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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당신도 실수가 두려운가요? [사람]

무대공포증을 겪는 에단 호크에게 피아니스트 세이모어 번스타인이 건넨 말

by 윤선주 에디터
2026.09.29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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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생각이 많다. 걱정도 많다. 어떤 일을 할 때마다 최악의 변수가 함께 떠오른다. 그런 기질 때문인지 생방송 정보 프로그램의 대본을 쓰던 시절, 나는 매주 피가 말랐다. 모든 문제는 일주일이라는 짧은 마감 기간에 있었다. 매주 벌어지는 별별 일들에 대처하기에 일주일(촬영일만 따지면 하루에서 이틀)은 너무나 빠듯했기 때문이다.

       

      신기한 행동을 하는 동물을 소개하는 코너에서는 당나귀가 사육사의 손가락을 깨물어 응급실에 가는 바람에 촬영이 미뤄졌고, 섬에서 알콩달콩 사는 부부의 휴먼 다큐 코너에서는 피디가 섬에서 나오질 못해 전전긍긍하기도 했다. 맛집으로 알려진 곳이라 찾아갔건만 알고 보니 칸막이 높은 식당이라 불륜의 성지였고, 그래서 인터뷰에 협조하는 손님이 평소보다 적어 촬영이 어려웠던 적도 있었다. 매주 그런 예측 불허의 변수들이 벌어졌고, 그럼에도 방송일은 하루하루 다가오기에 어떻게든 수습해 방송을 만들어야 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작가의 일은 대본을 쓰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당시 내가 담당했던 저녁 정보 프로그램은 내레이션을 입힌 영상을 트는 게 아니라, 생방송을 하는 스튜디오 구석에 두 사람의 성우가 앉아 실시간으로 대본을 읽는 식으로 방송이 진행됐다. TV로 방송을 볼 때는 몰랐던 사실이다. 일을 하러 가서 첫 방송을 마치고 얼마나 아찔했는지 모른다. 실시간으로 대본을 읽는 성우의 옆에 서서 큐 사인을 주는 것. 생각지도 못했던 이 일이 작가인 내가 마지막으로 해야 하는 일이었다.

       

      방송이 나가는 마지막 순간까지 해야 할 일이 있다 보니 나는 언제나 나의 실수가 두려웠다. 만약 대본 페이지가 뒤섞여 있는 상태로 방송을 하게 되면 어떡하지. 큐 사인을 잘못 줘서 성우가 잘못된 타이밍에 대본을 읽게 되면 어떡하지. 혹시 내가 실수해서 방송사고가 나면 어떡하지. 그래서 나는 강박적으로 대본을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나는 대체로 불안했고,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질까 봐 늘 초조했다. 그렇게 생방송 경험은 나를 소진시켰다.

       

      방전되어 일을 그만두었던 때, 잠 못 들던 밤 우연히 보게 된 다큐멘터리 <피아니스트 세이모어의 뉴욕 소네트>를 지금도 잊지 못한다.

       

       

      뉴욕소네트 포스터.jpg

       

       

      배우 에단 호크는 친구와의 저녁 식사에서 피아니스트 세이모어 번스타인을 우연히 만난다. 그는 아흔에 가까운 피아니스트에게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는다. 5년 전부터 심각한 무대공포증을 겪고 있다고. 번스타인의 답은 이랬다. “사람들은 긴장을 너무 안 해서 탈이에요. 예술가들은 더 긴장해야 하죠.”

       

      그는 호크에게 프랑스의 유명 여배우인 사라 베르나르의 일화를 들려준다. “사인을 받으러 온 젊은 여배우가 심하게 떨리는 베르나르의 손을 보며 말했죠. ‘긴장하신 것 같아요. 저는 왜 무대에 서도 긴장이 안 될까요?’ 베르나르는 안쓰러워하며 답했죠. ‘오! 연기를 잘하게 되면 긴장될 거예요.’라고.”

       

      그날의 대화에서 큰 배움을 얻은 호크는 번스타인의 가르침을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자 그의 일상을 담은 다큐멘터리를 만든다. 이 다큐멘터리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어 <시모어 번스타인의 말>이라는 책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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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에서 번스타인은 호크와의 첫 만남을 떠올린다. 그는 무대공포증이 있다는 호크의 말에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배우가 대본을 외워 관중 앞에서 연기하듯, 연주자 역시 악보를 외워 관중 앞에서 연주해야 하기 때문이다.

       

      번스타인은 대사를 잊을까 봐 두렵다는 호크에게 바이올리니스트 마이클 래빈의 일화를 말해준다. 마이클 래빈은 경력이 절정일 때 갑자기 ‘무대에서 활을 떨어뜨리게 될 것 같다’는 공포에 시달렸다고 한다. 두려움이 연주에 악영향을 미치자, 참다못한 그는 반주자에게 악보의 한 부분을 가리키며 “여기서 활을 떨어뜨릴 거야. 그러니 각오하고 있어.”라고 말했다.

       

      마이클 래빈은 정말로 무대 위에서 활을 떨어트렸다. 그리고 처음부터 다시 곡을 연주해 기립박수를 받았다. 그날 이후로 그는 활을 떨어트릴 것 같다는 공포에서 벗어났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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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큐멘터리 촬영을 위해 번스타인을 찾아온 호크는 나쁜 소식과 좋은 소식을 전했다. 연극을 하던 도중 대사가 생각나지 않아 비명을 질렀다고. 그러다 다시 대사를 떠올려 연기를 이어갈 수 있었다고. 다행히도 관중은 그의 비명까지도 연극의 일부로 받아들였고, 그는 무사히 연극을 마칠 수 있었다. 호크의 무대공포증은 그렇게 사라졌다.

       

      생방송을 하던 시절, 나는 그렇게나 강박적으로 대본을 확인했지만 딱 한 번 실수했던 적이 있다. 어떻게 된 일인지 대본 두 장이 섞여 있었고, 방송 직전에도 알아채지 못해 영상이 나오는 중간 큐 사인을 주지 못했다. 다행히도 이 실수는 방송사고로 이어지진 않았다. 생방송 시작 전에 성우와 함께 영상을 보며 리딩 리허설을 했기 때문이다.

       

      번스타인의 다큐멘터리와 책을 본 이후, 나는 두려울 때면 이들을 떠올린다. 떨어트린 활을 줍고 다시 연주를 이어가는 바이올리니스트를. 대사를 잊고 비명을 지른 후 다시 연기를 이어가는 배우를. 우리는 모든 상황을 통제할 수 없기에 예상치 못한 일에 뒤통수를 맞곤 한다. 더 많이 연습하고, 더 많이 노력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수와 실수가 벌어지면 아무 일도 아니었다는 듯 수습해가며 다음을 이어갈 수밖에 없다. 자책하며 멈춰 있을 수는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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