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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엥?’ 호기심과 당황스러움이 뒤섞인 표정을 지으며 프로그램북을 다시 보았다. 클래식 공연의 프로그램북에는 보통 곡 리스트가 적혀 있는데, 이 프로그램북에는 없었다. 악기와 연주자 이름 그리고 대괄호와 한 줄의 문장만 적혀 있었다. 이 앙상블의 이름을 보고 눈치채야 했는데,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한 채 빈 공간을 감싸고 있는 대괄호만 뚫어지게 쳐다봤다.


예술의전당에서는 비교적 작은 홀이지만, 앙상블 공연에 비해 큰 규모였다. 무대가 잘 보이는 곳에 앉아 공연을 기다리고 있으니, 당황스러움은 사라지고 호기심만 증폭되었다. 이번에는 어떠한 정보도 알아보지 않고 가서 더 궁금했다. 클래식은 들을 줄만 알지, 지식은 없어서 정말 無 상태로 관람에 임했다.


앙상블블랭크 10주년 공연 프로그램북에 곡 리스트가 없었던 이유를 지휘자의 설명을 듣고 나서야 알게 됐다. ‘앙상블블랭크’ 이름처럼 관객이 곡에 대한 선입견 없이 공연을 관람하길 바랐다고 한다. 그 이유를 들으니, 한 줄의 문장과 함께 공란이 있는 대괄호가 왜 있었던 건지 짐작할 수 있었다. 마음이 시키는 방향으로 연주를 온전히 감상하고, 곡이 아니라 소리에 집중하자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덕분에 연주를 온전히 향유했으며, 클래식 공연에도 (  )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과거 |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의 ‘병사의 이야기 모음곡(Histoire du Soldat Suite)’



공연이 시작하고, 내 눈이 휘둥그레졌다. 보통 클래식 공연은 핑퐁 대화가 이루어지는 것 같았는데, 이 공연은 달랐다. 악기들이 손을 들어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하는 듯했다. 살랑이거나 웅장한 선율보다는 악기의 소리가 돋보이는 게 특징이었다. 그런데도 미간이 찌푸려지지 않았고, 귀가 피로하지 않았다. 그 자체로 음악이었고, 조화로웠기 때문이다.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연주를 보고, 귀를 쫑긋 세운 채 들었다.


익숙함과 익숙하지 않은 느낌이 공존했다. 들어본 것 같으면서도 처음 듣는 것 같았다. 몇 년 전에 관람했던 토요콘서트에서 들었던 프로코피예프 스키타이 모음곡이랑 비슷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처음 들었을 때는 악기들이 소리를 지르는 것 같은 불협화음만 들리다가 규칙적인 선율과 리듬이 들리면서 마지막에는 감탄이 나오게 되는 점이 비슷했다.


연주를 듣고 있으니, 사람들이 줄 맞춰 행진하는 모습이 떠올랐다. 2악장에서부터는 호기심, 유혹과 매혹, 탐색, 밀고 당기기, 음산하고 기괴함이 느껴지다가 마지막 악장에서는 1악장과 같이 행진곡 느낌이 강했다. 그러나 1악장과 다른 행진이었다. 1악장에서는 자신감 넘치고, 여유로움이 느껴졌다면, 마지막악장에서는 기괴함이 한 스푼 들어있는 듯한 행진이었다. 1악장은 여행을 떠나는 듯한 느낌이었다면, 마지막 악장은 활기찬 행진곡이 이어지는데도 긴장감이 맴돌았다. 연주가 끝나니 한 편의 영화를 본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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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독 눈을 사로잡았던 것은 지휘였다. 그동안 봤던 지휘와 다르게 지휘의 손끝이 악기를 향하면 마법처럼 소리가 나오는 듯했다. 마치 이것을 의도하여 지휘자와 연주자가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것 같기도 했다. 이런 방식의 지휘는 첫 곡에서만 보였다.


악기에서 신비로운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것 같기도 했다. 지휘자의 손끝에서 뾰로롱~ 하면, 캐릭터들이 뿅! 하고 튀어나오는 장면도 눈앞에 펼쳐졌다. 그 모습이 판타지였다. 클래식 공연에서 흔히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지휘자가 이야기가 있고, 캐릭터가 등장하는 것 같았을 거라고 말했는데, 그 말에 깊이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곡명이 병사의 이야기라는 해설을 듣고 왜 그런 느낌이 들었는지 단번에 이해했다. 클래식도 다른 음악처럼 꼭 알고 듣지 않아도 곡을 잘 해석할 수 있으며, 깊이 즐길 수 있는 장르였다.


클래식의 정통이 돋보이면서도 색다른 지휘가 인상적이었던 연주였다.

 

 

 

현재 | 헬무트 라헨만의 Pression, 파울 힌데미트의 ‘Duet for Viola and Cello’



클래식 공연을 볼 때, 관객들은 하나같이 숨죽여 듣는다. 끝날 때만 박수와 환호를 하고, 도중에는 감명받아도 소리 내 감탄하지 않으며 조용히 관람한다. 그리고 나만의 오바스러운 원칙이 있는데, 연주 시작 전에는 특히 조심하자는 것이다. 기침처럼 어쩔 수 없이 소리를 낼 때는 최대한 큰 소리가 나지 않도록 신경 쓴다. 내가 내는 소리가 무대까지 들릴 리 없겠지만, 그저 방해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원칙이다. 연주 시작 전에 마음을 가다듬고 곡에 빠져들 준비를 해야 할 텐데, 안 그래도 소리에 민감한 연주자들이 잡음에 방해되지 않았으면 한다. 이 원칙이 앞으로도 흔들리지 않을 테다. 두 번째 곡 연주를 관람하면서 진짜 소리란 무엇인지에 대해 사유하는 시간을 가졌기 때문이다.


두 번째 곡은 헬무트 라헨만의 Pression이었다. 첼로 활이 지나가는데, 어떠한 음도 들리지 않았다. 연주 시작한 지 시간이 많이 흘렀는데도 선율 하나 들리지 않고 끼익-, 우당탕, 그윽-, 퉁퉁 등의 마찰음만 울려 퍼졌다. 또 당황했다. 그럼에도 눈과 귀는 연주자의 손과 표정, 소리를 향하고 있었다. 첼로를 긁고, 두드리고, 비비는 것을 보고 들으면서 ‘진짜 소리란 무엇일까? 그리고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음악일까’라는 질문이 떠올랐다. 그 질문의 답을 생각하면서 관람했다. 드디어 선율이 들리는 순간, 살짝 놀랬다. 갑자기 음이 들리니 청각이 큰소리로 받아들인 모양이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악기를 긁고 두드리고 비비는 소리까지 음악으로 여겼던 거다. 따라서 질문에 대한 답은 공연홀 안에서 들리는 모든 것들이 소리이며, 음악이었다. 공연홀에서는 선율뿐만 아니라 귓가에 들리는 모든 소리가 무대 위로 올라가서 튀는 소리(ex. 말소리, 스마트폰 알림음)가 되면, 불협음으로 느껴진다. 그래서 그동안 그 튀는 소리에 나조차 예민해지고, 방해받았던 거였다. 그렇다면, 나만의 그 원칙이 내가 내는 불협음 하나도 무대 위에 올리고 싶지 않았던 마음이었던 게 아닐까.


파울 힌데미트의 ‘Duet for Viola and Cello’는 비올라와 첼로가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 보여주는 곡이었다. 악기는 두 가지였지만, 여러 악기의 소리가 겹진 것처럼 사운드가 풍부했다. 비올라와 첼로의 매력을 돋보이게 하면서 완벽한 하모니를 낼 수 있게 해주는 음악이었다. 새로운 시도와 변화, 신선함 그 자체였던 두 곡의 연주는 현대음악의 특징이 가장 잘 드러나 있었다.

 

 

 

미래 | 피에르 불레즈의 ‘Dérive 1’, 존 애덤스의 ‘Chamber Symphony’


 

클래식 공연에서 흔히 볼 수 없는 광경이 또 나타났다. 조명이 등장했다. 곡의 분위기에 따라 초록색, 붉은색, 노란색으로 바뀌면서 연주자들을 비췄다. 클래식 공연에서도 조명은 큰 역할이었다. 무대가 조명의 색으로 물든 걸 보면서 연주를 관람하니, 처음 들어도 곡의 분위기를 짐작하기 쉬웠다.


피에르 불레즈의 ‘Dérive 1’은 음 하나하나를 신경 써서 작곡한 듯한 섬세함이 돋보이는 곡이었다. 특히 실로폰의 소리가 유독 매력적으로 들렸다. 전체적으로 멜로디와 리듬이 빠르게 진행되면서 낮게 깔리는 분위기와 규칙적인 구조였으며, 긴장감이 느껴졌다. 연주를 들으면서 어딘가에 숨고 싶기도 하고,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긴장감이 매우 강하게 느껴졌다. 공포·스릴러 영화와 어울리는 곡이었다.


존 애덤스의 ‘Chamber Symphony’는 앞에서 느낀 바와 같이 각자의 소리가 손을 들고 말하는 느낌과 조화가 공존하는 곡이었다. 다른 점은 이 곡에서는 생기가 넘쳐흘렀다. 인상적이었던 점은 신시사이저의 존재감이었다. 규칙적인 전자음이 계속 깔리는데, 곡의 분위기를 리드하는 느낌이 들었다. 연주를 들으면서 아이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이곳저곳을 탐색하다가 미래라는 신비한 것을 발견하고 모험을 떠나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아무것도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관람하면서 공연의 전체적인 흐름을 자연스레 파악했다. 이 공연은 단순히 앙상블블랭크의 1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공연이 아니었다. 첫 곡에는 그들의 겪었던 시행착오의 지난날이 깃들어있었고 중간쯤에는 현재 관객에게 보여주고 있는 음악 색깔이, 마지막 곡에는 앞으로의 다짐이 있었다. 한마디로 앙상블블랭크의 여정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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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클래식 공연에도 (스토리)가 있습니다.



앙상블블랭크는 공연할 수 있는 무대를 찾았다. 여러 군데에 학생들이 공연할 수 있게 해달라는 편지를 보냈고, 몇 군데에서 연락이 왔다. 그중 일신홀에서 많은 도움을 주었으며, 마음껏 공연을 했다. 그 후 인지도가 올라가면서 공연의 규모가 커졌고, 예술의전당에서 공연하기에 이르렀다. 10년 동안 근현대 작품을 소개하고, 동시대의 음악을 들려줬다. ‘작곡가는 살아있다’라는 기조를 두고, 주로 현대 음악을 연주하면서 관객에게 신선한 클래식 무대를 선사했다. 국내, 국외 작곡가를 발굴하고 이의 작품을 무대에서 소개하며, 여러 시도를 통해 클래식이 과거가 아닌, 미래를 향해 가고 있다는 걸 보여줬다.


이러한 앙상블블랭크의 여정이 공연 내내 자연스럽게 녹아 있었다. 보통의 클래식 공연처럼 000의 여정이 테마라고 소개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스토리를 읽어낼 수 있었던 이유는 ‘블랭크’ 상태에서 공연을 관람했기 때문이다.


 

앙상블블랭크는 익숙하지 않은 아름다움을 통해 미래로 나아갑니다.

 

- 앙상블블랭크 10 프로그램북 중에서

 

 

여러모로 신기하고 색다른 경험이었다. 특히 눈여겨볼 만한 부분은 스토리였다. 클래식 공연에도 자연스럽게 스토리를 녹여낼 수 있었다. 대중이 스토리에 크게 반응하는 만큼, 클래식 공연에도 스토리가 있다는 점은 클래식도 미래를 향해 간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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