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최선의 나를 심는 농사

뉴질랜드 여행에서
글 입력 2024.02.08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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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좋아하는가, 좋아하지 않는가.

 

고루하게 낡아 보이는 이분법적 분류는 배꼽 떼 냄새 맡기, 우아한 말로는 길티 플레져(Guilty Pleasure) 같다. 세상 모든 것은 극단이 아닌 스펙트럼 사이에 존재한다고 믿고 말하면서도, 양극단 사이를 저울질하는 재미를 쉽사리 멈출 수 없다. 마치 꼬릿한 냄새가 나는 치즈를 먹는 심리인가.

 

여행은 특히나 선호의 저울질에 오르기 쉽다. 가거나, 가지 않거나 하나의 선택지에만 무게가 실리기 때문일 테다. 나는 대개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편에 무거운 추를 올린다. 구축한 안전지대를 적극적으로 벗어나는 편도 아니거니와 여행에서 감각한 자유와 행복이 현실의 그렇지 못함을 되려 강하게 인식시켜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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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결국 신기루라는 굳은 생각을 부수는 여행을 다녀왔다. 그곳은 뉴질랜드. 3주 동안 북섬에서 남섬으로 이어진 로드트립. 하루 한 끼는 반드시 숙소에서 밥을 만들어 먹고, 지나가다 눈에 밟히는 풍경엔 지체 없이 멈추고 쉼을 즐겼다. 여행자의 시선으론 무엇이든 아름답지 않겠냐만 느슨함과 분주함, 여행과 현실 어느 사이의 여정은 무언가 달랐다.

 

내가 이해한 뉴질랜드는 미소와 자기 멋대로의 나라다. ‘미소’와 ‘자기’라는 말을 썼다는 것이 새삼스럽다. 인간의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경외감을 품은 대자연 속에서 작은 인간에 주목했다니. 인간에 냉소하는 게 익숙한 나지만, 자연의 포용을 닮은 개개인의 선한 개성을 못 본 척할 순 없었다.

 

어느 상황이든 누구에게든 번지는 미소. 어딜 가나 함께 어우러지는 아이, 청년, 노인. 열에 다섯은 갖고 있는 타투. 편안한 옷차림. 체형과 관계없이 훌렁 벗고 태닝을 즐기는 해변의 사람들. 제멋대로 본능에 가까운 일차적 감각을 즐기는 사람들은 몹시도 평온해 보였다. 사람 많고 소란한 건 한국도 마찬가진데, 처음 느껴본 편안한 감각은 어디에서 유래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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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딜 가든 펼쳐진 공원에서, 호수에서, 바다에서 비슷한 광경을 보며 매번 생각에 잠겼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했던가. 문득 깨달았다. 너무도 쉽게, 일상적으로 자연을 품은 공유지에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을. 많은 개성을 오래도록 편안히 목도하고 따뜻하게 감각할 수 있는 공간에서.

 

사람은 이상하다. 앞으로 만날 일이 전혀 없는 사이라도 30분 남짓한 시간만 같이 있으면 왜인지 정이 든다. 그들의 행동을 궁금해하고 관찰하게 된다. 호기심이란 몸과 마음이 불안에서 벗어날 때 더욱 증폭되기 마련이다.

 

식당에서 잠깐 밥을 먹고, 바삐 다음 카페를 찾고, 잠깐 차를 먹고 바삐 다른 공간을 찾아가야 하는 한국에선 쉬이 허락되지 않는 여유다. 적지 않은 시간과 돈을 들여 쉬지 않고 공간을 이동해야 하는 우리에게 온전한 평온이란 이상에 불과할지도.

 

정갈한 모양의 건물이 주는 위로도 분명히 있겠으나, 마구잡이로 색을 내뿜는 자연 속의 위로는 다른 차원의 힘을 안겨주는 것 같다. 그 속에서는 무엇이든 정화된 영혼을 가질 수 있는 것 같다. 그런 곳이 충분히 많아지고, 가까워지길 바라게 된다.

 

짙은 나의 개성을 무심하고도 따스히 응시하는 눈. 그럼으로써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히 나에게 집중하게 되는 삶. 서로의 존재가 서로의 관용에 빚지는 안온한 경제의 장. 자기 개성과 타자에 대한 관용이 동시에 넓어지는 동화 같은 순간이 일상처럼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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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란 뒤돌아볼 여유를 굳이 만들어낸 후에야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 수 있는, 과거를 추적하는 일이라 생각했다. 무심한 관용 속에서 나에게 집중하는 순간이 커지면서 그것과 어긋나는 감각이 살갗을 스쳤다. 삶의 경로가 달라지는 모양을 실시간으로 체감하고 직조해가는 생생함이. 현재를 온전히 타고 흐르는 충만함이.

 

아 이렇게 사람이, 삶이 짐처럼 느껴지지 않을 수 있었나. 이토록 가벼워도 되는 것이었나. 그저 흘러도 되는 것이었나.

 

평생을 몸담고 있던 땅을 한순간에 외면하고 이곳에 올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여행에 함께한 친구들이 ‘이제는 한국으로 돌아가도 좋다’는 말을 할 때서야 깨달았다. 나는 얼마나 그 땅에 놓고 온 것이 없었는지.

 

어딘가 뿌리를 내리기에 나란 줄기는 지독히 가는 것이었나. 분명 그곳에서 주고받은 마음이 많았는데. 얼마나 많은 사랑들을 내 마음에 진실히 품지 못했던 걸까. 그 많은 마음들은 나를 통과해 그저 사라져 버린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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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는 세상을 그렸다. 곡해 없이 이해받을 수 있는 곳. 수정 없이 존재할 수 있는 곳. 내 상상을 생생히 모방해놓은 땅에서 본능적으로 최선의 나를 내어놓았다. 여행은 그런 나를 곳곳에 심어놓는 농사라고 생각했다. 먼 타지에 단단히 박아두고 올 수밖에 없어 아리도록 슬프지만, 분명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음을 바라게 되는 희망 같은 일. 평행세계의 나를 번식시키는 일. 그렇게 나의 평행세계를 확장하는 일.

 

여행은 어쩌면 멈출 수 없는 것이다.

 

한 차원 다른 동기를 발견하고 나는 어딘가로 다시 떠나고 정체한다. 여전히 모르는 그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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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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