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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어디에 두어도 그 사람인 사람 - 희망 드림 넥스트 콘서트 스테이지 : 유다윤 [공연]

성당은 유머를 막지 못했고 목화솜은 수직선을 삼키지 못했다

by 장유진 에디터
2026.08.18 15:38

나는 잠시 잊고 있던, 아직도 완전히 해소하지 못한 단어들의 조합을 서서히 떠올리기 시작했다. 목화솜을 비껴나가는 날카로운 잎사귀. 파도를 다 제쳐두고 수면 위를 뚫어져라 응시하는 사람.

 

 

 

1. 성당과 유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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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리니스트 유다윤

 

 

내가 이럴 줄 알았다. 딱 걸렸다. 이 사람아! 소리가 절로 나오는 것이다. 진작에 내 생각에 ‘확신’을 얻었어야 했는데. 나는 왜, 어찌하여 나를 ‘의심’하고야 말았던가?


유다윤 바이올리니스트의 정체가 궁금한가? 그는 라벨의 바이올린 소나타 2번의 3악장이고, 스트라빈스키의 이탈리아 모음곡 중 ‘타란텔라’ 그 자체다.


그런데 여기에 내가 목격한 그를 당신께서도 응시해보려면 한 가지 조건이 있다. 그를 고요하고 찬 공간에 홀로, 혹은 누군가와 함께 세워둬라. 은애로운 시선 한가운데에 그를 놓아두라.


그러면 그는 자신을 둘러싼 사방, 딱 그 정도의 범위 안에서 주변의 모든 것과 반대되는 키워드를 제 어깨 위에 올려둘 것이다.


하! 그 사실을 이제야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래. 유다윤 바이올리니스트는 정말 종잡을 수 없는 연주가다. 왜인가? 서로 맞붙지 않을 것 같은 단어와 단어 사이의 조합을 아무렇지 않게 가능하게 만든다.


정적과 동적이 순서를 마구 뒤바꾸고, 익살과 엄숙이 동행한다. 끝이 있는 대각선 형태의 ‘재지함’이 있다. 길지도 짧지도 않은 선 하나가 툭 사선으로 뻗어나왔다가, 곧 적당한 두께를 가진 ‘수직선’들이 반복적으로 이어지는 모양으로 몸을 세운다.


뭐가 있었냐는 듯 곧게 ‘정지’하다가도, 어느 순간에는 ‘민속적 선율’을 연주하는 것만 같은 표현법으로 뚱땅! 하고 소리를 튕겨낸다. 그러고는 다시 머리부터 발끝까지, 그 자체로 세로형으로 서 있는 무한대 모양을 반복적으로 그려낸다.


사방에서 어떤 ‘분위기’가 본인에게 끼쳐오든 말든 상관없다. 밤이 다 되어버린 차디찬 성당 안에서도, 사람들의 낮은 숨소리에도 개의치 않는다.


유달리 코튼 솜만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는 소리 군단을 만났다고 해도 예외는 없다. 아, 어찌 이리 보기 좋은 고집과 굳건한 줏대가 있을 수 있을까?


그래, 성당에서부터 일찍이 눈치를 챘어야 했다. 2025년 11월 24일. 명동성당 안에서의 바이올린과 다시 인사하고파 아무 생각도 없이 ‘유다윤 바이올린 리사이틀’ 공연을 관람했던 그날.


너무 춥지도, 덥지도 않은 날씨에 무스탕 하나를 챙겨 입고 가만히 19시 30분을 기다리던 나는, 실내가 얼마나 따뜻해지겠냐만 싶어 외투도 벗지 않은 채 원목 의자에 앉아 그날의 바이올린을 기다렸다.


공연 시간이 가까워지던 때였다. 무대 옆쪽 대기실에서는 쉬는 시간 없이 내달릴 바이올린의 소리를 다듬어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가 아직도 기억난다.


이미 연주를 잘하는 이로 알고 있었는데, 공연이 시작되기 직전까지 스스로를 ‘예열’하는구나 싶었다. 나는 그 소리를 반주 삼아 그날의 프로그램 노트를 읽었다.


흰 공기가 동동- 가득한 성당에서 그는 어떤 노래를 부르려나? 왠지 연주가를 겸손하게 만들거나, 이 공간과 본인이 가장 크게 공명할 수 있는 선곡을 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이게 웬걸. 주제는 ‘유머’였다.


엥? 유머?


나는 그의 포스터에서 보이는 이미지와 주제가 상충됨을 느꼈다. 정직하고 바른 노래를 부를 것만 같이 보이는 그가 ‘유머’? 어떤 느낌일까?


사실 그때에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다 라벨의 바이올린 소나타 마지막 악장이 그야말로 ‘마지막’으로 치달을 때, 뒷목에서 시작한 열이 뒤통수까지 올라오고 귓가가 새빨개지는 것을 느꼈다.


백색의 소리 모양이 적색의 무한대 표현과 동행했다. 표정 변화 하나 없는 그 모습으로 온갖 장난감을 들고 나타나 ‘저글링’이라도 하는가?


나는 쉽게 이해되지 않는 이 조합을 태생처럼 지니고 있는 그에게 ‘신기함’과 ‘얼떨떨함’을 느꼈다. 이제는 연주자 본인도 기억하지 못할 만큼 시간이 지나버린 지금까지도, 그때 탄생한 ‘유머’를 여태껏 잊지 못했다.


“성당에서 유머라니……. 성당에서 유머라니……?”


그러다 시간이 지나 2026년이 되었고, 여름도 반 이상이 지났다. 더하우스콘서트나 금호아트홀에서 그가 연주하는 라벨의 바이올린과 첼로 곡을 들으면서도, 내가 잊지 못한 이 알 수 없는 조합을 여러 번 다시 만났다.


어느 순간, 아, 이게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특유의 개성처럼 그의 활 위에서만 들을 수 있는 특별한 매력 포인트겠구나 싶었다. 그렇게 스스로 가지고 있던 어떤 의문점을 일단락 지은 채 지내고 있었는데.


8월 17일. 코른골트의 바이올린 협주곡이 연주되던 그날. 나는 그에게서 기시감과 부러움을 느꼈다.

 

 

 

2. 목화솜과 수직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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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그날 연주되었던 코른골트 바이올린 협주곡을 논하기 전에, 가장 첫 번째로 연주되었던 영화 <바다매>의 서곡을 논하지 않을 수 없다. 길지 않은 이 곡 안에서 우리는 트리니티필하모닉오케스트라와 정치용 지휘자가 어떤 사람인지를 눈치챌 수 있었다.


그들의 합은 쉽게 말해 자석이 서로를 당기는 것처럼 맞물리고, 레일 위에 몸체를 띄운 채 달려가는 자기부상열차처럼 소리를 유연하고 온화하게 띄워다 놓는다.


코튼 향 섬유유연제만 같기도 했다. 손을 꼭 맞잡지 않아도, 몸을 부딪치지 않아도 곁을 둥둥 떠다니며 내 옆을 지켜주는 요정만 같은 포근함. 그것이 시작에서부터 황수미 소프라노와 함께하는 가장 마지막 여정까지 함께였다.


나는 바이올린 연주자만 힘을 내려놓을 줄 알면 되는 줄 알았는데, 정치용 지휘자를 보고 생각이 달라졌다. 지휘자도 그리해야 하는구나.


하얗고 무섭지 않은 지휘봉을 오른손으로 든 그가 아주 작고 아몬드 초콜릿 모양만 한 원을 너그럽게 그릴 때가 있었다. 왼손의 손가락을 가슴팍까지 들어 올린 뒤, 허공 위를 조심스레 걸어나갈 때도 있었다.


긴장감 하나 없이 필요한 것들을 시기적절하게 우리 앞에 편안히 불러다 놓았을 때, 나는 그가 자애롭다고 느꼈고 기대어봐도 좋겠다는 생각을 가졌다.


그러니 오늘의 바이올리니스트도 단원들과 지휘자가 제공해준 ‘안락함’에 기대어, 그야말로 코른골트의 ‘풍성한 선율’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노닐 줄 알았는데…….


롯데콘서트홀 관객의 박수 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낸 그는 2025년의 성당에서 보았던 그와 다를 바가 없었다. 리허설 때문인지, 대기실에서 내가 기억하는 그 소리로 전신을 예열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그때처럼 뚜벅뚜벅, 채플에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노래하던 사람이 다시 저 앞에 나타났다.


1층 D구역 5열. 무대와 가까운 편이지만 연주자와는 아주 살짝 거리가 있던 자리에서도 그의 앞머리 끝이 미세하게 젖어 있는 게 보였다.


이미 한 번 연주를 끝내고 온 사람처럼 얼굴에 열이 올라 있었고, 그 상태로 바로 시작했다. 그래. 여전히 그는 그랬다.


소리가 없는 자리에서 무언가를 천천히 끌어오는 식이 아니었다. 투명도 100%로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이, 눈치채지 못할 만큼 부드럽고 짧은 틈을 지나 어느 순간 불투명도 100%의 존재가 되어 있었다.


그의 소리를 ‘큰 편’이라는 생각 하나, 특이한 ‘쪼’가 있다는 생각 둘로만 보던 데서 벗어난 게 겨우 7월이니, 그가 이 영화음악 안에서 어떻게 ‘존재’할 것인가. 그것을 가장 크게 눈여겨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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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가 영화가 될 줄 알았다. 앞선 곡을 통해 만났던 오케스트라가 꽤 완성도 있는 사운드의 형체로 배경선과 사방을 천사처럼 그려내고 있으니, 그 안에서 마음 편히 녹아들 줄 알았지.


아주 유순하게 융합될 줄 알았다. 천만의 말씀이다. 그는 자신이 밟고 있는 무대 위에 본인이 충분히 움직일 수 있는 영역 정도의 원을 그려다 놓았다. 끊임없이 뒤쪽에서, 또 옆쪽에서 풍요로운 바람결이 쉬어가자고 유혹한다.


그런데도 그는 본인이 딱 원하는 만큼의 ‘흔들림’을 아주 빼곡하게 우리에게 새겨 넣더라. 바이올린 위, 현 위에 얹힌 손가락이 비브라토를 할 때면 그 진동하는 결이 유려한 사선이 되어 자잘하게 연속된다.


주변에서 아무리 널찍하게 소리를 끼얹어 오든 말든 상관없는 듯했다. 정말 ‘무슨 일이 있냐’는 듯한 덤덤한 표정으로 악장을 장식하고 또 장식한다.


나는 잠시 잊고 있던, 아직도 완전히 해소하지 못한 단어들의 조합을 서서히 떠올리기 시작했다. 목화솜을 비껴나가는 날카로운 잎사귀. 파도를 다 제쳐두고 수면 위를 뚫어져라 응시하는 사람. 복잡해지기를 두려워하는 법을 모르고, 주저하는 방법을 배워본 적 없는 사람.


2악장에서는 그의 올곧은 고집에 어떠한 부러움을 느꼈다. 한 번도 본인을 놓치지 않더라. 관악기가 그 아무리 아름다운 종소리를 내어도, 흔들림 자체를 모르는 것 같았다. 아래에서 조금 높은 곳으로 올라갈 때에도, 오케스트라와 함께 조금 기다란 안식 안으로 들어갈 때에도 그랬다. 굳이 닿지 않은 채 간격을 유지하면서 그들과 합을 이어나가더라.


불필요할 정도로 애틋한 마음을 굳이 이끌어다 놓지도 않았다. 그냥- 딱 당신과 내가 이만큼 거리를 유지한 채 앞을 바라보고 노래해도, 닿을 수 있는 마음은 다 닿는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담백하게, 또 진득하게 말해온다. 독주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가 두 갈래로 나뉘어 한 공간을 함께 나눠 쓰는 순간에도 길을 잃지 않는다. 중심을 놓치지 않는다.


그의 색이 단 한 번도 길을 잃지 않아. 아, 나는 정말 부러웠다. 나도 저만큼 나를 지켜내고 싶다. 나를 놓게 만드는 한들바람이 내 뒤통수 근방까지 불어오더라도, 딱 그처럼만 고집부려보고 싶다.


3악장은 사실 말할 것도 없다. 그냥 코른골트 바이올린 협주곡 라장조의 ‘유다윤 버전’이 쏟아져 내려온다. 그러니까 이 바이올리니스트의 연주에서만 목격할 수 있는 특유의 널찍함이 있다. 고고한 채로 온갖 재주를 다 부리는, 이 정체 모를 연주 타이밍도 있다. 나는 그것을 모조리 목격했다.


이쯤 되면 유다윤 바이올린 협주곡이 아닌가? 하는 농담을 날려봐도 좋을 것 같다. 아, 진짜 ‘왜 저래(긍정의 의미)’ 소리가 절로 나왔다.


내가 다시금 그에 관해서 이야기하겠다. 잊지 마시라. 성당에서부터 몇 번이고 마주했던 그 묘한 조합이 또 나타났다. 정적과 동적이 순서를 뒤바꾸고, 익살과 엄숙이 아무렇지 않게 동행한다.


생각해보면 1악장 어느 대목에서는 바이올린 악장과 거의 정면으로 마주 본 채 듀오 연주를 할 듯 합을 맞췄다. 록스타마냥 몸을 아래로 낮췄다가 위로 올라가며 전신으로 소리를 다 끌어올려 냈다. 참 재밌는 연주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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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코르도 지나고, 황수미 소프라노와 함께했던 2부도 모두 지나간 뒤 정치용 지휘자는 유다윤 바이올리니스트에게 보내는 이런 편지를 관객과 함께 나눴다.

  

 

“좋은 연주자가 되는 건 오래도록 기억되는 연주자가 되는 것과 조금 다른 의미일지도 모른다. 뛰어난 기량은 많은 무대를 열어주지만, 결국 관객 마음에 오래 남는 건 그 연주자만이 들려줄 수 있는 음악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유다윤에게는 이미 충분한 기량과 무대 경험이 있습니다. 이제 그 위에 유다윤의 음악을 하나씩 쌓아가는 시간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오늘 보여준 당신만의 음악을 오래 간직하면서 앞으로도 자신만의 이야기를 계속 만들어나가길 바랍니다…….”

 

 

나는 그 편지 구절을 들을 때에는 별다른 생각을 하지 못했는데, 공연이 다 끝나고 나서 동행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오늘 공연에서 많은 곳이 인상 깊었지만, 편지가 꽤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네가 인터미션 때 유다윤 연주자가 협연 중에서도 본인을 잃지 않는다고 했던 말과 공연 마지막 즈음에 들었던 지휘자의 말이 겹쳐지는 그때가 신기했다.”

 


겹쳤다고? 나는 급히 적어 내려갔던 지휘자의 문장을 다시 되돌아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뛰어난 기량은 많은 무대를 열어주지만, 결국 관객 마음에 오래 남는 건 그 연주자만이 들려줄 수 있는 음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 오늘의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 25년의 11월이기도 하고, 26년의 3월이기도 하며, 7월이기도 하다. 아, 내 발걸음이 그의 그림자를 계속 구경하고 있구나. 그걸 이제야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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