 그녀를 생각하지 않기 어렵다.

 

결국 그가 아무렇지 않게 웃었던 순간은, 그녀와 함께였던 순간인 것을 깨닫는다. 그가 무슨 행동을 하든 그녀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는 상실을 인정하고 사랑을 깨달았다.

 

그는 줄리아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처음 편지에 고백했지만, 그가 장인에게 그녀와 나 사이에는 사랑뿐이었다고 다시 고백한다.

 

마침내 눈물을 흘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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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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